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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런던에 울리는 가야금 소리

2025-05-29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런던에서 열리는 한국 관련 행사를 찾아가다 보면 낯익은 얼굴과 마주칠 때가 많다. 한복 자락을 정리하며 가야금 줄을 가만히 고르는 정지은 연주자다. 무대 뒤편에서 준비하는 순간부터 관객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리고 연주가 시작되면 거짓말처럼 공간이 조용해진다. 가야금 줄을 튕기는 순간 사람들을 단숨에 집중한다. 정지은의 가야금 울림이 런던 전역에 퍼져 나간다.
정지은 가야금 연주자

< 정지은 가야금 연주자 - 출처: 정지은 연주자 인스타그램 계정(@jieun.jung.7587) >

영국으로 건너오신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해외 선교를 꿈꾸며 영어를 배우자고 생각하던 시기였어요. 마침 아는 한국 목사님이 웨일스의 시골 마을에 선교 학교를 세운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래서 15년 전 용감하게 가야금 하나를 챙겨 영국으로 왔죠. 1년은 영어, 1년은 선교학을 공부하며 여러 교회에서 공연을 다녔어요. 제가 지내던 동네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많이 사시는 곳이었는데 처음 보는 가야금을 "하프 같다."며 무척 좋아하시더라고요. 이후 남편이 기타를, 제가 가야금을 맡아 '가야(Kaya)'라는 팀을 만들어 활동을 이어갔고 초청을 받아 공연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한국관광공사와 각국 문화원의 초청으로 2년 동안 전 유럽을 돌며 국악 공연을 펼쳤던 일이 기억에 남아요.
 

활동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정말 많지만,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양로원에서 80대 어르신들께 연주를 들려드린 일이에요. 치매로 말을 잊으셨던 분이 계셨는데 의 첫 소절을 들으시고 곧 따라 부르시더라고요. 낯선 듯 친숙한 울림이 사람의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것을 그날 확실히 배웠습니다. 저는 음악을 통해 깊은 울림과 뭉클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10여 년 전부터는 직접 곡을 쓰고 연주 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올리기 시작했는데요. 코로나19 시기 즈음 유튜브에 게재했던 <울산아가씨> 연주 영상을 보고 덴마크 방송사인 HBO에서 연락이 왔어요. 자신들이 만드는 드라마의 엔딩 곡으로 제 곡을 쓰고 싶다고 했죠. 사실 이 곡은 집에서 편곡하고 녹음한 터라 음질이 엉망이었는데 오히려 그 자연스러운 울림을 좋게 보셨던 것 같습니다.


최근 '콜랍(Kollab UK)'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고 들었어요. 어떤 공연이었나요?
콜랍은 국악, 클래식, 무용, 힙합 등 여러 분야 예술가를 발굴해 묶는 연합 플랫폼이에요. 저는 가야금 연주자로 합류했어요. 런던 시내에 위치한 '파퓰러 유니온(Poplar Union)'의 지원으로 매달 다른 주제로 전통과 현대를 잇는 한국을 알리는 공연과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열린 첫 공연에 참여했는데 젊은 외국인 관객 비중이 높았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특히 "가야금이 이렇게 현대적일 수 있느냐"는 반응이 큰 힘이 됐습니다.
콜랍(Kollab UK) 프로그램 홍보 포스터

< 콜랍(Kollab UK) 프로그램 홍보 포스터 - 출처: 콜랍 인스타그램 계정(@kollab.uk) >

해외 관객에게 한국 음악을 전할 때 가장 중요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코로나19 이후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늘면서 공연 티켓이 금세 매진되는 경우도 많아요. 저는 전통의 깊이와 현대적 해석의 균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통 가야금 산조나 정악에 관객이 더 큰 감동을 받는 모습을 자주 보지만 동시에 새로운 편곡과 융합으로 음악의 폭을 넓혀야 한국의 전통음악이 더 오래 사랑받을 수 있겠죠. 한국문화예술원의 대형 프로젝트, 젊은 외국인 기획자의 한류-콘(Hallyu-Con), 새로운 시도를 하는 콜랍(Kollab UK)처럼 다양한 기획의 시도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앞으로 준비 중인 프로젝트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야금을 가르치던 제자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영국 학교에서 처음으로 가야금 연주로 음악 재능을 인정받아 장학금을 받고 상급 학교에 입학했어요. 그 경험으로 다음 세대를 길러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습니다. 올봄부터 뉴몰든에 있는 한국문화예술원과 함께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가야금 수업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해외에서 태어난 교포 2세들이 한국의 음악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주변에 한국문화를 소개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그리고 얼마 전 앨범 작업 의뢰가 들어와 몇몇 음악가와 함께 작곡을 하고 새 앨범 녹음을 마쳤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음반 작업과 공연을 꾸준히 이어 갈 계획이에요. 

정지은이 만드는 소리는 낯선 도시에서 한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다리의 역할을 한다. 그녀가 첫 음을 튕기는 순간 런던은 잠시 숨을 고르고 귀를 기울인다. 이제 정지은의 다음 목표는 무대 위 감동을 아이들의 손끝으로 이어 주는 일. 바람이 실현돼 이곳에 한층 더 다채로운 울림이 채워지길 기대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가야 홈페이지, http://www.kaya-music.co.uk/
- 정지은 연주자 인스타그램 계정(@jieun.jung.7587), https://www.instagram.com/jieun.jung.7587/
- 콜랍 인스타그램 계정(@kollab.uk), https://www.instagram.com/kollab.uk/

통신원 정보

성명 : 이윤지[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영국/런던 통신원]
약력 : 전) 국립현대미술관 신호탄전 코디네이터 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건립운영팀, 마스터플랜 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