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캐나다 한국학의 씨앗, 50년을 넘어 미래로

2025-06-11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지난 4월 3일 토론토대학교(University of Toronto) 동아시아학과 라운지에서 유재신 박사 기념 장학기금 공식 출범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캐나다 한국학의 초석을 놓은 고(故) 유재신 박사의 업적을 기리고 차세대 연구자 양성을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 뜻깊은 자리였다. 본 리포트는 2025년 5월 강미해 설립위원장과의 온라인 인터뷰를 중심으로 작성했으며 출범식 현장의 내용을 함께 담아냈다. 

이번 장학기금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캐나다 내 한국학의 지속가능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자 마련됐다. 출범식에는 토론토대학교 동아시아학과 교수진을 비롯해 주토론토 대한민국 총영사관 관계자, 한국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한인 커뮤니티 구성원 등 80여 명이 참석했다.
유재신 박사 기념 장학기금 공식 출범식 참가자들

 < 유재신 박사 기념 장학기금 공식 출범식 참가자들 - 출처: 유재신 교수 추모 장학금 설립위원회 제공 >

장학기금 설립을 주도한 강미해 위원장은 "기록 없는 역사는 잊히기 마련"이라며 지난 1년여간 유 교수의 기여를 입증하기 위해 수많은 자료를 정리해온 과정을 소개했다. "교수님의 서재에서 옛 문서를 찾고 한글로 된 과거 기록을 하나하나 번역해 영어권 학계에 제출했습니다. 흩어진 아카이브와 구술 자료를 모으는 일은 고된 여정이었지만 반드시 기록돼야 할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노력 끝에 토론토 대학교 측은 유 교수를 한국학의 개척자이자 ROM 한국관 창립자로 공식 인정하게 됐다. 이날 행사에서 동아시아학과 소속 자넷 폴(Jannet Poole), 미셀 조(Michelle Cho), 안드레 슈미트(Andre Schmid) 교수는 유 교수의 교육 철학과 열정을 회고하며 현재의 한국학 프로그램이 그 뜻 위에 세워졌음을 강조했다.
 

실제로 토론토 대학교의 한국학은 북미에서도 손꼽히는 프로그램으로 성장했다. 케이팝과 한국 영화, 한국 문학, 번역, 북한학, 한국사 등 폭넓은 분야가 개설돼 있고 연간 600명이 넘는 학생들이 수강하고 있다. 대학원 석박사 과정에서도 다학제적 접근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음악, 젠더, 인류학 등 타학문과의 융합 연구도 활발하다.
 

장학기금의 1차 목표액은 5만 달러로 그중 1만 2,500달러는 토론토 대학교 동아시아 학부에서 후원하고 나머지 3만 7,500달러는 한인 커뮤니티가 모금으로 조성된다. 기금이 10만 달러에 도달하면 매년 이자 수익 창출을 통해 영구적 장학금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강 위원장은 "이번 장학기금은 작지만 큰 첫걸음"이라며 "중국학과 일본학에는 이미 장학제도가 존재하지만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한국학에 반드시 필요한 기반"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출범식에는 유 교수의 제자이자 동료였던 이들의 증언도 있었다. 1970년대 후반 KUSA(한인대학생협회) 회장을 지낸 이병룡(John Byung Young Lee) 씨는 유 교수와의 인연을 회고하며 다음과 같이 전했다. "1977년 성탄절 파티에서 처음 뵌 유 교수님은 '주류 사회로 나아가라'는 말씀으로 저에게 이정표를 주셨습니다. 이듬해 유 교수님의 지원으로 이니스 칼리지 타운홀에서 가야금, 봉산탈춤, 고전 무용 등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이는 캐나다 대학 내 최초의 한국문화 축제였습니다."
 

유 교수의 강의와 교육 방식도 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전 제자이자 현재 동아시아학과 교수인 안드레 슈미트 교수는 "북미에서는 아직 생소했던 한국학을 우리는 1983년 처음 '한국 문명 입문' 수업을 통해 선구적으로 접하고 있었습니다. 유 교수님의 강의는 무속, 천도교, 불교, 유교, 기독교 등 한국 사상의 흐름을 역사적으로 풀어낸 명강의였습니다."라고 전했다.
 

한편 동아시아학과 전 학과정이자 유 교수와 40년 가까운 우정을 나눈 리처드 기쏘(R.W.L Guisso) 명예교수는 "1979년 유 교수님이 주최하신 한국문화 축제를 통해 한복을 입은 여성들이 만들어낸 화려한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면서 그가 단지 학자로서가 아니라 문화적 외교관으로 역할을 감당했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특히 『삼국사기』번역 도중 도움을 요청했을 때 한겨울 눈 내리는 캠퍼스를 맨손으로 걸으며 끝까지 설명한 일화는 그의 성품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전했다.
 

출범식에서는 유 교수의 일대기, KBS 해외동포상 수상 장면 등을 담긴 추모 영상이 상영돼 참석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또한 이날 행사에서 한인 사회의 다양한 한인들이 기부 의사를 밝히며 장학기금 조성에 힘을 보탰다.
 

유재신 박사 기념 장학기금은 단지 한 사람의 삶을 기리는 일이 아니다. 잊히기 쉬운 선구자의 발걸음을 기록하고 그 정신을 미래로 이어가기 위한 교육적 실천이다. 2026년 봄 유 교수 3주기를 맞아 첫 장학생이 선발될 예정이다. 이는 한국학의 씨앗을 캐나다에 뿌리고 가꾼 한 사람을 뜻을, 다음 세대가 꽃피우게 될 소중한 계승의 장이 될 것이다.
사진출처
- 유재신 교수 추모 장학금 설립위원회 제공
    

통신원 정보

성명 : 고한나[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캐나다/토론토 통신원]
약력 : 현) 해밀턴 공립 도서관(Hamilton Public Library) 사서 보조 전) 캐나다 한국학교연합회 학술분과위원장, 온타리오 한국학교협회 학술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