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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를 말하다 - 토론토 무대에 선 바람컴퍼니

2025-08-28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캐나다 토론토에서 매년 여름 열리는 써머웍스 퍼포먼스 페스티벌(SummerWorks Performance Festival)은 북미 공연 예술계에서 가장 실험적이고 대안적인 무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올해로 35주년을 맞은 이 축제의 무대에 한국 창작집단 바람컴퍼니가 초청돼 <유령들의 대화: 축제(The Ghosts Chat: What is a Festival?)>를 선보였다. 한국과 캐나다의 지역 축제를 소재로 삼아 인간 중심의 '축제'가 가진 이면을 드러낸 <유령들의 대화: 축제>는 이번 페스티벌에서 처음으로 공연되며 관객에게 선보이는 첫 무대가 됐다.
써머웍스 퍼포먼스 페스티벌 무대에 선보인 한국 작품 '유령들의 대화: 축제'

< 써머웍스 퍼포먼스 페스티벌 무대에 선보인 한국 작품 '유령들의 대화: 축제' - 출처: Matt-Hertendy 제공 >

<유령들의 대화: 축제>는 본래 거리극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바람컴퍼니는 거리와 광장을 예술의 장으로 삼으며 관객과 직접 호흡하는 방식의 창작을 꾸준히 이어온 집단이다. 이번 공연은 극장 버전으로 재창작됐지만 거리극의 문법을 고스란히 담았다. 극장은 불을 완전히 끄지 않고 언제든 출입할 수 있도록 열어 두었고, 공연이 시작되면 배우들은 관객에게 맹꽁이 울음소리를 함께 내보자고 권한다. "무엥~ 꾸엥~" 소리를 내며 배우와 관객은 장벽을 허물고 공동의 무대를 만들어간다. 한국어로 진행되는 대사에 영어 자막을 제공해 언어의 장벽을 최소화하고, 공연 후에는 한국어와 영어가 통역됐으며 청각 장애인을 위한 미국 수화(ASL)도 준비됐다. 공연이 모두를 위한 축제여야 한다는 기획 의도가 무대 곳곳에 배어 있었다.
써머웍스 퍼포먼스 페스티벌 무대에 선보인 한국 작품 '유령들의 대화: 축제

< 써머웍스 퍼포먼스 페스티벌 무대에 선보인 한국 작품 '유령들의 대화: 축제' - 출처: Matt-Hertendy 제공 >

공연은 캐나다 원주민에 대한 토지인식선언(Land Acknowledgement)으로 시작됐다. 이는 캐나다 극장과 공공문화 행사에서 현지 관객에게는 이미 익숙한 의례이지만 한국에서 온 연기자들이 이 선언을 직접 낭독했을 때 특별한 울림이 있었다. 캐나다 관객에게는 이 행위가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낯선 예술가들이 먼저 마음을 열고 존중을 표현한 몸짓으로 다가왔을 것이고, 이는 공연 전체에 대한 신뢰와 몰입을 더욱 깊게 만드는 데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무대 위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었다. 맹꽁이, 산천어, 캐나다 구스, 나비가 유령이 돼 나타나 자신들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한다. 대구의 맹꽁이 축제, 화천의 산천어 축제, 캐나다 불꽃놀이 속에서 길을 잃은 캐나다 구스 이야기, 함평의 나비축제 이야기가 교차하며 축제의 또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특히 캐나다 구스 이야기가 나오자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캐나다인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동물이자 동시에 잘 알려진 의류 브랜드 이름으로 인식되는 대상이기에 소재 선택 자체가 관객에게 친근하고 유머러스하게 다가온 것으로 보였다. 극이 진행되면서 관객은 어느 순간 이들이 모두 유령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축제를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찾게 되는 듯했다. 
토론토의 대표적인 대안극장 파세 무라유 극장(Theatre Passe Muraille)

< 토론토의 대표적인 대안극장 파세 무라유 극장(Theatre Passe Muraille)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번 공연은 토론토의 대표적 대안극장인 파세 무라유 극장(Theatre Passe Muraille)에서 열렸다. 약 50여 명이 객석을 채운 가운데 관객은 맹꽁이 소리를 함께 내며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배우들의 대사에 숙연히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배우들은 1인칭 화법으로 유령이 된 동물들의 목소리를 담백하게 전달했으며, 관객은 그 목소리 속에서 기후위기와 인간 중심 사고가 남긴 상처를 읽어 냈다. 짧은 2회 공연이었지만 한국 작품이 캐나다 공연 예술의 역사적 현장에서 소개됐다는 사실은 큰 의미를 남겼다. 

공연 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서는 작품의 제작 배경이 소개됐다. <유령들의 대화: 축제>는 한국과 캐나다 창작진의 국제 공동제작으로 완성됐다. 프로듀서 에밀러 정은 2023년 바람컴퍼니에 처음 협업 제안을 했고 이후 매달 온라인 회의를 통해 꾸준히 작업을 이어왔다고 했다. 15분짜리 낭독극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는 한국과 캐나다의 지역 축제를 함께 조사하고 연구한 과정을 거쳐 60분짜리 본 무대로 확장됐다. 창작 과정에는 캐나다 예술위원회와 한국 문화체육관광부 및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의 후원이 이어졌으며 이를 통해 제작 및 해외 공연이 가능해졌다. 임현진 프로듀서는 "맹꽁이와 캐나다 구스 이야기가 같은 공간에서 들려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국제교류의 의미"라고 설명하며 "이러한 협업이 단발성 초청을 넘어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누군가 "맹꽁이가 지금은 몇 마리가 남아 있느냐"고 묻자 제작진은 "과거 8만 마리에서 지금은 2만 마리만 남아 있으며 멸종 위기 2급"이라고 답했다. 공연 속 이야기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실제 생태적 위기를 반영한다는 사실을 되새기게 했다. 특히 동물을 존중하는 문화가 강하지만 오히려 동물을 주제로 한 축제는 드문 캐나다 사회에서 이 이야기가 어떤 울림으로 다가왔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유령들의 대화: 축제' 공연 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

< '유령들의 대화: 축제' 공연 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 - 출처: Matt-Hertendy 제공 >

공연 후 관객의 다양한 반응이 이어졌다. 통신원 옆자리에 있던 한 관객은 배우와 관객이 소리를 주고받는 장면에서 "공연이 단순히 무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경험이 된 점이 강렬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어 또 다른 관객은 공연 후 이어진 대화에서 "한국 연극이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됐는지, 한국 정부가 인디 예술을 지원하고 교류의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요즘 캐나다에서 유행하는 케이팝도 이런 적극적인 지원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한국과 캐나다 연출가들이 함께 고민하고 연구하며 각 지역의 동물, 축제의 문제를 논의하며 만들어 낸 이번 무대는 단순한 초청 공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바람컴퍼니와 같은 인디 예술 단체가 캐나다 토론토의 오랜 인디 무대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기후위기와 동물권 같은 보편적 주제로 언어가 다른 관객에게 공감을 이끌어 냈다는 점은 양국 문화교류의 가능성을 더욱 넓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번 협업은 소규모 창작 집단 간의 꾸준한 만남과 협력이 서로의 문화적 토양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동시대 예술인의 고민과 열정이 국경을 넘어 서로에게 더욱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성과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제도적 지원과 지속적인 네트워크로 이어질 때 한국과 캐나다의 문화예술 교류는 더욱 깊고 단단한 뿌리를 내릴 것이다. 

* 본 공연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케이-아츠 온더고(K-arts on the GO)'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https://www.k-go.or.kr/
사진출처    
- 통신원 촬영 및 Matt-Hertendy 제공

통신원 정보

성명 : 고한나[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캐나다/토론토 통신원]
약력 : 현) 해밀턴 공립 도서관(Hamilton Public Library) 사서 보조 전) 캐나다 한국학교연합회 학술분과위원장, 온타리오 한국학교협회 학술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