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중심부에 위치한 바사공원(Vasaparken) 주변을 걷다 보면 달라가탄(Dalagatan) 46번지 건물에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Astrid Lindgren)의 이름이 새겨진 표지판을 발견할 수 있다. 이곳은 우리에게도 『삐삐 롱스타킹』을 집필한 것으로 유명한 아동문학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자택이다. 통신원은 가이드 투어를 통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집을 직접 방문했다.
< 달라가탄 46번지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 아파트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1941년부터 2002년까지 약 60년간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이어간 공간이다. 이곳은 아스트리드의 삶과 작품 세계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스웨덴 아동문학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장소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108번째 생일인 2015년 11월 14일(사후)부터 일반 대중들에게 정기 투어를 통해 공개되고 있다. 작가의 생가를 공개하려는 계획은 그전부터 10년 넘게 이어져 왔지만 구체적인 형태에 대한 합의가 어려웠다. 하지만 작가의 아파트는 유가족과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협회의 노력 끝에 그의 생전 꾸며진 모습 그대로 보존됐으며 현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협회 주관 아래 정기 가이드 투어가 운영되고 있다. 주거 공간이 보존돼 있는 상태에서 일반인이 접근 가능한 문화유산으로 전환된 사례다.
< 거실에서 바사공원을 바라보고 있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 출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홈페이지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아파트는 4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가 2002년 사망했을 때 남긴 모습과 거의 변함없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투어 해설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작가와 개인 모두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집에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독창적인 이야기 속 세계관을 형성했다. 먼저 거실은 그가 손님을 맞이하던 소파와 책상, 책장으로 꾸며져 있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에게 집은 성찰과 침묵, 그리고 고독을 위한 시간을 허락하는 사적인 공간이자 출판업계 관계자들을 만나고 언론인들의 인터뷰에 응하는 아주 공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아스트리드의 거실에서는 바사공원이 바로 내다보이며 실제로 그는 아이들과 함께 바사공원에서 자주 뛰어놀고 이웃들과도 활발히 교류했다고 한다. 린드그렌은 친구나 예술가들의 작품을 직접 구입하며 후원했고 집 곳곳에는 책과 그림을 비롯한 예술품이 가득해 작가의 감각과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가이드는 각각의 그림과 물품에 얽힌 가족사나 후원 활동에 대해서도 자세히 소개했다.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책상 - 출처: Astrid Lindgrens sällskapet >
가이드 투어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는 바로 아스트리드의 작업실이다. 타자기, 수첩, 수많은 서적과 삽화 작품으로 가득한 이 방에서 그는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는 수많은 작품을 집필했다. 아스트리드는 침대에 누워 글을 구상하고, 독자 편지에 응답하며, 때로는 출판사를 방문해 동료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조언을 건넸다고 알려져 있다. 혼자 아이들을 키우고 일하던 작가는 재정적 형편이 좀 나아지자 가정부를 고용해 보다 창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는 베를린에 사는 친구인 루이즈 프란치스카 하르퉁(Louise Franziska Hartung)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자신의 일상을 이렇게 묘사했다. "아침에 침대에 누워 글을 쓰고, 출판사에 가서 다른 작가들에게 책에 대한 조언을 해. 그리고 집에 돌아와 다시 작업을 이어가지. 마치 시계처럼 쉬지 않고, 틈만 나면 일을 해." 작업실 벽은 그의 작품에 수록된 삽화로 꾸며져 있었다. 삽화를 구경하며 『삐삐 롱스타킹』, 『미오, 나의 미오』, 『산적의 딸 론야』 등 세계적인 작품 대부분이 이 집에서 집필됐다는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유일하게 작가의 작품이 아닌 『알폰스 오베리(Alfons Åberg)』 시리즈의 삽화가 눈에 띄었다. 이는 작가 구닐라 베리스트룀(Gunilla Bergström)이 1997년 아스트리드의 90세 생일을 기념해 선물한 것이다. 이 그림은 아스트리드의 아동 권리 활동을 기념하는 의미로 전달됐고 BRIS(스웨덴 아동 권리 단체)의 공로자임을 언급했다. 아동의 권리를 수호하는 사회 활동가로서 아스트리드의 면모가 돋보이는 대목이었다.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 한 부엌, 폐렴을 앓으며 『삐삐 롱스타킹』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했던 어린 카린의 침대까지 둘러볼 수 있었다. 역시나 그의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방대한 양의 책이었다.
< (좌)자택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우)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자택 문의 이름표 - 출처: 'SVT' >
투어는 협회의 비영리 운영 원칙에 따라 매월 제한된 일정으로 진행되며 참여 인원은 12명으로 한정된다. 해설은 스웨덴어를 기본으로 하며 일정에 따라 영어 및 독일어 해설도 제공된다. 예약 경쟁이 치열해 일부 외국인 방문자는 자택 투어 예약에 성공한 후에야 항공권을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해당 공간은 박물관이나 전시관이 아닌 실제 주거 공간이었기에 건물 내 타 거주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조용한 동선과 엄격한 관람 규칙이 유지되고 있다. 투어 중 촬영된 사진은 개인 소장 및 개인 소셜미디어 게재만 허용된다. 이로 인해 본 리포트에는 내부 사진을 수록하지 못했음을 밝힌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집은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 작가의 상상력과 사회적 책임 의식이 응축된 문화적 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아스트리드가 삶을 통해 보여준 가치와 메시지를 공간을 통해 공유함으로써 스웨덴 사회는 문학의 공공성과 문화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중요한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자택 투어는 작가의 개인적 공간을 문화 자산으로 전환하고 이를 교육과 관광, 시민 참여로 연계하는 선순환 모델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공간 보존 모델은 창작자의 생애와 활동을 기억하는 동시에 시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확장하는 데 기여한다. 린드그렌의 집은 오늘날 문화유산의 보존과 대중 공개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작가와 예술인의 창작 공간을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이를 문화 콘텐츠와 교육 자원으로 확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자택은 유의미한 사례로 참고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SVT》 (2016. 12. 19). Nu blir Astrid Lindgrens hem museum, https://www.svt.se/nyheter/lokalt/stockholm/nu-oppnas-astrid-lindgrens-hem -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홈페이지, https://www.astridlindgren.com/se/om-astrid-lindgren/yrkeslivet/dalagatan-46 - Astrid Lindgrens sällskapet, https://boka.astridlindgrensallskapet.se/
성명 : 오수빈[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스웨덴/스톡홀름 통신원] 약력 : 현) 프리랜서 번역가, 통역사, 공공기관 조사연구원 전) 재스웨덴한국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