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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꽃게, 침입종에서 미식과 산업의 기회로

2025-09-19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한국은 지금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 꽃게가 가장 맛있는 철을 맞이하고 있다. 서해와 남해 어장에서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수꽃게가 잡히고, 시장에는 꽃게찜과 꽃게탕 재료를 사려는 발길이 이어진다. 봄철에는 알이 가득한 암꽃게가 별미로 불리고, 가을에는 살이 꽉 찬 수꽃게가 제철을 맞는다. 계절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식탁의 메뉴도 달라지는데 꽃게는 한국인의 미각과 함께 오랜 세월을 살아온 친숙한 식재료다. 

반면 이탈리아에서 '꽃게'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최근 몇 년간 지중해 연안의 수온 상승과 생태계 변화로 미국 대서양 원산의 푸른 꽃게(Callinectes sapidus)가 북부 아드리아해와 시칠리아, 토스카나 해안을 빠르게 점령했다. 꽃게가 토착 어종의 서식지를 침범하고 조개 및 새우 양식장을 위협하자 이탈리아 어민들은 이를 경제적 재앙으로 인식했고 정부는 대량 어획과 소비를 장려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은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식문화와 요리 실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베네토와 베네치아 인근 레스토랑에서는 꽃게 파스타와 리조토를 선보이며, 시칠리아 셰프들은 달콤한 꽃게 살을 퓨전 요리에 활용하고 있다. 특히 지난봄 스타 셰프 키아라 파반(Chiara Pavan)은 환경 존중과 순환 경제를 요리 철학으로 내세우며 푸른 꽃게를 활용한 창의적 메뉴를 선보였다. 《Corriere dell'Umbria(코리에레 델 옴브리아)》의 보도에 따르면 그는 신뢰할 수 있는 어부로부터 매일 꽃게를 공급받아 애피타이저와 첫 번째 코스 요리를 준비한다. 꽃게를 데친 뒤 살을 발라내고, 보통 폐기되는 액체 부분과 계란으로 만든 에멀젼, 절인 양고추냉이를 곁들인다. 두럼밀 파스타에는 꽃게 껍데기로 우린 비스크와 계란 크림을 얹고, 식당 정원에서 재배하는 해초 허브 로피타를 더해 바다 향을 살린다. 파반 셰프는 침입종을 요리에 적극 활용하며 '문제 해결과 미식이 공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탈리아 스타 셰프 키아라 파반은 푸른 꽃게 요리를 선보여 화제가 됐다

< 이탈리아 스타 셰프 키아라 파반은 푸른 꽃게 요리를 선보여 화제가 됐다 - 출처: 'Corriere dell'Umbria' >

더 나아가 이탈리아에서는 단순한 요리 활용을 넘어 산업적 접근을 통한 경제적 활용 시도도 진행 중이다. 《Il Resto del Carlino(일 레스토 델 칼리노)》에 따르면 고로(Goro) 어민 협동조합(Copegо)은 네덜란드로 출장을 가서 꽃게 살을 기계적으로 추출할 장비를 검토했다. 목표는 침입종을 제거하는 것을 넘어 추출한 꽃게 살을 냉동 어육 제품이나 서리미 등 가공식품에 활용해 새로운 시장과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현재 블루앳(Blueat)이라는 스타트업은 손으로 혹은 기계로 추출한 꽃게 살, 냉동 꽃게, 소스와 미트볼을 미국으로 수출하며 침입종을 단순 폐기물이 아닌 수익 자원으로 전환하고 있다. 이 사례는 키아라 파반 셰프의 창의적 요리 시도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푸른 꽃게가 단순한 환경 문제를 넘어 미식과 산업 모두의 기회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 이탈리아 마트에서도 꽃게를 볼 수 있게 됐다

< 이제 이탈리아 마트에서도 꽃게를 볼 수 있게 됐다 - 출처: 통신원 촬영 >

문화적으로 보면 한국과 이탈리아의 꽃게 소비는 정반대의 출발점에서 만난다. 한국에서 꽃게는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기다려지는 별미지만, 이탈리아에서 꽃게는 생태계 교란을 막기 위해 억지로 소비해야 하는 식재료다. 한국인은 꽃게 제철이 되면 자연스럽게 시장을 찾고 어민과 소비자 모두 풍요를 즐긴다. 이탈리아에서는 꽃게를 먹는 일이 요리 혁신이자 사회적 행동, 나아가 해양 생태계 보존 활동으로까지 인식된다. 현재 이탈리아 정부와 어민들은 푸른 꽃게 대량 어획을 지원하며 언론과 요리사들은 한국, 일본, 중국처럼 꽃게를 전통적으로 소비하는 나라들의 요리법을 참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에서 꽃게는 오랜 세월 축적된 식문화의 일부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이제 막 '먹어야 하는 이유'를 찾는 단계다.

같은 꽃게라도 한국에서는 계절의 맛이고, 이탈리아에서는 위기와 혁신의 상징이다. 시간이 흐르면 푸른 꽃게가 이탈리아인의 식탁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아 '침입자'에서 '별미'로 변신할지도 모른다. 꽃게를 둘러싼 양국의 서로 다른 풍경은 식재료와 문화의 관계가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Corriere dell'Umbria》 (2025. 5. 25). ‘l granchio blu, da specie invasiva a piatto della chef stellata Chiara Pavan: ecco come lo cucina’, https://corrieredellumbria.it/news/cultura--spettacoli-e-tv/354023/il-granchio-blu-da-specie-invasiva-a-piatto-della-chef-stellata-chiara-pavan-ecco-come-lo-cucina.html
- 《Dissapore》 (2025. 8. 27). 'Si può trasformare il granchio blu in ricchezza? L’iniziativa dei pescatori di Goro’, https://www.dissapore.com/notizie/si-puo-trasformare-il-granchio-blu-in-ricchezza-liniziativa-dei-pescatori-di-goro/

통신원 정보

성명 : 백현주[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이탈리아/피사 통신원]
약력 : 이탈리아 씨어터 노 씨어터(Theatre No Theatre) 창립 멤버, 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