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투어링 케이-아츠' 선정작,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무대로 현지 관객 사로잡아 지난 10월 6일 한국의 대표 명절인 한가위 저녁, 부다페스트의 ‘에이펠 아트 스튜디오스(Eiffel Art Studios)’에서 거문고 명인 허윤정이 이끄는 공연 〈절정(絶靜)〉이 막을 올렸다. 주 헝가리 한국 문화원(원장 유혜령)이 주최한 이번 공연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KOFICE)이 추진하는 <2025 투어링 케이-아츠> 사업의 일환으로, 체코와 오스트리아를 잇는 유럽 순회의 대미를 장식하는 무대였다. 이날 공연은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를 넘어 한국 전통음악이 가진 현대적 감각과 새로운 가능성을 유럽 무대에 각인시킨 상징적인 현장이었다. 산업 유산 속에서 펼쳐진 고요의 절정 공연이 열린 ‘에이펠 아트 스튜디오스’는 헝가리 국립 오페라단의 리허설 센터이자 복합 문화 공간으로, 과거 북부 철도 차량기지였던 19세기 산업 유산을 개조한 곳이다. 붉은 벽돌과 강철 구조물이 자아내는 육중한 역사성 속에서 최첨단 조명과 함께 한국의 전통 악기가 빚어내는 소리는 묘한 대비와 조화를 이루며 시작부터 관객을 압도했다. 이번 공연의 중심에는 단연 거문고 명인 허윤정이 있었다. 때로는 육중하게, 때로는 가녀리게 공간을 가르는 허윤정 명인의 거문고 소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였다. 특히 공연 중반, 허 명인이 직접 무대 중앙으로 나와 선보인 즉흥적인 춤사위는 소리를 몸으로 형상화하는 듯한 압도적인 에너지로 객석의 폭발적인 박수갈채를 이끌어냈다. 이날 무대는 허윤정 명인을 중심으로 강민수, 황민왕(타악, 소리), 조성재(아쟁, 소리, 타악), 최여완(정가) 등 한국 전통음악을 대표하는 젊은 명인들이 빚어내는 완벽한 앙상블로 완성됐다.

< 거문고 명인 허윤정을 중심으로 명인들이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
언어의 장벽을 넘어선 소리의 공감 이번 공연의 백미는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관객과 소통하려는 영리한 시도들이었다. 정윤형 소리꾼이 <심청가> 중 슬픈 대목을 열창할 때, 대부분의 헝가리 관객들이 그 서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애절한 가락과 처절한 몸짓에 깊이 몰입했다. 특히 소리꾼이 “아이고, 아이고” 애끓는 소리를 내지르다 해학적인 대목에서 “Oh my god!”이라는 영어 애드리브를 섞자 객석에서는 웃음과 함께 공감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러한 소통은 공연 후반부 신명나는 타악 합주에서 절정에 달했다. 황민왕과 강민수 명인이 몰아치는 꽹과리와 장구의 휘모리장단에 객석 곳곳의 헝가리 관객들은 낯선 리듬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며 함께 호흡했다. 조명은 각 곡의 분위기에 맞춰 형형색색으로 무대를 물들이며 공연의 시각적 묘미를 더했다.

< 신명 나는 타악 장단에 호응하며 박수를 보내는 헝가리 관객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동서양을 넘나드는 아름다운 소리”, 현지의 찬사 공연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수차례 기립박수가 터져 나왔다. 공연이 끝난 후 만난 관객 졸탄(Zoltán) 씨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매우 감동적이었다. 특히 아쟁 소리에 완전히 매료됐다. 동서양을 넘나드는 아름다운 소리의 근원은 같다는 것을 느꼈다”라며 찬사를 보냈다. 그는 또한 “판소리가 너무나 흥미로웠다. 서사를 전부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그 애절한 가락이 마음을 울렸다. 한국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 모두 아는 내용인가?”라고 물으며, <심청전>의 서사에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절정> 부다페스트 공연은 한국 전통음악이 가진 ‘동시대성’을 증명한 무대였다. 스페셜 게스트로 참여한 첼리스트 최경은과의 협연은 거문고와 첼로라는 이질적인 두 현악기가 어떻게 조화롭게 공명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으며, 이는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한국 전통음악의 지향점을 명확히 보여줬다. <투어링 케이-아츠>사업을 통해 유럽의 중심 부다페스트에 울려 퍼진 한국의 소리는, 이제 케이-콘텐츠의 지평이 케이팝을 넘어 무한히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 성공적인 사례다. 이날 공연장을 가득 채운 기립박수는, 가장 한국적인 소리가 가장 세계적인 울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성명 : 유희정[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헝가리/부다페스트 통신원] 약력 : 『한국 영화 속 주변부 여성과 미시 권력』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