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언론분석] 북경 후통, 세대와 문화가 만나는 살아 있는 골목의 변화

2025-12-03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북경의 '후통(胡同)'은 단순한 골목길이 아니다. 원대(元代) 수도 계획에서 비롯된 주거 단위로서, 회색 벽돌집 '스옌위안(四合院)'이 늘어선 골목들은 수백 년간 북경 시민의 일상과 정서를 품어온 생활 공간이었다. 좁고 굽은 길을 따라 이웃들이 서로 왕래하며 살아온 후통은 통행로가 아닌 '삶이 흐르는 거리'로 불렸다. 최근 들어 이 골목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노년층의 기억 속 공간이 아니라, '90허우(90后)'와 '00허우(00后)' 세대가 만들어가는 새로운 문화 공간의 모습이다.
북경 후통 모습

< 북경 후통 모습 - 출처: 바이두(百度) >

북경시 도시 계획에 따라 각 구(區)에서는 낡은 후통의 단순 복원에 그치지 않고 휴식과 교류가 가능한 열린 문화 공간으로 재해석하는 '후통 미공간 개선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남뤄구샹(南锣鼓巷), 우다오잉(五道营) 등 오래된 골목들이 젊은 세대가 찾는 '핫플'로 변신했다. 골목 곳곳에는 후통의 정취를 살린 카페, 공방, 예술 상점이 들어서고 전통문화 요소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후통 문화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남뤄구샹(南锣鼓巷) 야경사진

< 남뤄구샹(南锣鼓巷) 야경 - 출처: 바이두(百度) >

서성구(西城区)의 란만후통(烂缦胡同)은 이러한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길이 약 300미터 남짓한 이 골목은 요즘 SNS에서 '북경의 감성 골목'으로 불리며 관광객과 젊은 현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벽면을 채운 벽화 '경극 고양이(京剧猫)'는 대표적인 포토존이다. 프로젝트에는 90년대생 디자이너들이 참여해 전통 후통의 정취 속에 현대적 디자인을 녹였다.
란만후통(烂缦胡同) 기념품 속에 담긴 감성, 북경 골목의 문화 풍경 사진

< 란만후통(烂缦胡同) 기념품 속에 담긴 감성, 북경 골목의 문화 풍경 - 출처: 바이두(百度) >

남뤄구샹(南锣鼓巷) 문화 소품점

< 남뤄구샹(南锣鼓巷) 문화 소품점 - 출처: 바이두(百度) >

후통의 세대교체는 공간 디자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00허우' 세대 창업가들은 부모 세대의 가게를 물려받아 후통을 새로운 문화와 여가의 무대로 만들고 있다. 남뤄구샹에서 부모의 전통 종이 공예점을 이어받은 왕징타오(王景涛, 2001년생)는 가게 이름을 '칭쑹자오우(青松造物)'로 바꾸고 젊은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후통을 주제로 한 문화 상품을 선보인다. 냉장고 자석, 에코백, 도자기 잔 등은 모두 베이징 골목의 풍경과 벽돌 무늬, 고양이와 비둘기 같은 상징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그는 '후통의 인심과 여유로운 삶의 리듬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변화를 가능하게 한 배경에는 후통 고유의 '연결성'이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주말이면 카메라를 들고 골목을 거닐거나 친구들과 느릿하게 산책하며 골목 곳곳을 탐방한다.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작은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골목길에서 열리는 즉흥 공연과 플리마켓을 즐기며 후통의 정취를 경험한다. 좁고 굽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오래된 벽돌과 햇살, 고양이와 비둘기 같은 풍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도시 한복판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여유와 감성을 선사한다.
란만후통(烂缦胡同) 경극 고양이 포토존 사진

< 란만후통(烂缦胡同) 경극 고양이 포토존 - 출처: 다종뎬핑(大众点评)계정(@悠悠球的妈妈) >

젊은 세대에게 후통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살아 있는 문화이자, 창의적 실험과 협력의 장이다. 고신(高申) 북경시 문화 보호 협회 이사는 "후통은 건축 유산이 아니라 사람의 유산"이라며 "세대를 거듭하며 변화해 온 후통은 시대의 기록자이자 오늘날 청년 세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시 쓰는 역사"라고 설명한다. 최근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시티워크(City Walk)'가 새로운 여가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카페나 쇼핑몰 대신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체험하는 것이다. 후통은 이러한 트렌드의 중심에 있다. 고신 이사는 "후통의 매력은 천천히 사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데 있다"라며 "이곳의 '연기(烟火气, 삶의 온기)'는 현대인이 잃어버린 일상의 감성을 되살린다"라고 말했다. 오늘날의 북경 후통은 과거의 향수를 간직한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젊은 세대의 감각과 창의력이 더해지며 '전통의 현재화'와 '도시 문화의 재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벽화 한 점, 카페 한 잔, 문화 상품 하나에도 후통의 역사와 청년의 감성이 공존한다. 오래된 회색 벽돌 위로 새로운 세대의 색이 스며드는 지금, 북경 후통은 다시 한번 '살아 있는 문화'로 변화하고 있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大众点评≫, https://www.dianping.com/
- ≪光明网≫ (2025.10.29). 北京老胡同正变得越来越'年轻'
https://baijiahao.baidu.com/s?id=1847274879527247198&wfr=spider&for=pc
- ≪中国青年报≫ (2024.10.24). 秋日里: 老胡同成为年轻人的新网红打卡地,
https://baijiahao.baidu.com/s?id=1813802497207841365&wfr=spider&for=pc

통신원 정보

성명 : 최현정[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중국(북경)/북경 통신원]
약력 : 북경어언대학교 문학박사, Chengdu Yudi Technology Co., Ltd.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