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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에서 국방으로: 한-필 양국을 잇는 새로운 연결고리

2026-01-23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필리핀에서 한국 대중문화 위상은 해가 거듭될수록 커지고 있다. 「2025 해외한류실태조사」에 따르면 필리핀의 한국 문화콘텐츠 호감도는 88.9%로 조사 대상 28개국 중 1위로 한류에 대한 높은 호감도를 확인할 수 있다.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로 알려진 한국 대중문화 물결이 필리핀을 휩쓸고 있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필리핀을 사로잡은 것은 단순한 문화적인 부분만이 아니다. 한국 연예인들만이 아닌, 한국 첨단 방위산업도 필리핀에서 인기가 많다. 한류로 대변되는 한국 '연성권력(Soft Power)'은 이제 필리핀을 지키는 '방어력(Defense Power)'으로 변환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한몫을 차지했다. 2016년 필리핀에서 원작 방영된 이후, 2020년 필리핀 최대 방송사 ≪지엠에이(GMA)≫가 리메이크를 할 정도로 <태양의 후예>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태양의 후예>는 절도 있는 한국군과 첨단 장비들을 세련되게 묘사하며 필리핀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또한 2020년 제작된 필리핀판 <태양의 후예>는 시청률 1~2위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드라마에 대한 동경은 단순한 시청 경험을 넘어 한국산 무기 체계 전반에 대한 정서적 신뢰로 이어졌으며, 이는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방산 계약과 관련된 강력한 홍보 수단이 됐다.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호감도는 단순히 화면 속 환상을 넘어, 한국 전반에 대한 깊은 신뢰와 유대감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국이 보여준 문화적 역량이 필리핀 대중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이제는 그러한 신뢰 속에서 한국 기술력이 결합된 방위산업이 필리핀 안보를 책임지는 핵심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즉 드라마와 음악으로 쌓은 친밀감이 양국 관계를 공고히 하는 촉매제가 됐으며, 이것이 자연스럽게 첨단 무기 체계 도입이라는 실질적인 국방 협력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방위산업 특성상 정치적 맥락이 중요하기 때문에 모든 성과를 문화적인 힘으로만 돌릴 수는 없으나, 한류가 양국 국방 협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양국 협력 관계를 보여주는 소식이 지속적으로 보도되고 있다. 2025년 10월 19일에 열린 '서울 ADEX 2025(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2025)'에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필리핀과 추가 전투기 도입 협상을 공식적으로 진행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ADEX 2025'는 5일간 개최되었으며, 한국 공군이 4.5세대 전투기 케이에프-21(KF-21, 이하 보라매) 성능을 현장에서 보여줬다. 보라매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제이-10(J-10)과 에프씨-31(FC-31) 전투기 및 미국 에프-16 브이(F-16 V), 스웨덴 그리펜 등과 경쟁 관계에 있다. 보라매는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 시장을 겨냥하고 있으며, 올해부터 국내에 단계적으로 실전 배치될 예정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해당 전시회를 통해 보라매 외에도 경무장 헬리콥터(Light Armed Helicopter), 에프에이-50(FA-50) 경전투기, 케이유에이치-1(KUH-1) 수리온 헬리콥터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토분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있는 필리핀은 해당 행사에 대표단을 파견했다. 필리핀 정부는 공군 전력 증강을 위해 지난 2015년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제작한 에프에이-50피에이치(FA-50PH) 12기를 구매하기도 했다. 한국이 납품한 전투기는 2017년 격렬했던 마라위 전투에서 그 위력을 입증했으며, 이에 만족한 필리핀 정부는 2025년 6월 한국항공우주산업에 경전투기 12대를 추가로 주문하는 계약을 체결됐다. 

2025년 12월 3일 필리핀 국방 전문 소셜 미디어 플랫폼 ≪맥스디펜스 필리핀(MaxDefense Philippines)≫에 올라온 글에 따르면 한국항공우주산업이 2026년 9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될 예정인 아시아 방위산업 전시회(ADAS 2026, Asian Defense and Security Exhibition)에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아시아 방위산업 전시회를 통해 단순히 보라매를 전시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닌, 실제 성능을 보여줄 수 있는 시범 비행을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필리핀 국방부가 추진 중인 다목적 전투기(MRF) 사업과 연계된 마케팅 전략으로 해석된다.  
 KF-21 보라매 비행기사진

< KF-21 보라매 - 출처: '디펜스 히어(Defense Here)' >

≪맥스디펜스 필리핀≫은 필리핀 정부가 보라매 구입을 위해 법령 개정에 착수한 것으로 분석하며, 개정 되면 올해 9월 전시회 이전에 필리핀 정부가 보라매를 구매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필리핀 정부는 장기저리금융(Soft Loan) 또는 공동대출(Syndicated Loan) 방식을 통해 보라매 구입 자금을 확보하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필리핀 다목적 전투기 사업은 최소 1개 편대(약 12대)가 우선 도입되고, 이후 2개 편대를 추가 도입하는 단계적 방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방식은 보라매가 아세안 방산 시장 진입과 한국 방산 수출 전략 다변화에 기여할 것으로 평가된다. 

필리핀 정부가 구체적으로 보라매 몇 대를 원하는지 현재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는 국방력 강화를 위한 양국 협력 관계를 보여준다. 이는 필리핀이 한국 방위산업의 주요 고객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남중국해 지역 지정학적 긴장으로 인해 필리핀 정부가 추진 중인 국방력 강화 정책과 맞물려 있음을 시사한다. 동시에 한국 방위산업이 동남아 시장 진출을 확대하고 있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한국은 세계 상위 4대 방위산업 수출국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동남아시아를 핵심 성장 시장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보다 앞선 2016년 10월, 필리핀 국방부와 현대중공업(현 HD현대중공업)이 2,600톤 급 호위함 2척을 약 3억 3,700만 달러에 계약했다. 2020년 코로나19라는 위중한 상황 속에서도 한국은 신뢰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1번 함인 호세 리잘(Jose Rizal)은 당초 인도 예정일보다 4개월 빠른 2020년 5월에, 2번 함인 안토니오 루나(Antonio Luna)는 1개월 빠른 2021년 2월에 인도됐다. 이때 한국은 단순히 배만 보낸 것이 아니었다. 배 안에는 필리핀 국민들이 간절히 원했던 한국산 마스크, 소독제와 진단 키트 등 방역 물품이 가득 실려 있었다. 이는 마치 <태양의 후예>와 같은 드라마 속 주인공이 위기에 처한 동료나 친구를 돕기 위해 나서는 모습으로 다가갔다.

필리핀은 2021년 미겔 말바르급(Miguel Malvar-Class) 초계함(3,200톤) 2척을 추가 발주한 데 이어, 2022년에는 현대중공업과 2,400톤 급 원해경비함(OPV) 6척을 약 5억 7,400만 달러에 계약했다. 이러한 계약 배경에는 한국 방산업계가 보여준 철저한 약속 이행이 있었다. 2025년 4월, 미겔 말바르급 1번 함은 당초 예정보다 5개월 앞당겨 필리핀에 인도되며 다시 한번 시간을 엄수하는 한국 방산업계 능력을 증명했다.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2025년 12월, 필리핀은 약 5억 8,700만 달러 규모에 달하는 호위함 2척을 추가로 주문하며 자국 해군 현대화 사업에 한국산 함정을 주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지난 10여 년간 필리핀이 한국으로부터 도입한 방산 물자는 누적 30억 달러(약 4조 원)를 넘어섰다. 필리핀은 아세안 회원국 가운데 가장 큰 한국 방산 수출시장이 됐다. 케이팝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관련 상품을 소장하듯, 필리핀은 한국이 생산하는 전투기와 함정을 자국 안보를 위한 핵심 자산으로 선택하고 있다. 드라마와 음악으로 시작된 한류라는 ‘연성권력’이 이제는 국가 생존을 담보하는 국방 외교와 '경성권력(Hard Power)'으로 완벽히 전환된 셈이다. 한류가 만든 우호적인 토양 위에서 피어난 방산 협력은 이제 양국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켰다. 

과거 한국 드라마가 필리핀 국민에게 따뜻한 위로와 즐거움을 전했다면, 이제는 한국산 전투기와 함정이 필리핀 하늘과 바다를 지키는 실질적인 방패가 되어 양국을 하나로 묶고 있다. 드라마 속 영웅에 열광하던 마음이 자국을 지키는 한국산 무기에 대한 신뢰로 이어지는 현상은 '연성권력'과 '경성권력'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이제 한국과 필리핀은 단순한 문화적 유행을 공유하는 관계를 넘어, 국방 현대화를 함께 실현하는 동지로 발돋움했으며, 국가 안위와 평화라는 가치까지 공유하는 명실상부한 전략적인 동반자 관계로 나아가고 있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필스타(Philstar)》 (2020. 02. 10). 
What it took to make a Pinoy version of Descendants of the Sun, https://buly.kr/GZyvvaU
-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South China Morning Post)》 (2025. 10. 27). 
Philippines in talks to buy more South Korean fighter jets, aircraft maker says, https://buly.kr/3j985SC
- 《디펜스 히어(Defense Here)》 (2025. 10. 28). 
Philippines in talks with KAI for KF-21 fighter jet acquisition, https://buly.kr/1RFlZSy
- 《필스타(Philstar)》 (2025. 12. 01). 
Philippines eyes acquiring most advanced South Korea fighter jet, https://buly.kr/4mdsK1v
- 《네발 뉴스(Naval News)》 (2025. 12. 22). 
Philippines to acquire 2 new frigates from South Korea’s HD HHI, https://buly.kr/FAeiHpr
- 맥스디펜스 필리핀 페이스북 계정(@MaxDefense Philippines), https://www.facebook.com/MaxDef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