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에 살펴본 한국과 말레이시아 미술 교류의 확장과 변화
최근 한국 미술과 관련된 전시가 말레이시아에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2022년 9월, 한-말 수교 62주년을 기념해 양국 작가 41명이 참여한 전시 '예술로 빚어낸 화합(Celebration of Harmony through Arts)'이 열렸고, 다음 해인 2023년 9월에는 말레이시아 국립미술관(National Art Gallery)에서 진영선, 부경희, 다비즈(DaViz) 등 양국 작가들이 참여한 '한류 특별전(The Hallyu-Korean Wave Exhibition)'이 개최됐다. 지난 2024년 10월에는 쿠알라룸프르에 위치한 루마 탕시(Rumah Tangsi)에서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국제교류진흥원이 주관한 전시 '유동적 장치(fluid apparatus)'가 열리는 등 매년 양국 미술 교류의 폭을 꾸준히 넓혀가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말레이시아에서 과거에는 정부 주도의 전시가 중심을 이루었다면, 최근에는 민간 주도의 전시도 점차 증가하고 있고, 몰입형 미술과 영상 미술 등 새로운 분야의 한국 예술 작품의 전시를 접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2025년 2월에는 한국 전통 민화를 주제로 개최된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의 봄(A KOREAN SPRING IN MALAYSIA)'이 열렸다. 해당 전시에선 2017년 제10회 대한민국민화공모대전에서 수상한 서영지 작가의 작품 26점과 작가 12명의 작품이 공개됐다. 특히 조선시대 민화를 재현한 화조화(花鳥畵)부터 쿠알라룸푸르의 상징물인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Petronas Twin Towers)를 재해석한 현대적 민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의 봄' 전시 중 - 출처: '더 스타(The Star)' >
이에 대표적인 현지 언론인 《뉴스트레이츠 타임즈(New Straits Times)》는 "지금 쿠알라룸푸르에서 반드시 봐야 할 전시"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고, 현지의 최대 규모의 영자신문인 《더스타(The Star)》도 전시를 구체적으로 보도했다. 당시 《더스타(The Star)》는 한국의 전통 물감인 분채(粉彩)와 봉채(棒彩) 그리고 채색 안료를 배합하거나 안료를 한지나 비단에 고정하기 위한 전통 교착제인 아교(阿膠)를 소개하는 등, 한국의 전통 재료와 민화 특유의 색채미를 구체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 한국 민화 전시를 보도한 현지 언론 – 출처 : '더 스타(The Star)' >
2026년 1월부터 3월까지 쿠알라룸푸르의 일함 갤러리(Ilham Gallery)에서 열린 이은희 작가의 개인전 '무색무취(Colorless, Odorless)'도 주목할 만한 사례다. 이은희 작가는 전시 '무색무취'를 통해 한국과 대만 반도체 공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조명하며 오늘날 산업 시대와 인간 사이의 갈등과 모순을 탐구한다. 전시 '무색무취'는 반도체 산업 재해의 피해자들을 따라가며, 우리의 눈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유해 화학물질과 그로 인한 질병의 발병 과정, 그리고 냄새의 실체를 탐구한다. 작품의 제목처럼 냄새도 색도 없는 화학물질에 노출된 취약한 여성과 이주 노동자들의 현실을 조명하고, 이를 규탄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함께 담아낸다. 나아가 기술 산업의 사회에서 이러한 물질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현실에 대해 이은희 작가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 한국 민화 전시를 보도한 현지 언론 – 출처 : '더 스타(The Star)' >
이은희 작가는 일함갤러리와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한 사회의 이야기가 아니라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모든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말레이시아 관객들과 이 작품이 만나기를 고대해왔다"고 전했다. 라헬 조셉(Rahel Joseph) 일함 갤러리 관장은 이은희 작가의 작품에 대해 "오늘날 기술 중심 사회의 복잡성을 통찰력 있게 다루었다"고 전했다. 현지 언론인 《더 스타(The Star)》 또한 "이번 전시는 기술 발전을 위해 무엇을, 누구를 희생하고 있는지 반성해 보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 이은희 작가의 전시 '무색무취'를 조명한 현지 언론 – 출처: '더 스타(The Star)' >
현재 말레이시아에서 한류의 흐름, 더 넓게는 문화의 흐름은 점차 복잡해지고 다층화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말레이시아에서의 미술 전시는 정부 주도의 문화교류적인 성격이 강했지만, 최근에는 한국 작가 개인의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 속에서 관객들은 그 기회들을 단순히 한국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소비하기보다는, 작품이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에 공감하기 때문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 미술이 장르를 불문하고 현지 미술계와 관객 사이에서 뜻깊은 메시지를 중심으로 한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사실 이러한 흐름은 최근 한류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예컨대 한국 드라마는 단순한 사람들이 즐기고 소모하는 대중적인 콘텐츠를 넘어 비평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사회적인 질문을 던지는 서사를 통해 공론장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이처럼 한류 현상에서 중요한 것은 작가나 콘텐츠가 어디에서 왔나를 따지는 국적성보다, 얼마나 보편적이고 공감가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이처럼 말레이시아의 미술계에서 새로운 장르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것은 현지의 문화·기술적 인프라(infra) 변화와도 맞물려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예컨대 2025년 2월 28일 말레이시아에는 최초의 실감형 콘텐츠 체험관인 '이머시파이 KL(Immersify KL)'이 문을 열었다. 해당 체험관은 쿠알라룸푸르의 중심지인 부킷 빈탕(Bukit Bintang)에 위치한 초대형 복합 쇼핑몰 라라포트(LaLaport)에서 2,790제곱미터(30,000평방 피트)의 규모와 11개의 체험 공간으로 조성됐다. 특히 확장현실(XR) 스크린과 12미터 높이의 360도 대형 스크린(screen) 등 공간을 다채로운 콘텐츠를 생동감 있게 즐길 수 있도록 구현하여, 2026년 현재도 많은 관람객들이 찾고 있다. 몰입형 콘텐츠 체험관과 같은 새로운 문화 인프라(infra)의 등장은 관객의 경험 방식을 확장시키며, 다양한 형태의 미술을 수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이처럼 말레이시아에서 나타나는 한류의 변화, 문화 수용성의 다양성에 더불어 인프라의 확장으로 인해 앞으로 한국 작가들을 현지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이러한 흐름이 한국 작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활동한 말레이시아 예술가들의 작품 또한 현지에서 재조명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예를 들어 스페이스K 서울에서는 말레이시아 출신의 작가인 만디 엘-사예(Mandy El-Sayegh)의 개인전 '테레사, 이후(For Theresa)'를 2026년 3월 19일부터 6월 21일까지 진행하고 있다. 해당 전시에서 맨디 엘-사예는 한국에서 수집한 인쇄물을 활용하고, 한국계 미국인인 차학경 예술가의 미술적 사유를 참조하며 이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탐구한다. 이처럼 한국에서의 전시 경험을 지닌 말레이시아 작가들 또한 다시 현지에서 조명되며, 예술을 매개로 하여 서로의 담론이 교차하고 확장되는 흐름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이를 통해 새로운 전시, 새로운 장르, 새로운 주체들이 이끄는 미술 교류가 한층 더 다양하고 입체적으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더스타(The Star)》 (2024.10.23). Korean and South-East Asian experimental art collide in KL showcase,
https://www.thestar.com.my/lifestyle/culture/2024/10/23/korean-and-sea-experimental-art-converge-in-a-futuristic-showcase-in-kl
- 《더스타(The Star)》 (2025.02.10). KL is about to take a deep dive into the digital art frontier with Immersify KL,
https://www.thestar.com.my/lifestyle/culture/2025/02/10/kl-is-about-to-take-a-deep-dive-into-the-digital-art-frontier-with-immersify-kl#goog_rewarded
- 《더스타(The Star)》 (2025.02.25). KL art exhibition puts the deep-rooted folk spirit of Korea on display,
https://www.thestar.com.my/lifestyle/culture/2025/02/25/kl-art-exhibition-puts-the-deep-rooted-folk-spirit-of-korea-on-display
- 《더스타(The Star)》 (2026.01.27). Korean video artist uncovers price of modernity in experimental docu-film,
https://www.thestar.com.my/lifestyle/culture/2026/01/27/south-korean-visual-artist-uncovers-price-of-modernity-in-experimental-docu-film
- 《뉴스트레이츠타임즈(New Straits Times)》 (2025.02.23). Art that speaks: Two must-see exhibitions in KL,
https://www.nst.com.my/lifestyle/sunday-vibes/2025/02/1179014/art-speaks-two-must-see-exhibitions-kl
- 《더스마트로컬(The Smart Local)》 (2025.02.28). Immersify KL: A Permanent Digital Art Gallery With 11 Immersive Zones In KL,
https://thesmartlocal.my/immersify-kl/
- 《파이낸셜뉴스》 (2026.04.02). 지워진 목소리, 파편의 언어로 다시 잇다... 맨디 엘-사예 展,
https://v.daum.net/v/qrn6UYaeWl?f=p
- 세니아트(Seni Art) 홈페이지,
https://www.eksentrika.com/hallyu-korean-wave-exhibition-malaysia/
- 하모니(Harmoni) 홈페이지,
https://harmoni-soka.org/subpage/malaysia-korea-art-exhibition-kuala-lumpur-2022/
-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유튜브 계정(@SIWFF),
https://www.youtube.com/@SIWF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