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2년 남북 공동 올림픽 개최를 위한 발걸음이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에게 2023년 하계 올림픽을 서울과 평양에서 공동 개최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바흐 위원장이 긍정적으로 화답하면서 이를 위한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최근 숨 가쁘게 진행되어온 남북 관계의 변화는 지난겨울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와 정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으며, 최근 남북의 사례가 스포츠 행사의 긍정적인 정치적 기능을 보여주고 있다. 민족의 분단과 통일의 역사를 가진 독일에서는 동서독 공동 국가대표팀은 있었지만 동서독 올림픽이 열린 적은 없었다.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장벽이 도시를 가르고 있던 베를린에서 동서독 올림픽 개최 시도가 있었다. 그 꿈은 왜 이뤄지지 못했을까?
▣ 분단 독일에서 공동 올림픽 꿈꿨던 빌리 브란트
<동-서베를린 올림픽을 추진하고자 했던 빌리 브란트 전 총리
- 출처 : https://de.wikipedia.org/wiki/Willy_Brandt#/media/File:Bundesarchiv_B_145_Bild-F057884-0009,_Willy_Brandt.jpg>
베를린 장벽이 올라간 지 겨우 2년이 지난 1963년, 당시 서베를린 시장이었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전 총리는 담대한 꿈을 꿨다. 바로 분단된 베를린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 것이었다. 빌리 브란트와 당시 서독 국가 올림픽 위원장이었던 빌리 다우메(Willi Daume)는 이 계획을 비밀리에 추진했다. 동서 냉전의 시대에 이런 '위험'한 시도는 연합국 측은 물론 소련 측에서도 반대할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또한 서독 총리였던 콘라드 아데나우어 정부의 반대도 예상가능했다. 빌리 브란트는 담당 부서의 하위 조직에서 이 계획을 조심스럽게 진행했다. 올림픽 개최 지원 마감 3일 전인 1963년 3월 27일, 빌리 브란트는 서독 정부의 동의절차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서한을 보냈다. 다음은 빌리 브란트가 IOC에 보낸 서한의 일부다.
'정해진 기한에 맞추어 저는, 베를린 시의회의 이름으로, 1968년 제 18회 하계올림픽을 개최하기 위해 국제올림픽위원회와 전 세계 올림픽 청년들을 베를린으로 초대하고자 합니다. (중략) 저는 동베를린 당국도-양 독일의 올림픽 위원회의 적절한 협의 이후에- 의지가 있음을 명확히 표현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중략) 모든 베를린 시민들은 정말 큰 기쁨을 느낄 것입니다. IOC가 이 지원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말입니다.'
이 서한과 연구자료 등을 통해서 당시 서독 올림픽 위원장과 동독 올림픽 위원장이 사전 연락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동독 입장에서는 소련의 반대에 부딪힐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음에도 서독 측에 결단적인 신호를 보낸 것으로 해석됐다. 동서독 입장에서는 극적인 과정이었지만, 정작 IOC 측에서는 동서독의 공동 움직임에 대해 별로 특별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두 대표단이 당시 이미 공동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주변국들의 이해관계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국 선수들을 장벽이 둘러싸인 도시에 보낸다는 것에 대한 우려가 컸다. 서독 정부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베를린과는 달리 보수 성향의 아데나우어 정부는 소극적이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문제가 가시화되자 동독 측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막 베를린장벽을 세웠던 동독의 입장에서 보면 동서베를린 올림픽 공동개최는 결국 '장벽을 여는(열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빌리 브란트가 베를린 올림픽에 지원하며 제출한 서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또한 저는, 요구된 기준대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모든 참가자와 방문자들이 어떤 어려움 없이 베를린 (서쪽)으로 여행할 수 있음을 확실히 표명합니다. |
이는 동독의 입장에서 보면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갈 수 있는 기회로 장벽을 여는 것과 마찬가지의 위험부담이었다. IOC는 결국 베를린 올림픽 개최를 포기하는 대신에 독일의 다른 도시에서 올림픽을 개최할 기회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빌리 브란트가 추진했던 '동-서베를린 올림픽'은 무산되었지만, 1972년 독일 뮌헨 올림픽이 선정된 배경이다.
▣ 정치적인, 너무나도 정치적인 스포츠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바흐 위원장은 서독의 펜싱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한 이력이 있다.
- 출처 : https://www1.president.go.kr/articles/4405>
'1968 베를린 올림픽 개최 시도'는 독일에서도 종종 언급되는 역사적인 에피소드 중 하나다. 통일이 된 이후 당시 프로젝트에 관련했던 이들 중 일부가 당시 시도를 정치적인 선전이었을 뿐이었다고 회고한 기록이 있다. 독일의 한 학자는 이 동서베를린 올림픽을 '정신 나간 생각(Schnapsidee)'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실제로 동서베를린 올림픽이 열렸다면 어땠을까? 독일 분단의 역사는 또 어떻게 바뀌었을지 그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남북올림픽 공동개최를 '정신 나간 생각'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통해 시작된 남북교류는 벌써 제3차 남북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주변의 이해관계 국가들은 속내가 어떻든 간에 남북 관계의 평화를 거스를 수 없게 되었다. IOC의 첫 반응도 긍정적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남북 공동 올림픽 개최는 꿈보다는 현실로 다가온다.
스포츠가 정치의 일부라는 것은 우리나 동독이나 세계의 어떤 나라든 간에 다르지 않습니다. 늘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
전 독일 올림픽위원장이었던 발터 트뢰거(Walter Troger)의 말이다. 정치적으로 추진되었지만 정치적으로 무산된 1968의 동서베를린 올림픽, '분단 국가의 올림픽'이라는 역사에 남과 북은 새로운 장을 쓸 수 있을까?
※ 참고자료
https://www.tagesspiegel.de/kultur/olympia-in-der-geteilten-stadt-als-willy-brandt-die-spiele-nach-berlin-holen-wollte/10095412.html
http://www.bpb.de/geschichte/zeitgeschichte/deutschlandarchiv/267428/verhilft-olympia-zur-einheit-deutsch-deutsche-nicht-bemuehungen-um-die-spiele-1968-fuer-ber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