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2일부터 29일까지 총 8일에 걸쳐 진행된 제10회 베이징국제영화제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매년 4월에 열리는 베이징국제영화제는 올 상반기 동안 이어진 코로나19의 여파로 개최가 잠정 연기됐었다. 특히 지난 2월부터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중국 정부가 전 지역 극장 운영 중단 조치를 내리면서 영화제는 정식 개최 시기와 개최 방식을 확정하지 못했었다. 중국의 극장 폐쇄 조치는 영화제 개최 여부뿐만 아니라, 한동안 중국 내에서 영화와 극장의 존폐 위기가 거론될 만큼 꽤 길게 지속되었다. 하지만 최근 중국 방역 통제가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중국 정부는 극장 폐쇄 6개월만인 지난 7월 20일 극장의 정상 운영을 허가했고, 베이징 역시 7월 24일부터 극장 문을 열 수 있게 되었다. 극장 운영 재개 34일 만에 개최된 이번 베이징국제영화제는 그간 위축되어있었던 중국 영화산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제10회 베이징국제영화제 폐막식 현장 – 출처 : ‘베이징국제영화제’ 웹사이트>
온·오프라인으로 세계 각국 300여 편의 영화 상영 아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 시대에 맞춰 이번 영화제는 ‘클라우드 베이징국제영화제(云上北影节)’를 표방하며 진행되었다. 베이징 내 약 20여 개 극장에서 오프라인 상영을 진행하는 동시에 온라인 플랫폼 ‘아이치이(IQIYI)’를 통해 영화 상영 및 각종 행사를 중계했다. 더불어 3개의 베이징 TV채널(BTV北京卫视, BTV影视, BTV青年)에서 영화를 방영했다. 이번 베이징국제영화제는 12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총 300여 편의 세계 각국 영화가 상영되었다. 오프라인 영화관에서 106편의 영화가 총 400회 상영되었고, 온라인으로 238편이 상영, TV 채널로는 20편의 영화가 방영되었다. 이번 영화제는 예매 시작 10분 만에 약 72%의 높은 영화 예매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시의적절한 주제로 구성된 각종 포럼도 눈길을 끌었다. 코로나19 위기에서 세계 영화산업 교류와 해외 합작이 나아갈 방향성을 모색하는 섹션부터 5G 시대 새로운 기술발전이 영화에 끼칠 변화에 대한 논의까지 다양한 주제의 포럼이 현장 진행 및 온라인 중계로 이루어졌다. 또 세계 영화산업을 이끄는 인사를 온라인 강의로 만나볼 수 있는 마스터클래스도 진행되었는데 특히 중화권이 배출한 세계적 거장 ‘이안 감독의 마스터클래스’가 높은 주목을 받았다.
<온·오프라인 결합방식으로 진행된 베이징국제영화제. 극장 영화 상영 후 온라인 연결로 진행된 ‘감독과의 대화’와 역시 화상 연결로 진행된 ‘이안 감독의 마스터클래스’ 현장 - 출처 : ‘베이징국제영화제’ 웹사이트>
한국 영화 5편 상영, <살인의 추억>이 ‘극장상영작 최다 관객 수 1위’로 꼽혀 한국 영화는 총 5편이 초청되어 극장에서 상영되었다. ‘복원 고전영화(修复经典)’ 섹션에 이만희 감독 <휴일>(1968)이 4K로 상영되었고,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디지털 버전으로 중국 관객들을 만났다. ‘경계(镜界)’ 섹션에는 홍상수 감독 <강원도의 힘>(1998)이, ‘여성의 목소리(女性之声)’ 섹션에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와 <82년생 김지영>(2019)이 상영되었다. 세계 각국 300편의 영화 중 한국 영화는 단 5편 상영되었지만, 그 파급력은 대단했다. 베이징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가 영화제 기간 중 발표한 ‘극장상영작 최다 관객 수 TOP10’에 한국 영화 4편이 순위 안에 들었다.
<베이징국제영화제가 집계한 '극장상영작 관객수 TOP10(2020년 8월 25일 기준)'에 한국 영화 4편이 들었다 - 출처 : ‘1905电影网’ 위챗 공식계정>
이번 영화제 전체 상영작 중 가장 빨리 매진된 영화 중 하나이기도 했던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은 최다 관객 수 1위를 차지했다. 올 초 <기생충>으로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봉준호 감독의 중국 내 인기를 확인해준 셈이다. 게다가 <살인의 추억>은 중국에서 개봉된 적은 없지만, 작년 한국에서 실제 범인이 검거되었을 때 중국에서도 실시간 화제가 되었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영화였다. 7위를 차지한 <강원도의 힘> 홍상수 감독은 유럽 유수 영화제 수상작에 관심이 높은 중국 시네필들에게 이미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영화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다. 최다 관객 수 9위를 차지한 <82년생 김지영>은 중국에서도 책으로 먼저 출판된 바 있고, 작년 한국 영화 개봉과 함께 다시 한번 큰 화제를 모았다. 각종 리뷰 플랫폼과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호평을 받으며 ‘여성의 삶’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일으켰다. 끝으로 10위를 차지한 김기영 감독의 고전 명작 <하녀>는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에 영향을 준 영화로 언급한 것이 중국에서도 자주 기사화된 바 있다. 사실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된 한국 영화는 그간 중국에서 정식 개봉되지 못해 이미 온라인상에 불법으로 유통되어있는 상태이다. 그럼에도 이번 베이징국제영화제를 통해 극장 정식 관람을 선택한 중국 영화 팬들의 한국 영화 선호도는 사드 사태 후 멈춰버린 한국 영화의 중국 극장 개봉 재개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 참고자료 ‘1905电影网’ 위챗 공식계정 (20. 8. 29.) <“云红毯”回溯十年精彩,电影频道全景直击北影节>, https://mp.weixin.qq.com/s/4oOrMi8zx1sGknXfNl3rfg
성명 : 박경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중국(북경)/북경 통신원] 약력 : 현) 중국전매대학교 영화학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