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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의 확장 보여준 베를린국제영화제

2023-03-21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지난 2월 16일부터 26일까지 열흘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이전의 규모를 되찾은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는 개막부터 폐막까지 곳곳에서 다양한 이슈로 화제를 모았다. 개막식에서는 볼로디미르젤렌스키(Володи́мир Олекса́ндрович Зеле́нський)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연설을 라이브로 송출하며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했고 폐막식에서는 예상을 뛰어넘는 수상 결과로 이목을 끌었다. 그 가운데 한국 영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베를리날레에 초청돼 경계의 확장을 보여주었다.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 포스터 - 출처: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Claudia Schramke, Berlin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 포스터 - 출처: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Claudia Schramke, Berlin>

예상을 뛰어넘은 수상 결과
올해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는 평단의 예상을 뛰어넘은 수상 결과가 나왔다. 먼저 최우수작품상인 황금곰상은 니콜라 필리베르(Nicolas Philibert) 감독의 영화 <아다망에서(Sur l'Adamant)>가 받았다. 이 영화는 프랑스 파리의 정신질환자 주간보호시설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예술영화와 상업영화,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오른 경쟁 부문에서 다큐멘터리가 황금곰상을 받을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할리우드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Kristen Jaymes Stewart)는 "무엇이 영화를 영화로 만드는가에 대해 내내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였다."면서 "인간 표현의 근본적 필요에 대한 영화예술적 증빙"이라고 말했다. 필리베르 감독 또한 수상 발표 이후 "지난 40년간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끝없이 인정투쟁을 벌여왔는데 영화예술로 인정을 받아 깊이 감동했다."고 전했다.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베를린 팔라스트 - 출처: 통신원 촬영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베를린 팔라스트 - 출처: 통신원 촬영>

은곰상 주연배우상은 영화 <2만 종의 벌>에서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아이를 연기한 스페인 아역배우 소피아 오테로(Sofía Otero)에게 돌아갔다. 소피아 오테로는 올해 8세로 역대 최연소로 주연배우상을 수상했다. <2만 종의 벌>은 황금곰상 수상이 예측되는 작품이었고 주연상을 주기에는 아역 배우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은곰상 조연배우상은 독일 영화 <밤의 끝까지>의 트랜스젠더 배우 테아 에레(Thea Ehre)가 수상했다. 베를린국제영화제는 성별 구분을 없애 주연 및 조연 배우상을 수상하고 있다. 기존의 성별 경계를 넘어선 역할이 모두 주연 및 조연상을 받은 것 또한 의미심장한 결과이다. 늘 그래왔듯 정치 사회적 메시지를 강조하는 베를린국제영화제의 특성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다. 
 

베를린국제영화제 주연배우상을 수상한 소피아 오테로(Sofía Otero) - 출처: 출처: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베를린국제영화제 주연배우상을 수상한 소피아 오테로(Sofía Otero) - 출처: 출처: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확장된 한국 영화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한국 영화를 살펴보면 경계가 확장된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베를린국제영화제가 사랑하는 홍상수 감독이 영화 <물안에서>로 또 한 번 베를린을 찾았다. 홍상수 감독은 '베를리날레 공무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베를린국제영화제의 단골 손님이다. 아웃포커스로 촬영한 영화 <물안에서>는 새롭고 시험적인 작품으로 영화팬들을 열광시켰다. 그 외에 변성현 감독의 <길복순>, 유형준 감독의 첫 장편작 <우리와 상관없이>가 한국 국적의 영화로 초청됐다. 베를리날레와 함께 열리는 비평주간(Woche der Kritik)에는 박세영 감독의 <다섯번 째 흉추>가 초청됐다.

한편 한국계 감독의 활약도 눈에 띄었다. 북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셀린 송(Celine Song) 감독은 <전생(Past Lives)>으로 경쟁 부문에 올랐다. 어린 시절 이민을 간 주인공이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로 배우 그레타 리(Greta Lee)와 유태오가 주연을 맡았다. 장률(張律) 감독은 중국 작품 <더 섀도리스 타워(The Shadowless Tower)>로 경쟁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파노라마 부분에 초청된 말레네 최(Malene Choi) 감독의 <조용한 이주(Stille Liv)>는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주인공을 통해 타자성과 소속감에 대한 경계를 자전적으로 다룬 영화이다. 마찬가지로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된 한슈아이(Han Shuai) 감독의 <그린 나이트(Green Night)>에서는 이주영과 판빙빙 배우가 호흡을 맞췄다. 한국을 배경으로 촬영했고 배우 판빙빙(范冰冰)이 한국어를 하는 외국인 역할을 맡아 영화의 첫 번째 언어가 한국어로 표기돼 있다. 위 영화들은 각각 미국, 중국, 덴마크, 홍콩(중국) 영화로 국적이 구분됐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한국 관련 영화이다.
 

베를리날레 영화 '길복순' 상영관, 일요일 이른 아침에도 관객들로 가득 차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베를리날레 영화 '길복순' 상영관, 일요일 이른 아침에도 관객들로 가득 차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그동안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한국 영화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영화의 제작국을 '한국'으로 설정해 검색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를 기준으로 검색했다가는 좋은 영화를 놓치기 십상이다. 다양한 국적의 감독들과 다양한 국적의 배우들이 협업하며 만들어내는 다국적 영화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 곳곳에 거주하는 이민 배경을 가진 한국인도 다중 정체성을 문화적 창의성으로 발현하며 한국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한국 배우가 출연한 영화, 한국을 배경으로 촬영한 영화, 한국계 영화인이 활약한 영화 등 '한국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출처
- 통신원 촬영
-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https://www.berlinale.de/de/home.html
 

통신원 정보

성명 : 이유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독일/베를린 통신원]
약력 : 전)2010-2012 세계일보 기자 라이프치히 대학원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