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정책/이슈] 폐허된 중세 성 복원 프로젝트 착수: 역사 재조명과 헝가리 문화 정책의 현주소

 
헝가리 서부 너지커니저(Nagykanizsa) 외곽에 자리한 옛 보첸트죄르지(Botszentgyörgy) 성터가 15년간의 대대적인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새롭게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예상 비용만 10억 포린트(약 40억 원) 이상 투입될 이 거대한 사업은 단순한 문화재 복원을 넘어 현재 헝가리가 추구하는 문화 정책의 방향성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마티아스 왕 시대의 숨결, 오스만 제국과의 항전 역사를 품다
보첸트죄르지 성은 헝가리 역사상 황금기로 꼽히는 마티아스 왕(재위 1458-1490) 시대에 건축 허가를 받아 세워진 르네상스 양식의 요새다. 특히 이 성은 헝가리에서 유일하게 마티아스 왕 시대의 성곽 구조가 완전히 발굴된 유적이라는 점에서 독보적인 가치를 지닌다. 16세기와 17세기 오스만 제국의 유럽 진출 야욕이 거세던 시절 이 성은 너지커니저 본성을 방어하는 최전방 외곽 요새로서 에게르(Eger)에 버금가는 전략적 중요성을 띠었다. 스페인, 이탈리아, 폴란드 등 유럽 연합군이 오스만 군대에 맞서 싸웠던 격전지였으며 영웅적인 사령관 죄르지 투리(György Thury)의 전사 이야기가 서려 있는 비극적이면서도 영광스러운 역사의 현장이다. 1577년 폭발로 파괴된 이후 폐허로 남아 '롬로트바르(romlottvár, 폐허 성)'라 불리며 잊혀 가는 듯했으나 1970년대와 1980년대 발굴을 통해 그 중요성이 재확인됐다.

국가 서사 강화: '위대한 헝가리' 역사성의 복원
헝가리 정부와 관련 기관이 막대한 예산과 15년이라는 긴 시간을 투입해 하필 이 잊힌 성의 복원을 결정한 배경에는 현재 헝가리 문화 정책의 핵심 기조가 자리 잡고 있다. 바로 '국가적 자부심 고취'와 '역사적 정체성 강화'다. 마티아스왕 시대는 헝가리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문화적으로 융성했던 시기로 기억된다. 또한 오스만 제국에 맞서 유럽 기독교 세계를 수호했던 역사는 헝가리 민족의 용맹함과 독립 정신을 상징한다. 보첸트죄르지 성 복원은 이러한 '위대한 헝가리'의 역사적 서사를 가시적 형태로 복원하고 국민들에게 각인시키려는 정책적 의지의 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국가의 영광과 투쟁의 역사가 집약된 특정 유적지를 발굴하고 복원해 교육 및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국민적 통합을 유도하고 국가 정체성을 공고히 하려는 헝가리 정부의 노력을 반영한다. 이는 단순한 문화재 보호를 넘어 특정한 역사적 내러티브를 선택하고 강조하는 문화 정책의 방향성을 시사한다. 

문화유산의 '활용': 관광 자원화와 경제적 지속가능성 모색
이번 복원 프로젝트의 목표는 단순히 성을 과거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재단 측은 복원된 성을 '역사 및 관광 명소'로 개발하고 나아가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시설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명확히 밝혔다. 이는 헝가리 문화 정책이 문화유산을 단순 보존의 대상을 넘어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자원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 3D 조감도, 프로젝트 진행 상황 등을 공유하며 성 복원을 위한 기금 모금을 독려하고 있다 – 출처: 벨러 벌러진 유튜브 계정(@BalazsinBéla) >

이번 프로젝트는 역사적 의미가 깊은 장소를 매력적인 관광 콘텐츠로 개발해 국내외 관광객을 유치하고 이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려는 전략이다. 또한 공공 재정과 자원봉사자의 참여를 통해 2040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장기적인 계획은 문화유산 복원 및 활용이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지속가능한 미래 가치 창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문화 정책이 문화적 가치 보존과 경제적 효용성 증대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최근의 세계적인 추세와도 맥을 같이 한다. 

보첸트죄르지 성 복원 프로젝트는 헝가리 문화 정책의 중요한 단면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국가적 자부심과 정체성을 강화하기 위해 역사적 서사를 적극적인 활용하고,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동시에 관광 자원 및 경제적 가치 창출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실용주의적 접근과 장기 비전과 투자를 통한 추진 등이 핵심적인 특징으로 분석된다. 폐허 속에서 되살아날 보첸트죄르지 성이 헝가리의 과거 영광을 재현하는 동시에 미래 세대를 위한 새로운 문화 및 경제적 가치를 어떻게 창출해 나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벨러 벌러진 유튜브 계정(@BalazsinBéla), https://www.youtube.com/watch?v=QXZuMAmNo74
-《Helló Magyar》(2025. 4. 4). Mátyás korivárkastélyt építenek újjá, https://hellomagyar.hu/2025/04/04/matyas-kori-varkastely-ujjaepul/

통신원 정보

성명 : 유희정[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헝가리/부다페스트 통신원]
약력 : 『한국 영화 속 주변부 여성과 미시 권력』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