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통신원은 굉장히 특별한 시간 여행을 경험했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만 2,000년 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당시 고대인들이 세웠던 인류 최초의 종교·예술적 건축물로 꼽히는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에 다녀왔다. 괴베클리 테페가 속한 위치는 튀르키예 남동부 샨르우르파 주로 시리아 국경까지 불과 90km밖에 되지 않아 이동하는 동안 눈에 들어온 아랍어 간판들이 매우 낯선 기분을 자아냈다.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벌판 언덕 길을 따라 달리고 또 달리다 보니 통신원의 차량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마치 사막과도 같은 황량한 거대한 공간 위 자신만이 혼자서 절대자를 향해 아주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매우 신비하면서도 경이로운 감정마저 들게 했다. 시간을 거슬러 그 옛날 고대인들이 신과 만나기 위해 이 언덕 위에 올랐을 그때 그들의 감정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괴베클리 테페 신전 언덕 아래로 펼쳐진 하란 평야 - 출처: 통신원 촬영 >
괴베클리 테페로 올라가는 길에는 사람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공간마저 보이지 않았다. 완만하게 펼쳐진 벌판을 따라 오르다 보니 어느새 저 멀리에서 배불뚝이 모양의 언덕이 조그맣게 눈에 들어왔다. 인류 최초의 신전 괴베클리 테페다. 괴베클리 테페는 지난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됨과 함께 튀르키예 정부가 공식 관광지로 첫 개방을 한 이후 8년이 지난 지금도 발굴 작업이 아주 조심스럽게 계속 진행 중이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는데도 신과 만나는 성스러운 공간 안에 들어서면서부터는 바람이 아주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 돔 아래로 발걸음을 들여놓은 찰나 순간적으로 현대에서 1만 2,000년 전의 시간으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 착각에 빠지게 했다. 높이 3m~5.5m의 T자형 석주들이 원형으로 배열된 4개의 구조물이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중앙의 두 거대 석주를 둘러싼 10개~12개의 작은 석주들, 40톤~60톤에 달하는 석회암 덩어리들이 어떻게 이곳에 세워졌는지도 놀랍지만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고대인들의 종교·예술적 상상력이다.
< 인류 최초의 신전 괴베클리 테페, 여러 모양의 석조들 - 출처: 통신원 촬영 >
괴베클리 테페는 영국의 스톤헨지보다 6,000년이 앞서고 이집트의 피라미드보다는 무려 7,000년이나 더 앞선 구조물이다. 인류가 농사를 지으며 먹을 것을 먼저 생각하기도 전에 초월적 존재를 더 먼저 추구했다는 점이 놀라울 뿐이다. T자형 석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들이 단순한 돌기둥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유네스코는 이를 "인간의 형태를 추상적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팔과 손, 벨트와 의복이 세밀하게 새겨진 머리 없는 거인들이다. 그러나 진정한 경이로움은 석주 속에 새겨진 동물 조각에서 시작된다. 1만 2,000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붉은색, 흰색, 검은색 안료로 칠해져 남아 있는 야생 멧돼지 석화는 인류 최초의 채색 조각상이다. 여우는 송곳니를 드러낸 채 위협적인 표정을 짓고 있으며, 독수리는 날개를 활짝 편 채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려 한다. 뱀과 전갈, 거미들은 생과 사의 경계에서 꿈틀거린다. 흥미로운 것은 석주 위에 새겨진 동물들이 모두 일상적으로 사냥하던 온순한 동물들이 아니라 인간에게 경외감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야생의 존재들이라는 점이다. 독일 고고학자 클라우스 슈미트는 이를 두고 '죽은 자들을 지키는 수호자'라고 해석했다. 지금으로부터 1만 1,500년 전 고대인에게 이 동물들은 죽은 자를 지켜주는 신의 화신이었을 것이다. 1만 2,000년 동안 세상 속에 감춰져 있던 괴베클리 테페는 이제 만인에게 공개돼 가설과 반론을 만들었다. 농업과 정착, 종교적 의례의 과거 고전적 구조가 아닌 종교와 의례가 문명의 탄생을 이끌었다는 기존의 구조를 완전히 뒤엎은 독일 슈미트 박사의 가설에 세계 대부분의 학계가 동의한다. 그러나 2014년 슈미트 박사 사후 계속된 발굴 연구를 통해 정착 흔적이 발견되면서 또 다른 가설을 만들어 내고 있다. '토템주의, 샤먼, 다기능 집단 공간이었을 것이다'라는 가설과 더불어 괴베클리 테페와 유사한 유적 12곳이 추가로 발굴되면서 튀르키예 학계에서는 '유적 간 집단 협업과 상징, 종교, 의례 연결망을 갖춘 성스러운 네트워크를 갖춘 장소였을 것이다'는 가설이 나왔다. 그러나 늘 역사와 시간 앞에 겸손하게 일해 온 세계 여러 발굴 팀들은 누구 하나 서두르거나 자신들의 연구가 정답이라고 하는 데는 한곳도 없다. 1만 2,000년의 시간 동안 침묵하다가 이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괴베클리 테페는 이제 고작 5%도 안 되는 부분을 드러낸 것이며, 발굴 팀들은 오늘도 아주 조심스럽게 땅 아래 신비 속에 감춰져 온 부분을 열어가고 있다.
< 괴베클리 테페와 인근 지대에서 계속되고 있는 발굴 작업 - 출처: 통신원 촬영 >
세계 최초의 신전으로 드러난 괴베클리 테페가 현대라는 시간 위에 있는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질문은 무엇일까? 앞으로 발굴이 더 이루어짐에 따라 지금까지 수많은 가설들은 사실과 왜곡으로 가려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1만 2,000년 전의 모습도 서서히 복원되겠지만 고대인이 그랬듯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도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절대자에 대한 동경과 두려운 마음은 그때와 같다는 것이다. 통신원에게는 이번 취재가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다. 1만 2,000년 전 역사 현장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자리에 있어 본다는 것 자체가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류 최초의 신전, 괴베클리 테페가 현대라는 시간 위에 서 있는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도 세계적으로 저명한 고고학자들의 연구 가설이 아닌 현장에서 인터뷰를 가진 한 방문객의 말 한마디가 큰 인사이트를 남겨 주었다. 그는 "괴베클리 테페가 발굴된 이 지대에는 오래전부터 임신을 못하는 여성들이 와서 동물을 잡고 희생 제사를 지내왔다."고 하면서 사람들이 제의를 벌였던 곳도 알려 주었다. 그러면서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는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이나 세상에 대해 아무런 경험도 가지지 않았던 고대인이나 같은 것 같다."고 했다. 아나톨리아 고원 위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그 질문의 답을 찾고 있다. 신들이 떠난 자리에서 인간이 남긴 가장 오래된 기도문을 읽으며 그 답을 생각해 본다.
사진출처 - 통신원 촬영
성명 : 임병인[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튀르키예/이스탄불 통신원] 약력 : YTN world 해외 리포터, 민주평통 남유럽협의회 튀르키예 지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