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바르샤바의 가을은 언제나 피아노 선율로 물든다. 5년마다 열리는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단순한 경연이 아니라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생애를 바꿀 수 있는 무대이자,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적 사건이다. 2025년 제19회 콩쿠르에도 여러 국가의 유망한 연주자들이 참가했으며 그중 한국의 피아니스트 이혁, 이효, 이관욱은 각기 다른 음악 세계로 청중의 이목을 끌었다. 바르샤바의 중심부, 필하모니아 나로드바(Filharmonia Narodowa) 앞에는 대회 기간 내내 긴 줄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표를 구하기 위해 새벽 두 시부터 줄을 서며 남은 입장권을 기다렸다. 매표소가 열릴 때마다 박수와 환호가 터졌고, 표를 손에 쥔 사람들은 들뜬 목소리로 서로 인사를 건넸다. 콩쿠르 기간 동안 바르샤바는 말 그대로 '쇼팽의 도시'가 됐다. 유럽 각국에서 찾아온 관객들로 호텔과 카페가 연일 붐볐고, 트램 내부에서는 젊은 피아니스트가 직접 미니 콘서트를 열었다. 지하철역 외벽은 쇼팽의 초상과 악보 패턴으로 꾸며졌으며, 거리 곳곳에서는 그의 음악을 주제로 한 전시와 강연이 열렸다. 도시 전체가 하나의 음악 축제처럼 숨 쉬고 있었다.
<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이혁 - 출처: 쇼팽 인스티튜트 페이스북 계정(@NarodowyInstytutFryderykaChopina) >
이혁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연주자 중 한 명이었다. 이미 2021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한층 성숙한 해석으로 돌아왔다. 3차 라운드에서 보여준 폴로네이즈와 스케르초는 "기술적 완벽함과 감정의 절제를 동시에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폴란드 언론은 그의 연주를 "정확함과 열정이 교차하는 순간"이라 표현하며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심사 결과는 아쉽게도 결선 진출 탈락이었다. 이혁은 인터뷰에서 "콩쿠르는 과정이고, 음악이 제 안에 남아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하며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였다. 그의 말은 음악가로서의 태도와 품격을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었다.

<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이효 - 출처: 쇼팽 인스티튜트 페이스북 계정(@NarodowyInstytutFryderykaChopina) >
또 다른 참가자 이효는 이번 대회에서 새롭게 주목받은 이름이다. 1, 2차 라운드에서 보여준 노크투른과 발라드는 차분하면서도 세련된 감각으로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는 음 하나하나에 서사를 담듯 섬세한 터치로 작품의 감정선을 이어갔다. 결선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폴란드 음악계에서는 "조용히 떠오르는 새로운 세대"로 그를 주목했다. 콩쿠르 이후 폴란드 내 몇몇 방송사와 음악 전문 매체가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이는 젊은 세대 한국 피아니스트에 대한 현지의 관심이 여전히 높음을 보여준다.

<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이관욱 - 출처: 쇼팽 인스티튜트 페이스북 계정(@NarodowyInstytutFryderykaChopina) >
한편 이관욱은 이번 대회에서 그는 전통적 형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자신만의 리듬과 페달링으로 작품을 재구성했다. 특히 1차 라운드에서 연주한 스케르초 2번은 청중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쇼팽은 제게 제2의 언어다. 이번 무대는 그 언어로 폴란드 관객에게 인사드린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과 태도는 겸손하면서도 자신만의 음악적 확신을 드러내 현지 팬들의 호응을 얻었다. 올해 콩쿠르 결선 진출자 명단에 한국인의 이름은 없었다. 그러나 한국 피아니스트들의 존재감은 여전히 강렬했다. 2021년 조성진 이후 이어진 세대교체 속에서 이번 대회는 그다음 세대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세 연주자는 결과보다 음악 그 자체에 집중하는 태도로 주목받았다. 바르샤바의 무대에서 세 피아니스트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쇼팽의 언어를 해석했다. 이혁은 내면의 폭발을 절제된 구조 안에 담았고, 이효는 감성적 섬세함으로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관욱은 새로운 접근으로 쇼팽의 낭만을 현대적으로 풀어냈다. 이 세 연주자의 공통점은 완벽을 향한 치열한 훈련과 음악을 향한 진정성이다. 결과와 무관하게 그들이 남긴 인상은 분명했다. 2025년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는 한국 피아니스트들에게 결과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손끝에서 울린 쇼팽의 선율은 언어를 넘어선 공감의 형태로 전해졌다. 세 연주자는 비록 결선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폴란드 관객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이다. 콩쿠르는 끝났지만 그 여운은 여전히 바르샤바의 가을 공기 속에 남아 있다. 다음 콩쿠르에서 또 어떤 이름으로 한국의 음악을 세계 무대에 새기게 될지 그 기대는 이미 시작됐다.
사진 출처 및 참고자료 - 쇼팽 인스티튜트 페이스북 계정(@NarodowyInstytutFryderykaChopina),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69819969917
성명 : 김민주[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폴란드/바르샤바 통신원] 약력 : 에피소든 운영 총책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