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예술인들의 성지인 쑤허완(苏河湾)에 위치한 아라리오 갤러리(阿拉里奥画廊)에서 요즘 중국에서 화제가 된 한국인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눈길을 끌고 있다. 아오키지(Aokizy)라는 작가명을 가진 한국인 작가 옥승철(이하 통칭 아오키지)의 이번 개인 전시는 2025년 11월 11일을 시작으로 2026년 1월 3일까지 대중들에게 공개된다.

< 올해 상하이(Shànghǎi) 도심에서 재개관한 아라리오 갤러리 – 출처: 통신원 촬영 >
아라리오 갤러리는 1989년 개관한 이래 현재는 서울, 천안, 중국 상하이 지역을 포함하여 총 3개의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아시아 미술의 정체성 확보와 추구라는 큰 목표 속에서 아라리오 갤러리는 아시아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며 그들을 국제적으로 홍보하는데 주력하고 있고, 갤러리 관계자는 아시아의 실험적인 미술품을 전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전했다. 2005년 베이징(Běijīng)에서 중국 진출의 첫 걸음을 뗀 아라리오 갤러리는 2014년 상하이의 쉬자후이 헝산로(徐家汇衡山路)를 거쳐 2025년 3월, 상하이 징안구에 위치한 베이쑤저우로(静安区 北苏州路)에서 재개관했다. 전시장을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아오키지 작가의 작품들은 캔버스 화면을 꽉 채운 얼굴과 강한 색상을 조합하여 마치 어디서 본 듯한 일본 만화를 연상시켰다. 아오키지 작가의 이번 전시 제목인 ‘란포(Ranpo, 乱步)’는 일본의 추리 소설가 에도가와 란포(Edogawa Ranpo)에서 따왔다. 흥미로운 것은 이 추리 소설가 에도가와 란포 역시 자신의 필명을 미국의 추리 소설가인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에서 따왔으며, 에도가와 란포라는 이름 자체가 에드거 앨런 포의 일본어 발음 표기이다. 아오키지 작가는 이러한 사실을 발판으로 삼아 이번 전시 제목은 '문화 전환과 신분의 재구성'이라는 영원한 명제를 암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란포와 발음이 비슷한 중국어 ‘란포(乱步)’를 추가하여 '혼돈의 걸음걸이'라는 의미를 더했다. 중국어 ‘란포(乱步)’는 단어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의미가 ‘어지럽게 걷다’ 또는 ‘질서없이 움직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아오키지 작가의 작품 속 현대인이 처한 보편적인 심리 상태를 정확하게 포착한다. 우선 그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면, 우리는 얼굴이 더 이상 고유한 주체성을 지니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오키지 작가가 보기에 이제 현대 사회에서 얼굴은 점차 인식 불가능한 것이 되어가고 있고, 고유한 주체성을 가진 얼굴은 각자의 사회적인 역할과 디지털 인식 체계 속에서 이른바 ‘소멸’하고 있다. 예컨대 우리는 그의 작품을 볼 때 작품 속의 인물은 그것이 지닌 피부색, 표정, 헤어 스타일같은 외형적인 변수들을 통해 마치 일시적인 정체성을 얻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관람객이 작품 속 인물에게 느끼는 익숙함은 마치 관람객에게 하여금 대상을 알아본 듯한 착각을 일으키지만, 실제로 작품 속 인물은 결코 특정한 캐릭터로 정의되지 않는다. 아오키지 작가의 작업에서 집중해서 보아야 하는 것은 바로 '초상은 자아를 증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품을 보면 볼수록 얼굴과 이름은 오히려 중요하지 않으며,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작품이 또 다른 이미지와 정서를 어떻게 파생시키는가에 있다. 이처럼 일종의 '열화된 이미지'는 갖은 정보들로 포화된 현대 사회에 대한 은유적인 반응이다. 아오키지 작가는 그러한 디지털 환경을 비판하면서, 작품 속 이미지는 관람자의 시선과 맥락 안에서 다시 재구성된다.

< 아라리오 갤러리에 걸린 아오키지(Aokizy) 작가의 작품 – 출처: 통신원 촬영 >
그렇다면 아오키지 작가의 작품은 왜 중국 대중들에게 소개되었으며, 그의 그림은 왜 화제가 되었을까? 2023년부터 중국의 2030 세대의 젊은이들은 아오키지 작가의 작품을 가지고 중국의 소셜 미디어와 위챗(Wechat)을 중심으로 한 프로필 사진으로 자주 사용하기 시작했다. 다만 중국의 2030 세대의 젊은이들이 먼저 해당 그림이 한국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 자신의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했다기 보다, 오히려 그의 작품이 주는 일종의 특정한 정서와 철학이 마음에 들어서 사용한 것에 가깝다. 아오키지 작가의 작품이 중국의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게 된 원인에는 2023년부터 위챗과 샤오홍슈(Xiaohongshu)를 중심으로 시작된 소위 ‘소셜 미디어 익명, 가상 신분의 기본 설정 문화(社交隐身,默认虚拟身份)’에 있다. 예컨대 한국의 젊은이들은 인스타그램(Instargram)과 같은 소셜 미디어상에서 스스로의 얼굴을 프로필 사진으로 해두기도 하고, 또는 자신의 본명을 활용하여 작명한 계정을 일명 ‘주 계정’으로 부르며 ‘주 계정’과는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부계정으로 따로 운영하곤 한다. 반면 그와는 대조적으로 중국의 젊은 소셜 미디어 사용자들은 프로필 이름을 익명의 이름인 ‘모모(momo)’로 설정해 두고, 자신의 실제 얼굴 사진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사진이나 캐릭터(二次元)를 프로필 사진을 설정하여 해두어 자신을 마치 대중 속의 한 개체처럼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현실 속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현실 사회에서의 사교 활동마저 완전히 배제한 채 온전히 소셜 미디어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부터 기인한다. 이러한 경향에 따라 중국에서는 완전한 익명을 보장하지만 자신의 주된 감정이나 정서를 대변할 수 있는 아오키지 작가의 작품을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는 젊은 사용자들이 많아진 것이다.

< 중국 네티즌들이 아오키지 작가의 작품을 프로필 사진으로 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많은 게시물들– 출처: 아오키지 작가 작품 관련 샤오홍슈 계정(@黑白灰设计工作坊) >
아오키지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 서평을 써놓은 중국 네티즌의 작품 해설을 보면 그의 작품은 마치 80, 90년대의 일본 애니메이션 스톱모션(Stop Motion)과 같아서 마치 어린 시절의 만화를 보는 듯한 추억을 회상시키면서도 또한 화면 속 인물을 보면서 자신의 감정을 끊임없이 연상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에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중국의 젊은이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몰입형 공감’이라고 주장하며, 아오키지 작가는 고상한 예술가의 자세를 취하지 않고 젊은이들이 각자 자신의 작품을 이해하고 소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의 중요한 작품 철학이라고 분석했다. 즉 중국의 네티즌들은 아오키지 작가의 작품이 마치 예술을 감각적인 감정 기호로 만들었다고 평가하며, 화면 속 이미지가 글과 문화의 차이를 뛰어넘어 국적을 불문한 관람객의 감정과 신경에 직접 작용했다고 본다. 네티즌은 이러한 예술은 곧 각자의 삶이 되고, 각자의 정서는 곧 추세가 되며, 이러한 작품 세계는 현대인들이 사랑하는 사고 방식이라고 극찬했다. 이와 더불어 아라리오 갤러리의 위챗 공식 계정을 보면 아오키지 작가의 인터뷰를 확인할 수 있는데, 그에 의하면 작업 초반에서는 1990년대 애니메이션을 참고했지만 현재는 의도적으로 마치 어디에선가 본 듯한 느낌으로 그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특정 만화를 떠올리도록 만든다고 밝혔다. 대체로 그의 작업물은 먼저 컴퓨터로 그래픽 이미지를 인쇄해 캔버스에 옮기는 방식으로 작업하는데, 이는 작가의 손으로 직접 그려내고 만든 것을 원본으로 정의하는 미술계의 전통을 완전히 뒤집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아오키지 작가는 작품 속 이미지에 특정한 이름이나 성별, 나이, 이야기를 담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성향은 자신이 소셜 미디어 속 한 명의 익명 개체로서 존재한다고 여기는 지금의 중국 소셜 미디어 문화와 맞아떨어졌다. 이번 전시는 지금까지 중국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그 출처를 모르고 사용해왔던 작가의 작품들을 한꺼번에 모아놓은 자리로서, 아오키지 작가의 작품과 그의 작품 철학을 더 깊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더불어 최근 형성된 온라인 문화 속에서 각자 자신만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그에 대처하는 방법들, 그리고 동아시아 전체가 공유하고 있는 현대적인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중국에서 한국 작가의 작품이 어떠한 용도로 사용되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의성을 가지기 때문에 의미가 깊은 전시라고 할 수 있다. 2024년에 들어서 상하이 곳곳의 미술관과 박물관에서는 전시뿐만 아니라 미술 강연, 작가 대담이나 팬 미팅, 영상 상영회 등 현지 관객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미술을 소개하는 것이 눈에 띈다. 과거보다 다채로운 정서와 물성을 가진 예술 프로그램들은 현지인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한국의 현대 미술과 문화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과 시각을 전해줄 것이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위챗(WeChat) (2023. 06. 19). ART MUSHROOM艺术指南|aokizy, 仅靠头像拿下万千潮人, https://mp.weixin.qq.com/s/L10Ix4V2va12X-_CkvtmLA - 위챗(WeChat) (2025. 09. 11). Aokizy——热血动漫的艺术, https://mp.weixin.qq.com/s/n3llCxIitHKjeVqlhyP9UA - 위챗(WeChat) (2025. 11. 05). 阿拉里奥上海|心声|与Aokizy对话, https://mp.weixin.qq.com/s/3mCYdlHgZuOiIf9gWEJ7zA - 샤오홍슈 계정(@黑白灰设计工作坊), http://xhslink.com/o/5wyQkUvUcgD - 샤오홍슈 계정(@Syuhan聊艺术), https://xhslink.com/m/4IE1c7TFM1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