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싱가포르가 해운 분야에서 새로운 협력에 나섰다. 싱가포르 해사 항만청(MPA)은 최근 한국 정부와 '그린·디지털 해운 회랑(Green and Digital Shipping Corridor)' 구축을 위한 협정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눈에 띄는 문화 교류나 관광 협력은 아니지만, 양국이 미래 산업의 핵심 인프라 영역에서 협력 관계를 확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움직임으로 평가된다. 이번 협정의 핵심은 친환경 해운과 해운 산업의 디지털 전환이다. 양국은 항만과 선박 운항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을 줄이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물류 흐름과 해운 데이터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공동으로 모색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친환경 연료 사용 확대, 디지털 항만 시스템, 해운 데이터 표준화 등을 중심으로 협력이 추진될 예정이다.

< 한국-싱가포르 간 협정 체결 현장 - 출처: 싱가포르 해사 항만청(MPA) 공식 홈페이지 >
싱가포르에 해운은 국가 경쟁력의 근간에 해당한다. 세계 최대 환적 항만 중 하나인 싱가포르항은 글로벌 공급망의 핵심 허브로 기능해 왔으며, 해운·물류 분야에서의 효율성과 신뢰도는 싱가포르 경제의 중요한 자산이다. 이런 싱가포르가 특정 국가와 해운 회랑 협정을 체결하는 것은 단순한 양자 협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국 역시 해운·조선·항만 기술 분야에서 오랜 경쟁력을 축적해 온 국가다. 대형 조선사를 중심으로 친환경 선박 기술 개발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고, 항만 자동화와 스마트 물류 시스템에서도 경험을 쌓아왔다. 이번 협정은 양국이 각자의 강점을 결합해, 탄소 감축과 디지털화라는 해운 산업의 공통 과제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이번 협력은 단기적인 사업 계약보다는 중장기적인 방향 설정에 가깝다. ‘회랑(corridor)’이라는 표현이 시사하듯, 특정 노선이나 기술 하나에 국한되지 않고 향후 표준과 운영 방식까지 함께 논의하겠다는 구상이다. 싱가포르가 이러한 형태의 협력을 추진하는 국가는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한국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도 볼 수 있다. 최근 한국과 싱가포르의 관계는 문화와 인적 교류를 넘어 제도와 산업 협력으로 점차 확장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케이팝 공연이나 관광 교류처럼 눈에 띄는 협력은 이미 익숙한 장면이 됐고, 이제는 자동출입국 심사 확대, 산업·기술 협력과 같은 보다 구조적인 영역에서 접점이 늘어나고 있다. 해운 협정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나온 결과다. 해운과 항만은 일반 소비자에게는 잘 드러나지 않는 분야지만, 글로벌 교역과 공급망 안정성 측면에서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탄소중립과 디지털 전환이 국제 규범으로 자리 잡아가는 상황에서, 해운 산업의 변화는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다. 한국과 싱가포르가 이 분야에서 협력을 시작했다는 점은, 양국 관계가 미래 산업의 규칙을 함께 고민하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이번 협정이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보다는, 중장기적으로 해운 산업의 변화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는 앞으로의 과제로 남아 있다. 다만 문화와 관광을 넘어, 보이지 않는 인프라 영역에서 시작된 이번 협력은 한–싱가포르 관계의 다음 단계를 보여주는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신호로 평가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싱가포르 해사 항만청(MPA), https://buly.kr/AwgoX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