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사에만 쓰일 역사가 아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오스카 정상에 오른 그 사건은 세계 영화사의 한 장면이며, 동시에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 영화사가 새로운 장으로 넘어가는 순간을 의미한다. 독일 대부분의 미디어도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소식을 메인 기사로 대서특필했다. 독일 주요 언론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한국 소식(혹은 미국 소식)을 메인 기사로 채운 건 남북 정상회담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역사의 변동은 놓칠 수 없는 법이다. 세계 영화사의 대변동에 독일 언론들은 앞다투어 그 배경과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기생충' 오스카 작품상 수상 소식을 알리는 독일 미디어.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쥐드도이체차이퉁', '슈피겔','차이트','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 - 출처: 각 언론사 홈페이지>
독일 주요 일간지인 <쥐드도이체차이퉁(SuddeutscheZeitun)>은 '기생충'의 오스카 수상 배경을 분석하고, 여러 기사를 통해서 봉준호 감독과 한국사회와 한국영화 등을 조명했다. 2월 10일 “오스카 2020-그 어느때보다 국제적인, 그래도 여전히 경직된”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기생충'은 작품상을 수상한 첫번째 비영어권 작품으로 여러 기록을 세웠다“면서 “오스카는 이로써 앵글로잭슨 서사의 지배력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세계적 영화판임을 확실히 했다”고 평가했다. 또한 기생충의 수상은 지난 수 년 간 아카데미가 직면해있던 문제, 바로 다양성 요구에 대한 대답이라고 분석했다. <쥐드도이체차이퉁>도 일단 놀라움을 숨기지 않았다. 기자는 “할리우드 작품상 수상을앞두고 대부분의 오스카 전문가들은 1917이 발표될 것이라고 예상했다”면서“제인 폰다가 '기생충'을 호명했을 때 놀라움은 완벽했다. 비주류는 가면을 벗고 오스카 아카데미가 선정한 주류로서의 정체를 드러났다”고 묘사했다. 이어 완전한 ‘비미국적’인영화 '기생충'의 수상은 그동안 아카데미를 지배한 미국 서사의 해체과정으로 바라봤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영어로 제작되지 않고, 미국이 아닌 완전히 다른 나라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것은. 이로써 할리우드는 그 어느때 보다 국제적인 영화제가 되었다. 앵글로잭슨 서사의 오랜 지배력은 무력해지고, 혹은 더 정확히 말하면, 새로운 국제 영화에 의한 지배력의 해체과정이 마침내 드러나게 되었다. 또한 오스카의 지난 감독상을 보면 변화의 낌새가 있기는 있었지만, 계속해서 다양성에 대한 요구와 압박에 직면해있었다고 설명했다. 헐리우드는 사회적인 진보를 입증해야 한다는 압박을 너무 많이 받고 있었기 때문에 국제적인 영화 제작들의새로운 침입은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그들은 어쨌든 다양성을 가지고 온다. 어쨌든 다른 관점, 다른 유머, 또다른 침착함을 가지고 있다. <쥐드도이체차이퉁>은 또 “영화의 나라 한국-이야기 탐구자에게는 파라다이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기생충’의 서사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한국 사회를 조명하기도 했다. 봉준호는 말한다. 오스카상을 받은 '기생충'에 대한 아이디어가 아주 자연스럽게 왔다고. 그저 몇 번의 산책을 하며 주위를 살폈고, (염감을 찾기위해) 큰 압박이나 특별한 열망이 필요하지 않았다. 봉준호는 서울에 산다. 그 사실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거대하고 활기찬 한국의 수도 서울은 수많은 부서진 것들로 가득 차있다. 이야기 탐험가들에게는 파라다이스와 같다. 가난한 김씨 가족의 이야기는 한국에서 사회적인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기사는 한국 사회의 역동적이고 빠른 발전 과정, 그 과정에서 온 사회적압박과 빈부격차, 거기에가 거대한 엔터테인먼트 산업까지 한국의 면면을 조명했다. 이어 “영화 제작자는 영감을 받기 위해서 그저 관찰할 뿐이다. 그렇게 기생충이 탄생했다. 그리고 좋은 영화들이 더 나올 것”이라고 웃지 못할 평을 남겼다. 봉준호 감독을 집중 조명한 또 다른 기사에서는 “마틴 스콜세지와 쿠엔틴타란티노를 뒤에 세운 이 남자는 대체 누구인가”라며 봉준호를 다양한 영화 서사와 장르를 모두 섞으면서도 그만의 고유한 스타일을 지켜내는 감독으로 평가했다. 그의 작품은 블랙코메디, 냉철한 사회 분석, 갈라진 국가의 상처에 대한 역사적 인식, 폭발적인 장르적 요소, 액션, 괴물 효과까지. 다시말해서 이 둥글둥글한 얼굴에 거품같은 곱슬머리를 한 50세 영화 감독은 영화의 모든 물로 다 섞었지만,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성공적으로 간직하고 있다. (중략) 그의 모든 영화는 물질과 계급 구조, 자본주의의 작동효과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그의 공상과학 작품부터 거친 디스토피아 작품에까지 드러난다. 독일의 저명한 주간지 <슈피겔>또한 여러 건의 기사를 통해서 기생충 수상의 의미를 분석했다. 2월 10일자 “세계가 눈을 돌리다, 그리고 현재도(Der Welt zugewandt - und der Gegenwart)”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이번 사건을 <쥐드도이체차이퉁>과 마찬가지로 다양성 요구에 직면한 오스카의 선택으로 바라봤다. 또한 넷플릭스를 염두에 둔 분석도 눈에 띈다. 최근 국제영화제가 있을 때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는 치열한 토론의 소재로 오르내리곤 한다. 과연 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영화'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다. 이 와중에 영화 산업의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작하고, 유통한, 거기다가 다양성에도 부합하는 작품 ‘기생충’이 아주 적절한 시기에 아카데미에 도달했다는 이야기다. <슈피겔>은 이어 ‘기생충’ 서사의 보편성을 높이 평가했다. 기자는 “영화 ‘기생충’의 서사는 어떤 나라에든 수출할 수 있고, 어떤 언어로 만들어지든 상관없다. 이러한 전 세계적인 보편타당성이 큰 영화를 만들어낸다”면서 “오스카가 기생충을 선택한 것은 용감하고 놀랍고 제대로된 결정이며 이는 (오스카의) 변화를 의미하고, 경직됨이 약화되었다는 걸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기사 출처 및 참고자료 https://www.sueddeutsche.de/kultur/oscar-2020-1.4791651 https://www.sueddeutsche.de/kultur/parasite-bang-joon-ho-kino-filmszene-korea-asien-1.4791866 https://www.sueddeutsche.de/kultur/bong-joon-ho-parasite-oscars-academy-awards-oscar-1.4791754 https://www.spiegel.de/kultur/kino/oscars-2020-triumph-fuer-parasite-der-welt-zugewandt-a-44d26700-9b88-4bbf-a951-095e7e9e7ba7 https://www.spiegel.de/kultur/kino/oscars-2020-was-macht-den-siegerfilm-parasite-so-besonders-a-109216ad-cfd4-4edf-b522-6b14c3e689f0
성명 : 이유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독일/베를린 통신원] 약력 : 라이프치히 대학원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학 석사 전)2010-2012 세계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