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단에 이집트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척들 혹은 친구들과 모여 금식을 깨는 이프타르(Iftar) 식사를 함께 한다. 전통적으로는 집에서 준비한 식사를 하지만 식당에서도 일반 메뉴와는 다른 라마단 이프타르 식사가 마련되기도 한다. 그 외 야외에서 친구들과 함께 자유롭게 식사를 하기도 하는데 카이로의 '알 호레야 가든(Al Horreya Garden)'에도 해 질 무렵이 되니 삼삼오오 젊은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도 있었다. 지난 3월 13일 한국 음식 인플루언서인 나다 엘 바샤틀리(Nada El-Bashatly)와 한국문화 인플루언서(EGKOREA)가 공동으로 준비한 한식 이프타르 행사였다. 공원에 도착했을 때 뜻밖에도 다양한 디자인의 한복을 입은 소녀들이 눈에 띄었다. 한편 화려한 자수나 현대적인 장식으로 꾸며진 전통 의상인 카프탄을 입고 있는 소녀들도 있었다. 공원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기도 하고, 서로 대화를 하기도 했다. 행사에 등록한 참석자들에게는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젓가락이 담긴 작은 봉지가 제공됐고 그 안에는 김과 찹쌀떡이 함께 참가 선물처럼 들어있었다. 선물을 포장하는 방식이나 아기자기한 혹은 세심한 정서가 한국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식을 깨는 시간이 다가오자 주최 측은 대추를 나누어 주었다. 대추야자를 한 알 먼저 먹는 것이 전통이다. 이는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가 단식을 깨기 위해 대추를 먹었다는 전승에서 비롯됐다. 아잔이 울리고 나자 대추를 먹고 물을 마시며 준비된 한국 음식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음식 메뉴는 닭강정, 떡볶이, 김밥, 만두튀김 등이었고, 먹으면서 "맛있다."라며 기쁘게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단식 후 낯선 이국 음식을 먹으면 속이 불편하지 않냐?"는 통신원의 질문에 참석자들은 "한국 음식은 우리에게 낯선 음식이 아니다."라며 웃어 보였다.
< 한국 음식이 담긴 도시락으로 이프타르를 함께 하고 있는 모습 - 출처: 통신원 촬영 >
행사를 주최한 나다 씨는 이집트에서 활동하는 푸드 인플루언서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로 한식을 비롯한 다양한 세계 음식을 소개하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두 아이의 엄마인 그는 가정생활과 개인 커리어를 병행하면서 자신의 열정을 펼쳐가고 있다. 특히 한식에 대한 애정이 깊어 이를 알리기 위해 다양한 행사를 기획해왔다. 이번 한식 이프타르 행사는 그가 주도한 세 번째 행사로 매년 규모와 참여자가 점점 늘어나는 등 한국문화 커뮤니티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나다 씨는 처음에는 라마단 기간 동안 친구들과 함께 집에 모여 이프타르 때에 한국 음식을 먹었던 것을 계기로 이 행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소셜미디어에서 한식을 비롯한 한국문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큰 규모의 이프타르 행사로 확장됐다. 이번 행사에는 약 200명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함께했다. 그는 "비록 처음에는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한국'이라는 공통 관심사 덕분에 마치 오랜 친구처럼 하나가 되는 것이 공동체 정신을 함양하는 라마단의 정신과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라며 기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한국 음식뿐만 아니라 한국 전통 의상인 한복도 큰 인기를 끌었다.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어린이와 여성들의 모습이 보였는데 이 한복을 만든 이는 나리만 타랄 살라마('Kimnarimaan'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이다. 전통 의상과 한복이 어우러진 모습은 한국문화가 자연스럽게 현지에 녹아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행사장 한쪽에서는 제기차기와 공기놀이를 즐기는 모습도 볼 수 있어 한국문화 체험의 재미를 더했다.
< 한복을 입고 한국문화를 즐기는 이집트 소녀들의 모습 - 출처: 통신원 촬영 >
나리만 씨는 <대장금>을 보며 처음으로 한복을 알게 되면서 한복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집트에서는 한복을 배울 곳이 없어 독학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번역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한국어로 된 한복 디자인 책과 영상 자료를 아랍어로 번역하며 배웠다. 그는 원단 시장에서 천을 구입해 한복을 제작하며 금박지와 특수 접착제로 장식을 더하기도 한다. 때로는 원단을 한국에서 직접 구입해서 제작하고 있다. 나리만 씨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복 관련 활동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한 이집트인은 "한국 음식을 먹으며 나리만 씨가 직접 만든 한복을 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한복이 전통 의상과 디자인은 다르지만 히잡을 쓰는 이슬람 여성들의 문화와도 가까운 점이 있어서 더 사랑받을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프타르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한국문화를 느끼고 즐기는 시간도 돼 좋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처럼 현지인들의 주도로 진행된 이프타르 행사가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자리를 넘어 현지의 가장 중요한 문화적 특징인 라마단 기간 외국 문화가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새로운 문화적 융합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었다. 특히 한국의 음식과 전통 의상인 한복이 라마단이라는 공동체적인 행사에 어우러지는 모습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현지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하는 한국문화의 흐름을 상징하는 행사였다. 앞으로 현지인들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행사에서 한국문화의 다채로운 모습들이 다양하게 발현되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출처 - 통신원 촬영
성명 : 손은옥[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이집트/카이로 통신원] 약력 : ANE(Artist Network of Egypt) 대표, 한국문화공간 The NAMU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