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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이슈]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 전시된 논란의 설치 작품

2025-04-30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Piazza della Signoria)은 통신원이 자주 지나다니는 곳으로 항상 관광객으로 붐비는 피렌체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도시, 피렌체에서도 역사적 중심지로 여러 중요한 건축물과 예술작품들이 위치해 있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 복제품(La statua di David di Michelangelo), 코시모 1세의 승마 기념비(Il monumento equestre di Cosimo I), 넵투누스 분수(Fontana di Nettuno) 등 많은 조각 작품들 사이를 걷고 있다 보면 르네상스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지난 주말 시뇨리아 광장을 가로질러 가다가 눈을 의심했다. 광장 한복판에 받침판도 없이 약 4m 높이의 청동 설치 작품이 우뚝 서 있었던 것이다. 사실 통신원이 더 놀랐던 것은 갑자기 나타난 설치 작품의 모습 자체다. 설치 작품은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포니테일 머리를 한 소녀가 짝 다리를 짚고 서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같은 젊은 여성이라면 시뇨라 광장에서 당장 수십 명은 찾아볼 수 있다. 그렇게 시뇨리아 광장에 새롭게 설치된 예술 작품은 신에 맞서는 영웅의 모습도,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는 전사의 모습도 아닌 평범하고 젊은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 젊은 현대 여성을 표현한 '펼쳐지는 시간' 뒤로 르네상스 시대를 표현하는 조각상들이 보인다
- 출처: 노베첸토 미술관(Museo Novecento) >

이 작품은 지난 3월 18일 시뇨리아 광장에 설치된 '펼쳐지는 시간(Time Unfolding)'이라는 청동 설치작이다. 영국 조각가 토마스 J 프라이스(Thomas J Price)의 해당 작품은 14세기 초 만들어진 시뇨리아 광장에서 처음으로 영웅도 아니고, 성경 속 인물도 아니며, 그렇다고 특별한 포즈를 취한 모습도 아닌, 상상의 세계에서 완전히 동떨어져 젊은 현대 여성의 모습을 하고 평범한 일상생활의 자세로 '불멸'이 됐다. 

"토마스 J 프라이스의 '펼쳐지는 시간'은 오랜 세월 동안 서양 미술의 역사에서 특징지어진 기준과 미적 모델들과 의미 있는 대조를 이룬다. 그동안 서양 미술의 이 모델들은 오늘날까지도 변하지 않는 불변의 것으로 여겨지며 타문화와 협상 없이 존재해 왔다." 노베첸토 박물관(Museo Novecento) 홈페이지에 기재된 '펼쳐지는 시간' 소개 글이다. 계속해서 해당 글은 "이 작품의 젊은 여성은 일상의 이미지를 가지고 영웅적이거나 성경적, 또는 신화적인 인물들과 대화하고 있다. 받침대도 없이 돌바닥에 바로 놓여 있는 것은 그녀를 다른 차원(통신원 주: 현대적이고 일상적인 차원)에 위치시켜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 속을 지배하는 르네상스 조각 작품들의 고정된 영원성 사이와 차이를 만들어낸다."라고 말한다.

< 작품과 똑같은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고 있는 어린 소녀 - 출처: 통신원 촬영 >

노베첸토 박물관(@museonovecento) 인스타그램 계정에 올라온 '펼쳐지는 시간' 전시 사진에는 상반된 댓글들이 올라와 있다. "미켈란젤로의 도시에 대한 모욕.(@toyolizio)", "정말 놀라운 작품입니다! 현대 조각상이 과거의 조각들과 함께 전시돼 있다는 사실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의 진화가 이루어져 있다는 점에서 예술의 타임캡슐과도 같은 것입니다.(@dorvilier.art)", "경이로운 시뇨리아 광장에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등지고 스마트폰에 머리를 숙여 현실과 완전히 단절된 채, 주변의 예술에 대한 열정도 전혀 없는 소녀.(@lororenzo_03)", "피렌체가 흉측하게 변화하는 것처럼 그에 걸맞은 흉측한 조각상… 나는 더 이상 나의 도시를 알아볼 수 없다.(@t14febbraio)", "예술은 세상을 반영하는 것이며 이 도시의 행정부가 우리에게 다시 한번 그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 설치는 일시적이지만 피렌체의 웅장함은 영원합니다.(@gfarinola)" 

가히 논란 속 작품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적어도 인스타그램 속에서 이 작품에 대한 의견은 역사와 전통의 도시 피렌체에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라는 평과 현시대를 반영하는 훌륭한 작품이라는 의견으로 갈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뇨리아 광장에서는 가족과 함께 온 관광객으로 보이는 소녀가 작품 속 여성처럼 핸드폰을 보는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소녀의 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었다. 먼 미래에 이 작품이 역사가 될 때 그때 사람들은 이 작품을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해진다. 토마스 J 프라이스의 '펼쳐지는 시간'은 9월 14일까지 시뇨리아 광장에 전시될 예정이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노베첸토 미술관(Museo Novecento) 홈페이지, https://www.museonovecento.it/thomas-j-price-in-florence-piazza-della-signoria/

통신원 정보

성명 : 백현주[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이탈리아/피사 통신원]
약력 : 이탈리아 씨어터 노 씨어터(Theatre No Theatre) 창립 멤버, 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