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3일 독일 총선이 끝났다. 선거 결과는 중도 보수계열 정당 기민/기사연합(CDU/CSU)이 28.52% 득표해 208석, 극우로 평가받는 독일대안당(AfD)이 20.8% 득표해 152석, 진보계열로 분류되는 사민당(SPD)이 16.41% 득표해 120석, 녹색당(Die Grüne)이 11.61% 득표해 85석, 좌파당(Die Linke)이 8.77% 득표해 64석을 획득했다. 자민당(FDP)과 자라바겐크네히트 정당(BSW)은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독일 문화위원회(Deutscher Kulturrat)는 독일 내 문화 단체들의 연합체다. 연방정부, 주정부, 유럽연합 산하 기관과 협력해 문화정책 수립 및 집행에 자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동 단체는 총선 이후 문화정책과 관련해 각 정당의 입장을 묻는 공식 서한을 보냈다. 기민/기사연합, 사민당, 녹색당, 자민당, 좌파당이 응답했으며 독일대안당과 자라바겐크네히트 정당은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득표율 순으로 각 정당의 문화정책에 관한 입장을 분석해 보기로 했다.
< 녹색당 공식 로고 - 출처: 녹색당 페이스북 계정(@Die Grünen) >
녹색당은 다양한 환경 정책 의사결정 과정에서 집권 정당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1974년 프라이부르크 인근 빌(Wyhl) 지역 원자력 발전소를 주민 150여 명이 점거한 일이 있었다. 주정부 당국은 이들을 연행했고 반원전운동은 이 사건을 계기로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된다. 전국에서 모인 3만여 명이 발전소 부지를 다시 점거했다. 한 달 뒤 주정부는 원자력 발전소 허가를 철회했다. 1977년을 기점으로 반원전운동은 선거 연대로 이어졌다. 이 연대는 1980년 1월 녹색당 창당의 기반이 됐다. 녹색당은 1983년 3월 총선에서 독일 정치 역사상 최초로 3당 체제를 무너뜨리며 원내에 입성한다. 탈원전과 과감한 기후정책이 녹색당의 정책 방향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녹색센터, 지속가능한 문화산업 재정 지원 녹색당은 '녹색문화 지원 센터(Green Culture Anlaufstelle)'를 통해 문화산업이 지속가능한 운영으로 전환하는 것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 센터는 연방정부 산하 문화·미디어 담당 특임관의 공식 지원을 받는다. 전문지식, 데이터, 상담 등 다양한 방식의 지원을 제공하며 독일 문화 기관들이 2045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박물관, 전시회 운영 등 문화 프로젝트가 지속가능한 형태로 운영될 수 있도록 자문을 제공한다. 공식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동 센터는 에너지 효율성(Energieeffizienz), 탄소 배출 분석(Klimabilanzierung), 순환 경제(Kreislaufwirtschaft), 지속가능성 보고 및 관리 시스템(Reporting und Management systeme)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관련해서는 문화 시설들이 기후 중립성을 달성하도록 지원하는 녹색문화 지원 센터의 확대와, 문화 기관 및 프로젝트에 대한 안정적 재정 지원을 강조했다. 또한 성 평등 촉진을 위한 최저 보수 기준과 예술가 사회보험 강화 계획을 밝혔다. 녹색당은 문화산업이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재정적 지원을 실시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사실상 환경정책에 해당하는 방향이라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AI 데이터 활용, 원작자에 적절한 보상 필요 녹색당은 인공지능과 관련해 AI 시스템이 저작권이 있는 데이터를 훈련에 활용할 경우 저작권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지급하도록 라이선스 모델을 도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미 유럽연합의 AI 법안에서 저작자의 권리를 강화했으며 향후에도 저작권 보호를 위한 자동화된 사용 허가권 제도를 확립할 예정이다. 이와 같은 입장은 사민당의 인공지능 문화정책과 동일한 것으로 보다 적극적인 원작자 보호를 강조하고 있다. 최근 챗GPT를 활용해 실제 사진을 지브리 애니메이션 스타일로 변환하는 것이 소셜미디어에서 확산되면서 저작권 논란이 일었다. 동 사건에서 볼 수 있듯 인공지능 데이터 학습과 저작권 문제는 향후에도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한 주제가 될 것이다. 전국 학생 나치박물관 최소 1회 방문 지원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고 동일한 일을 반복하지 말자는 의미의 기억문화(Erinnerungskultur)는 독일 사회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특수한 정책이다. 녹색당은 동 박물관 방문을 적극적으로 지원함으로써 이러한 정책 방향을 구체화하고 있다. 기억문화와 관련해 모든 학생이 최소 한 번은 나치기억박물관(NS-Gedenkstätte)을 방문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추진할 계획이며 기념관의 연구 및 교육 프로그램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녹색당은 다양성이 정책에 반영돼야 한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다. 반유대주의와 인종차별 등 집단적 혐오에 맞서기 위한 시민 사회 활동과 정치 교육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녹색당은 독일 사회의 다양성을 문화정책에 반영하는 방안으로 각종 지원사업에 '다양성 증가'를 명문화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독일의 이민사회 현실을 반영해 식민주의, 동독(DDR) 독재 정권 아래 일어난 인권탄압, 극우주의 폭력 등에 대한 기억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연방정부 차원의 문화 지원금을 확대해 점차 증가하고 있는 필요 예산을 보전하고 제도적 지원을 강화할 계획도 밝혔다. 문화적 다양성, 헌법에서 국가 목표로 규정돼야 사민당은 "문화와 예술이 헌법에 국가 목표로 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녹색당은 한층 더 적극적인 입장을 피력했다. 문화적 다양성이 헌법에 명시돼야 한다는 정책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또한 연방 차원에서의 문화정책을 제도적으로 강화하고 괴테인스티투트와 독일학술교류처(DAAD)를 포함한 독일의 대외문화교육정책기관에 안정적이고 독립적인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 자영업자 보험 가입 문턱 낮추고, 장애인 문화 분야 취업 촉진 노동시장정책과 관련해 녹색당은 개인 자영업자(Soloselbständige)의 의무적 실업보험 가입은 추진하지 않지만 자발적 가입의 문턱을 낮추겠다고 설명했다. 대신 다른 방식으로 사회적 보장이 없는 개인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연금보험 가입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또한 예술가 사회보험(KSK)의 재정적 안정을 유지하고 장애인의 문화 분야 취업을 촉진하기 위해 고용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투명하게 하겠다고 발표했다. 세금정책에서는 미술품 판매 시 갤러리와 미술 거래에서도 일관되게 낮은 부가가치세율이 적용되도록 이미 현 입법 회기에서 제도를 통일했다고 밝혔다. 또한 교육 서비스의 부가가치세 면제 적용 범위를 민간 교사가 제공하는 초중등 및 대학 교육까지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영화산업과 게임산업 지원을 위한 세금 인센티브 제도 도입도 계획 중이다. 문화 교육 분야에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문화 교육 연구를 진행했고 이를 반영한 지원 프로그램을 발전시킬 예정이다. 특히 디지털 및 아날로그 도서관 서비스 확대를 통한 문화 교육 접근성 향상을 제시했다. 녹색당의 문화정책의 핵심은 '환경'과 '다양성'이다. 녹색당은 이번 선거에서는 줄어든 의석으로 연정구성 참여에는 실패했다. 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의 대연정 정부 출범이 가시화된 가운데 녹색당의 균형추 역할이 어떤 방식으로 실현될 것인지 주목된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환경정책에 대한 대중의 피로감이 증가하고 일련의 범죄 사건들로 인해 이민자들에 대한 적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 속에서 녹색당의 정책 방향이 독일 사회의 극단화를 일부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녹색당 페이스북 계정(@Die Grünen), https://www.facebook.com/diegruenen/ - 녹색문화 지원 센터(Green Culture Anlaufstelle) 홈페이지, https://www.greenculture.info/ - 독일 문화위원회(Deutscher Kulturrat), Antworten der Parteien auf die Fragen des Deutschen Kulturrates, https://www.kulturrat.de/bundestagswahl/fragen-zur-kulturpolitik-an-parteien-zur-bundestagswahl/ - 《시사IN》 (2021. 7. 29). 사회 독일 녹색당, 기후변화 해결사 될 수 있을까,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115 - 《녹색당》 (2023. 4. 17). [논평]독일이 멈췄다. 우리도 멈추자., https://www.kgreens.org/statement/?bmode=view&idx=14899587
성명 : 최경헌[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독일/프랑크푸르트 통신원] 약력 : 『솔직한 유럽 이야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