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3일 독일 총선이 끝났다. 선거 결과는 중도 보수계열 정당 기민/기사연합(CDU/CSU)이 28.52% 득표해 208석, 극우로 평가받는 독일대안당(AfD)이 20.8% 득표해 152석, 진보계열로 분류되는 사민당(SPD)이 16.41% 득표해 120석, 녹색당(Die Grüne)이 11.61% 득표해 85석, 좌파당(Die Linke)이 8.77% 득표해 64석을 획득했다. 자민당(FDP)과 자라바겐크네히트 정당(BSW)은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독일 문화위원회(Deutscher Kulturrat)는 독일 내 문화 단체들의 연합체다. 연방정부, 주정부, 유럽연합 산하 기관과 협력해 문화정책 수립 및 집행에 자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동 단체는 총선 이후 문화정책과 관련해 각 정당의 입장을 묻는 공식 서한을 보냈다. 기민/기사연합, 사민당, 녹색당, 자민당, 좌파당이 응답했으며 독일대안당과 자라바겐크네히트 정당은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득표율 순으로 각 정당의 문화정책에 관한 입장을 분석해 보기로 했다.
< 자민당 공식 로고 - 출처: 자민당 페이스북 계정(@FDP) >
자민당은 자유주의를 중심 가치로 표방하고 있는 독일 정당으로 과거 지지율 10% 전후의 소규모 정당이었다. 이번 총선에서는 원내 진입에 실패했으나 네 차례 연정에 참여하는 등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국가주의적 관점을 부인하고 국가와 정부의 역할은 최소한이 돼야 한다는 정책 방향을 가지고 있다. 자민당 노선은 2012년 채택된 칼스루에 강령에 기초하고 있는데 자유를 강화를 주장하고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자민당의 문화정책에서도 경제적 자유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자유' 추가된 자민당의 문화정책 자민당은 '문화예술의 자유와 다양성'을 강조했다. 독일의 진보계열 정당이 문화적 다양성을 강조한 반면 자민당의 문화정책에는 '자유'라는 단어가 추가된 것이 눈에 띈다. 문화를 국가 목표로 기본법(헌법)에 명시할 것을 지지하며 공영방송 개혁을 통해 뉴스, 문화, 정치교육, 다큐멘터리에 집중하고 수신료를 인하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또한 문화 및 창의산업을 독일의 주요 경제 부문으로 강화하고자 하며 기회예산(Chancenbudgets)과 디지털화를 통해 문화예술 접근성을 높이겠다고 언급했다. 대외문화정책(AKGP)에서는 괴테 인스티투트와 해외관계연구소(ifa) 지원을 확대하고 중개기관을 통한 전략적 커뮤니케이션으로 허위정보에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인공지능 시대 디지털화 강조 자민당이 투자 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에 방점을 두고 있는 만큼 디지털화를 통한 사회적 체질 개선을 강조하고 있다. 디지털화에 따른 저작권 문제에 대해서는 디지털 환경에서도 창작자의 수익 보호가 보장되어야 하며 AI가 저작권 보호 자료를 이용하는 경우에도 명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법적 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존 저작권 보호 수준은 반드시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 관련해 수집품, 문화재, 공연 예술의 디지털화를 강화하고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을 참고한 EU 차원의 문화유산 보호기금(European National Trust) 설립을 추진할 계획이다. 영국의 내셔널 트러스트 모델은 1895년에 설립된 비영리 민간단체로 정부로부터 독립된 민간조직의 성격을 띤다. 문화재를 보존하고 대중에 공개해 문화유산에 대한 접근성을 제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자민당은 스스로 유럽 정당임을 밝히고 있는 만큼 독일 국경을 넘어선 유럽 차원의 문화재 보호 방안을 강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분 없이 폭넓은 문화 지원 자민당은 문화산업 지원 방안과 관련해 현행 문화 구분 기준을 없애겠다고 언급했다. 문화적 다양성 증진을 위해 자민당은 고급예술(E-Kultur)과 대중문화(U-Kultur)의 구분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는데 팝 문화뿐만 아니라 디자인, 만화, 타투 예술, 게임 등도 문화의 일부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반유대주의와 혐오 안돼… 기념관 방문 의무화 기억문화(Erinnerungskultur)와 관련해 자민당은 지역 기념시설과 추모 기념물 지원을 강화하고 기술 및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기념관 개념을 마련할 계획이다. 또한 연방문서보관소를 강화해 디지털 사회를 위한 기억기관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반유대주의와 혐오 확산을 막기 위해 관련 교육을 강화하고 홀로코스트 기념관 및 시나고그 방문을 의무화할 것을 제안했다. 시나고그는 유대교 종교 공동체의 중심이 되는 예배당으로 결혼식 등 주요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독일-이스라엘 청소년 교류를 강화하고 국제홀로코스트기억연맹(IHRA)의 반유대주의 정의를 국가기관 교육과 재정 지원 기준으로 삼겠다는 방침도 제시했다. 독일 분단 및 동독 불의 체제(DDR-Unrecht)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관련 기념관 방문도 의무화할 계획이다. 과감한 지원보다 목표 지향적 지원 자민당은 정부가 재정적 지원에 의존하는 것을 반대해왔다. 일시적 지원보다는 일자리 창출을 통해 노동자의 경제적 자립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 자민당의 기본 입장이다. 노동시장 및 사회정책 부문에서는 자영업자의 법정 건강보험료를 실제 수입에 연동시키고 사회보험 가입 절차를 간소화하겠다고 했다. 자영업자에게 최대한의 노후 준비 선택권을 부여하고 예술가사회보험(Künstlersozialversicherung)을 유지 및 강화하겠다는 입장도 제시했다. 또한 장애인의 문화 접근성 강화를 위해 연방정부 차원의 목표 지향적 지원과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세금정책에서는 2024년 연말 세법 개정을 통해 교육 서비스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제를 유럽연합법에 부합하도록 정비했으며, 예술품에 감면 부가가치세율을 통일 적용하는 조치를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문화 교육 강화 방안으로는 공공문화기관 연간 예산의 10%를 할당하고 아동과 청소년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문화 접근성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신호등 연립정부(빨강·사회민주당, 노랑·자유민주당, 초록·녹색당)의 붕괴는 자민당 소속 크리스티안 린드너(Christian Lindner) 전 재무장관이 18쪽짜리 문건을 공개하면서 가시화됐다. 문건은 법인세 인하와 탄소중립 목표 달성 시기 연기를 골자로 하고 있었다. 동 사건이 보여주듯 자민당은 경제적 자유주의를 중심으로 한 친기업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다. 원외정당으로 밀려난 자민당, 과거에도 원내 진입 실패 후 다시 지지율 상승을 경험한 만큼 향후에도 힘을 받을 여지는 아직도 남아있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자민당 페이스북 계정(@FDP), https://www.facebook.com/FDP/ - 독일 문화위원회(Deutscher Kulturrat), Antworten der Parteien auf die Fragen des Deutschen Kulturrates https://www.kulturrat.de/bundestagswahl/fragen-zur-kulturpolitik-an-parteien-zur-bundestagswahl/ - 《교포신문》 (2021. 3. 15). 독일을 이해하자(38) 독일의 정당(8) - FDP, https://kyoposhinmun.de/speziell/2021/03/15/10335/ - 영국 내셔널 트러스트(National Trust) 홈페이지, https://www.nationaltrust.org.uk/ - 《연합뉴스》 (2024. 11. 5). 경제정책 충돌 격화…독일 신호등 연정 무너지나, https://www.yna.co.kr/view/AKR20241105154400082
성명 : 최경헌[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독일/프랑크푸르트 통신원] 약력 : 『솔직한 유럽 이야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