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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그대의 차가운 손』이 독일에서 다시 태어나다

2019-05-23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17년 전에 쓴 자신의 작품을 지금 다시 이야기하는 건 어떤 느낌일까? 17년 전 작품이 다시 생명을 얻었다. 그것도 다른 언어로. 한강의 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 이야기다. 한강 작가가 2002년에 출판한 이 책은 지난 2월 15일 독일어 번역본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다. 신작이 아닌 과거의 소설이 이제서야 나온 이유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채식주의자』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가 반열에 오른 한강은 새로 쓴 소설뿐 아니라 과거의 작품까지 다시 조명받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은 이미 독일어로 번역이 되어있었지만, 당시에는 마땅한 독일 출판사를 찾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이후 이 책도 나올 수 있었다.

<독일어로 번역된 한강의 '그대의 차가운 손'- 출처 : 아우프바우 페어락(Aufbau Verlag)>

독일어판 『그대의 차가운 손』(Deine kalten Hande)은 발행되자마자 독일 출판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독일 주요 언론과 문학 관련 매거진은 빠지지 않고 서평을 발표했고, 호평이 이어졌다. 소설을 발행한 독일 출판사 ‘아우프바우 페어락’은 스위스와 독일을 잇는 작가 낭독 행사를 기획했다. 5월 13일 스위스 취리히를 시작으로 바젤, 독일 쾰른, 슈튜트가르트에 이어 베를린에서 낭독 및 작가와의 대담 행사가 이어졌다.

지난 5월 17일 행사가 열린 베를린의 페퍼베르크 테아터(Pfefferbergtheater)를 찾았다. 젊은이들이 북적거리는 동네에 자리한 이 극장은 맥주 양조장과 넓은 정원을 끼고 있는 무대공연 극장이다. 이날 행사에는 50명이 넘는 관객들이 자리했다. 한국인 관객들도 일부 있었지만 대다수가 독일 현지인 관객들이었다. 연령대도 다양했다. 무대에는 한강 작가와 통역가, 진행자 이외에도 독일 배우이자 작가인 리케 쉬미트(Rike Scshmid)가 함께 무대에 올랐다. 한강 작가가 소설의 일부를 읽었고, 리케 쉬미트는 독일어로 읽었다. 소설 집필 계기, 소설의 시각과 이미지,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 이외에도 오래된 작품을 다시 접하는 작가의 소회 등 다양한 주제의 대화가 오갔다. 관객들은 미동도 없이 무대에 집중했다. 다음은 진행자와 한강의 문답을 요약해 옮긴 것이다.

<베를린에서 열린 한강의 강독행사 – 출처 : 통신원 촬영>

이 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어떤 하나의 문장? 단어?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항상 시작은 좀 복잡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여러 겹이 이상하게 얽히면서 시작됩니다. 20대 후반 때 손 깁스를 주제로 하는 조각가를 만났는데, 살아있는 사람의 손을 뜨는 작업이 흥미로웠어요. 그때의 이미지가 계속 생각나고, 어떻게 하면 그런 이미지에 매료될까 하면서 가상의 인물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손뿐만 아니라 몸을 뜨는 작업도 상상을 했었는데, 우연히 신문에서 그 작가가 실제로 몸으로 작업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어요. 바로 연락을 하고, 작업실에 가서 보고 작업을 배웠습니다.
 
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 은 오래전에 쓰였지만, 독일에는 최근 출판됐습니다. 책이 독자적인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네, 이번에 소설 낭독회를 하러 취리히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책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어요. 책이라는 건 번역 덕분에 세계적으로 각자의 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다시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책은 살아있고, 책은 스스로를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2001년에 책을 썼는데, 이 책은 독자적인 생명을 가지고 있기에 오래전에 썼다는 게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또한 17년간 살면서 내가 변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그때 내가 그런 생각을 했구나 깨닫게 된 기회가 되었어요. 책이 막 나왔을 때 저는 진실, 가면, 마스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는데요, 지금은 어떤 인식의 영(0)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내부를 찾아가는가의 문제인 것 같아요.

『채식주의자』와 이 작품의 글에 다른 점이 있을까요?
저는 문체가 달라졌다고 느꼈어요. 그대의 차가운 손은 2002년, 채식주의자는 2003년 집필했습니다. 내용 면에서는 서로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데, 표현하는 부분은 다른 것 같아요. 채식주의자는 좀 더 절제되어 있고, 이 책은 좀 더 표현하는 느낌이 있어요. 인물이 말도 많이 하고, 몸부림치는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작가님은 아름다움에 어떻게 반응하나요? 이 책의 주인공처럼 반응하나요?
주인공과 비슷한 경험이 있어요. 어릴 때 뱀, 곤충, 박쥐, 전갈 이런 것들이 나오는 동물 다큐를 보는데, 동생이 '으~ 징그러워'하면서 지나갔어요.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이 우리 인간을 보면 어떻게 볼까? 너무 다르게 생겼는데, 인간을 보고 징그럽다고 하지 않을까? 아름다움이란 걸 뭘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이 좀 흘러 텔레비전에 아름다운 여배우가 나왔을 때,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내가 만약 전갈이라면, 그 여배우가 어떻게 보일까? 아름다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된 계기였고, 이런 질문을 오랫동안 발전시킨 인물을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아름다움과 징그러움은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어떤 전율이라는 점에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품에 예술가 직업이 자주 등장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저도 의식하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작품에 미술적인 요소가 나타나고 있었어요. 글을 쓸 때는 경험과 이미지를 따라가기에, 미술의 장면이 나오는 것 같아요.

<강독 행사가 열린 페퍼베르크 극장(좌)과 행사장 내에서 판매 중인 한강 작가의 책(우) - 출처 : 통신원 촬영>

그간 도서전이나 문학축제의 일환으로 열리는 행사에 가본 적은 있지만, 개별 강독행사를 방문하기는 처음이었다. 축제는 축제만의 북적이고 발랄한 분위기가 있지만, 이런 행사는 사실 조금 '지겹지 않을까' 생각했다. 독일에서는 작가들의 강독 행사가 많이 열리는 편이다. 책을 사서 읽으면 되는 일인데 왜 굳이 영화를 보러 가듯, 연극을 보러 가듯 비싼 티켓을 사서 강독행사에 가는 걸까? 그런 생각이 있었다. 이번에 열린 한강의 강독행사 시리즈도 모두 입장료 10~12유로 정도를 받았다. 한강의 베를린 강독행사를 보고 나니 책 행사에 대한 개념이 조금 바뀐다. 바로 책 그 자체도 '공연예술'이라는 점이다. 책은 영화나 연극으로 바꾸지 않고도, 그저 책 그 자체로도 무대예술이 될 수 있음을 보았다. 무대에 비춰진 조명, 작가와 배우의 소설 낭독, 그것도 두 가지 언어로. 그리고 이어지는 깊이 있는 질문과 답변, 대화를 듣고 보고 있으니 예정된 1시간 반이 어느새 지나가 버렸다.
	
	

통신원 정보

성명 : 이유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독일/베를린 통신원]
약력 : 라이프치히 대학원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학 석사 전)2010-2012 세계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