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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들이 평화의 소녀상을 지키려고 하는 이유

2020-10-21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독일 베를린 공공장소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독일 현지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을까. 베를린에서 이 문제는 한국, 그리고 다른 해외 도시와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한일문제나 민족주의 감정이 아닌 공공장소에서 예술 작품 및 기념비로서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차원이다. 지난 9월 28일 베를린에서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 정부의 압박으로 제막식 일주일만에 긴급 철거명령을 받았다. 평화의 소녀상을 세운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Korea Verband e.V.)는 철거명령 가처분신청을 제출했고 13일 철거 반대 시위를 열었다. 철거명령을 내린 미테구청은 법원 결정이 나오기까지 철거 명령을 보류하고, 찬반입장을 근본적으로 다시 검토해 합의점을 찾겠다고 밝혔다. 

<지난 9월 28일 제막된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사진출처: 통신원 촬영>

예술과 표현의 자유 해치는 철거명령
미테구청의 평화의 소녀상 철거 명령은 그 자체로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태다. 미테구청은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이 열린 지 9일만에 철거 명령을 내렸다. 일주일 내로 철거하지 않으면 강제 철거하고 그 비용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베를린시 공공예술위원회 논의를 통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세워진 예술작품에 내리는 철거명령으로는 매우 강압적인 조치다. 독일 현지 예술가 단체와 독일 정당이 앞다투어 구청의 결정을 비판하고 평화의 소녀상 '수호'를 위해 나선 배경이다.

베를린 조형예술가 조합(Berufsverband bildender künstler*innen berlin e.V., bbk)는 12일 '비판적인 예술작품이 외국 정부의 압력에 의해 공공장소에서 치워져서는 안된다'면서 '베를린 미테구 평화의 상을 지켜라!'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bbk는 성명서에서 '민주주의 국가들이 예술의 자유를 해치는 데 대해 큰 우려를 표한다. 베를린은 특히 예술과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공간인데, 전세계 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자유롭고 방해받지 않으면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자유를 지켜야 한다'면서 'bbk는 미테구청장이 베를린시 공공예술위원회의 (평화의 소녀상 설치) 결정을 존중하고 지지하며 예술작품 철거 명령을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bbk 이사진들은 이날 예정된 철거 반대 데모에 함께하고 현재 장소에 기념물을 지키는데 함께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3일 베를린 소녀상 철거 반대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사진출처: 통신원 촬영>

예술 매거진 모노폴(Monopol)도 베를린 소녀상 소식을 자세히 전하며 '이 조형물이 왜 직접적인 사안과 관련이 없는 나라(독일)에 세워져야 하는가? 이 질문에는 이렇게 답할 수 있다. 독일의 한국 커뮤니티는 그것을 기억할 권리가 있다고. 또한 이 상은 예술가에 따르면 전시 성폭력에 대한 일반적인 상징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따라서 독일의 맥락에서도 유효하다'고 밝혔다.

베를린 미테구의 정당들도 나섰다. 사회민주당(SPD) 베를린 미테지구는 12일 보도자료를 통해 '미테구청은 (조형물) 설치 허가를 냈다가 구체적인 이유도 없이 단순히 이를 취소할 수 없다'면서 '우리는 독일과 일본의 좋은 관계의 중요성과 베를린과 도쿄시의 파트너십을 존중한다. 하지만 역사 청산은 양 국가 뿐만 아니라 폭넓은 시민사회가 모두 참여해야한다'고 밝혔다. 미테구청장의 소속 정당인 녹색당 베를린 미테지구도 13일 평화의 소녀상 존치를 요구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녹색당 미테지구는 '녹색당은 예술의 자유와 독립적인 기억문화를 지지한다'면서 '평화의 소녀상은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여성들에 대한 범죄에 관한 것으로 나치 테러와 전쟁 국가인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세워졌다. 외교적이고 경제적인 이익을 고려해 자신의 평가를 내세우는 것은 역사 청산이라는 스스로의 요구와 모순되는 것'이라며 철거 반대 시위에 참여할 것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13일 시위에 직접 나와 발언한 슈테판 폰 다쎌 미테구청장-사진출처: 통신원 촬영>

베를린에서 문화 예술의 의미 몰랐던 일본의 '자책골'
문화 예술에 있어서 베를린은 좀 더 특별한 도시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형성된 베를린만의 독특하고 자유로운 분위기는 전세계 예술가들을 끌어 모았다. 베를린은 독일에서도 프리랜서 예술가가 압도적으로 많은 곳으로 코로나19 이후 프리랜서 예술가 지원을 가장 적극적으로 실행한 곳이기도 하다. 보수적인 독일 남쪽이나 경제적 특성이 큰 서쪽 도시와는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다. 이때까지 해 왔던 것처럼 평화의 소녀상을 한일관계로 축소시켜 정치 외교문제로 다루던 일본의 시도가 '먹히지' 않았던 이유다.

또한 독일은 연방제국가로 문화고권을 가진 국가다. 문화, 예술, 교육 등 문화 정책에 있어서는 연방정부보다 주정부가 더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는 의미다. 이는 나치를 통해 획일화와 단일성의 위험을 경험한 독일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다. 외국 정부의 입김까지 더해진 연방정부의 압박으로 베를린시의 문화적 결정을 뒤집은 것만으로도 스캔들에 가깝다. 독일은 이같은 외교적 압박과 철거 명령을 '검열'로 받아들인다. 독일 언론 《타츠(taz)《의 스벤 한젠(Sven Hansen) 기자는 '일본 정부가 평화의 소녀상 철거 압박을 통해 외교적인 자책골을 넣었다'고 평가했다. 한젠 기자는 '일본과 독일 모두 착각했다. 일본 정부는 베를린에서 기념물과 기념하는 것을 검열할 수 있다고 믿었고, 독일 외교부와 베를린 시의회, 구청 또한 이 주제에 대한 사회정치적인 다이나믹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베를린 미테구청장이 13일 열린 시위에 직접 나와 발언한 것은 이러한 베를린의 분위기를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독일 각계 각층의 비판, 그리고 '표현과 예술의 자유 침해'라는 비판 덕분에(?) 미테구청장 또한 일본 정부나 독일 연방정부의 압박에 대응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은 한일 양국간의 문제가 아니라 이곳, 베를린의 표현과 예술의 자유를 지키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참고자료
https://www.bbk-berlin.de/news/12102020-pm-des-bbk-berlin-friedensstatue-berlin-mitte-verteidigen
https://gruene-mitte.de/2020/10/13/pressemitteilung-bvv-fraktion-buendnis-90-die-gruenen-in-mitte-fordert-erhalt-der-friedensstatue/
https://www.monopol-magazin.de/stehen-lassen?fbclid=IwAR2rLMvA2MXoEZwC5sN4BwU2F4fBK7Qd3mTsL3DGvrk4NbgwjMeom2QES0k
https://taz.de/Konflikt-um-Berliner-Mahnmal/!5717547/

 

통신원 정보

성명 : 이유진[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독일/베를린 통신원]
약력 : 전)2010-2012 세계일보 기자 라이프치히 대학원 커뮤니케이션 및 미디어학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