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문화정책/이슈] 제1당된 기민/기사연의 문화정책, 인공지능 기업 부담 줄이고 반유대주의 철폐

2025-03-18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2025년 2월 23일 독일 총선이 끝났다. 선거 결과는 중도 보수계열 정당 기민/기사연합(CDU/CSU)이 28.52% 득표해 208석, 극우로 평가받는 독일대안당(AfD)이 20.8% 득표로 152석, 진보계열로 분류되는 사민당(SPD)이 16.41% 득표해 120석, 녹색당(Die Grüne)이 11.61% 득표해 85석, 좌파당(Die Linke)가 8.77% 득표로 64석을 획득했다. 자민당(FDP)과 자라바겐크네히트 정당(BSW)은 원내 진입에 실패했다.  

독일 문화협의회(Deutscher Kulturrat)는 독일 내 문화 단체들의 연합체다. 연방정부, 주정부, 유럽연합 산하 기관과 협력해 문화정책 수립 및 집행에 자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동 단체는 총선 이후 문화정책과 관련해 각 정당의 입장을 묻는 공식 서한을 보냈다. 기민/기사연합, 사민당, 녹색당, 자민당, 좌파당이 응답했으며 독일대안당과 자라바겐크네히트 정당은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득표율 순으로 각 정당의 문화정책에 관한 입장을 분석해 보기로 했다. 

<기민/기사 연합 공식 로고 - 출처: 기민/기사연합 페이스북 계정(@cducsubundestagsfraktion) >

기민/기사연합은 기민연과 기사연 두 정당의 원내 교섭단체다. 각각 기독교민주연합(Christlich Demokratische Union Deutschlands), 바이에른 기독교사회연합(Christlich-Soziale Union in Bayern CSU)의 준말이다. 기민연은 16년간 집권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전 총리의 출신 정당으로 잘 알려져 있다. 문화정책의 관점에서 보면 이들은 독일 내 디지털화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경제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AI 저작권, 개발자와 콘텐츠 제작자 균형 이루는 규정 신중히 평가할 것

기민/기사연은 인공지능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고 응답했다. 저작권과 관련된 사항은 이미 법적으로 규정돼 있는 만큼 인공지능 개발에 있어서도 개발자와 콘텐츠 제작자 간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이미 제도적 설계가 돼있다고 언급했다. 또한 기술 개발이 인간 중심이 되는 것이 중요하며 이 가치를 위해 인공지능법(AI Act)과 같은 규제 프레임워크가 도입된 바 있다고 말했다. 이 규정을 신중하게 평가하겠다고 언급했는데 기존 기민/기사연의 주장을 고려하면 동 규정이 기업 활동에 방해되지 않도록 개정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8월부터 인공지능법을 시행했다. 유럽연합 내 책임 있는 인공지능 개발과 활용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이 법은 다음과 같이 인공지능 기술을 4단계로 나누어 위험성을 평가하고 규제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범용 AI(GPAI, General-Purpose Artificial Intelligence) 실천 강령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동 강령은 투명성, 저작권 관련 규정, 위험성 관리 등의 분야를 핵심적으로 다루며 올해 4월까지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 최소 위험(법적 규제는 없으나 기업의 자발적 관리 권고)
- 특정 투명성 위험(인공지능이 사람과 상호작용하고 있거나 인공지능에 의해 생성된 콘텐츠는 해당 정보를 표기하도록 의무화)
- 고위험(의료 및 채용 목적으로 사용되는 인공지능 기술은 더욱 엄격한 절차를 준수해야 함)
- 용납할 수 없는 위험(정부나 기업이 시민 대상 '사회적 신용 점수'를 부여하는 등 기본권을 명백히 침해하는 인공지능 기술은 금지) 

문화적 다양성과 기억 문화 이어져야

인종차별 및 반유대주의 관련 언급도 나왔다. 기민/기사연은 정당, 학계, 미디어, 예술 및 문화계에서 반유대주의적 견해가 설자리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또한 문화적 풍요로움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고 문화적 통합을 추진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독일 사회는 역사적인 이유로 반유대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시점 가자지구 상황의 특수성에 대한 언급 없이 반유대주의만을 강조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기민/기사연은 독일 문화 교육에 대한 국가 보고서가 계속해서 작성될 것이라며 문화 및 교육기관 간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문화 교육 프로젝트의 지속적 발전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고 응답했다. 기억문화(Erinnerungskultur) 관련 어떤 방향을 설정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는 독일 내 두 개의 전체주의 체제였던 나치 및 동독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기억을 유지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의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다.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이름, 생년월일 등 관련 정보가 기재된 슈톨퍼슈타인 - 출처: 'FAZ' >

기억문화는 독일 나치 정권 및 홀로코스트에 대한 과거를 반성하고 다시는 반복하지 말자는 내용의 개념으로 독일 내 학계 및 정치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2025년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이 되는 해로 국가적 차원의 기념행사가 계획돼 있다. 독일 내 보도블록에서 '걸림돌'이라는 의미의 슈톨퍼슈타인(Stolperstein)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이름, 생년월일 등이 적힌 황동판이다. 1992년 독일 예술가 귄터 뎀니히가 처음으로 이 예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 또한 기억문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문화와 지속가능 발전 목표의 결합, 구체적 방안은 부재해

기민/기사연은 문화와 유엔 지속가능 발전 목표를 어떻게 결합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문화 지원 시 탄소발자국을 증가시키지 않도록 유의할 것이라고 답했다. 추가로 문화 기관의 위기 대응 능력 강화, 문화유산 보호 대책 수립, 문화산업 네트워크의 강화 등을 언급했지만 구체적인 방안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기민/기사연은 기회의 공정성을 중시하고 모든 문화 종사자가 성별과 관계없이 동등한 발전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며 관련 제도적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예술과 문화의 진흥은 공공의 책무... 음악, 영화, 게임산업 집중 지원할 것

기민/기사연합은 문화정책에서 어떤 특별한 방향을 설정할 것인지 묻는 문화협의회의 질문에 "예술과 문화의 진흥은 공공의 책무"라고 답했다. 더불어 연방정부, 주정부, 지자체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도 이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독일의 문화유산이 자유의 토대이며 미래에도 지속될 기반이라며 박물관, 극장, 콘서트홀과 같은 문화 공간의 역할을 보호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기민/기사연은 이번 선거를 통해 독일 원내 제1당이 됐다. 연립정부 구성에 대한 협상 과정은 아직 남아있지만, 이들의 정책방향이 향후 4년간의 독일 문화정책에 큰 영향을 미칠 것임은 자명하다. 인공지능, 문화적 다양성, 인종차별 철폐, 기억문화 등 다양한 사안들은 독일 내 한국 교민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만큼 독일의 문화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기민/기사연합 페이스북 계정(@cducsubundestagsfraktion), https://www.facebook.com/cducsubundestagsfraktion
- 《FAZ》 (2025. 2. 24). Ergebnisse der Bundestagswahl 2025, https://www.faz.net/aktuell/
- 독일 문화협의회(Deutscher Kulturrat) 홈페이지, https://www.kulturrat.de/bundestagswahl/fragen-zur-kulturpolitik-an-parteien-zur-bundestagswahl/
- 유럽 위원회(European Commission) (2024. 8. 1). AI Act enters into force, https://commission.europa.eu/news/ai-act-enters-force-2024-08-01_en
- 《Alexander von Humboldt Institut für Internet und Gesellschaft》 (2025. 2. 5). German digital policy after the Bundestag election, https://www.hiig.de/en/german-digital-policy-after-the-bundestag-election/
- 《FAZ》 (2024, 12, 9). Erinnerungskultur im Elsass, https://www.faz.net/aktuell/feuilleton/debatten/erstmals-stolpersteine-fuer-zwangsrekrutierte-im-elsass-19977886.html

통신원 정보

성명 : 최경헌[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독일/프랑크푸르트 통신원]
약력 : 『솔직한 유럽 이야기』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