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계훈 작가와의 대화
- 벨기에 루벤 전시회 ‘일시적인 침입’ -
벨기에에서 열리는 박계훈 작가의 개인전 ‘일시적인 침입 – 장소는 사람이다(Temporary Intrusion – Place is people)’가 현지인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루벤(Leuven)에 위치한 르네 갤러리(Atelier Re-Né)에서 9월 18일부터 10월 18일까지 열린다. 제목처럼 이번 전시는 작가의 작업이 낯선 공간에 잠시 들어가 그 장소와 관계를 맺고, 그 과정에서 작가의 의도만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새로운 흔적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주목한다. 벨기에에서 만난 박계훈 작가는 비와 바람 등 자연의 움직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신의 설치미술을 ‘비자발성’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작가의 손을 떠난 순간부터 작품은 더 이상 작가의 의지대로 머물지 않고, 자연과 시간 속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간다. 박 작가는 이러한 변화의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예술이라고 말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철학을 풀어냈다. 작가는 통신원과 벨기에에서 우연히 마주한 만남 역시 하나의 인연으로 이어졌다며, 작품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 또한 우연과 변화의 과정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박계훈 작가의 이야기를 들은 뒤 그의 작품을 다시 바라보면, 작품 곳곳에서 스며든 작가의 철학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의 의도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시간, 그리고 우연한 만남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완성되어 가는 작품들. 어쩌면 박계훈 작가의 작품이 벨기에 현지에서 큰 호응을 얻은 이유 역시 바로 이러한 ‘열린 예술’의 힘이 아닐까 싶다. 또한 이번 전시는 한지라는 한국의 전통 소재를 현대 미술로 재해석해 유럽 현지에 한국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케이팝과 한국드라마를 중심으로 형성된 한류가 미술과 공예 등으로 확장되는 가운데, 이번 전시는 한국 문화의 다양성을 알리고 문화산업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이번 벨기에 루벤에서 개인전을 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르네 갤러리 소셜미디어 전시회 홍보 게시물들을 보면 박계훈 작가님에 대한 특별한 애정이 느껴집니다. 이번 전시를 루벤에서 선보이게 된 계기와 특별한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번 전시는 저와 르네 갤러리의 대표 미레유(Robbe Mireille) 작가의 개인적인 인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2022년 프랑스 발랑시엔(Valenciennes)의 아쉬디시에즈 아트센터에서 제가 개인전을 열었을 때 미레유 작가가 찾아오면서 처음 직접 만나게 되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 이전부터 인스타그램을 통해 서로의 작업을 보며 ‘좋아요’를 주고받던 사이였습니다. 이후 실제 전시장에서 만나면서 서로의 작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친분을 쌓게 되었습니다. 그 후 미레유 작가가 루벤에서 르네 갤러리를 개관했고, 약 3년 동안 갤러리를 운영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르네 갤러리에서 제 작업을 소개하고 싶다는 제안이 오면서 전시가 성사되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한지를 중요한 재료로 선택하셨습니다. 현지인들에게 한지는 낯설고도 특별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지의 어떤 특성이 작가님의 작업과 연결되나요? 한국의 전통 종이인 한지는 오늘날에도 새로운 기능과 용도를 더한 다양한 형태로 꾸준히 개발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지인을 통해 새롭게 개발되는 한지를 접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이 높아지면서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 한지가 수출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작품을 제작해 벨기에로 가져와야 했기 때문에 종이 작업을 중심으로 준비했습니다. 제가 사용한 종이는 한지입니다. 한지는 매우 흥미로운 재료입니다. 겉으로 보면 한지는 스스로 숨을 쉬고 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질긴 특성이 있습니다. 장인이 한 장 한 장 떠 낸 한지는 종이마다 크기와 형태가 조금씩 다릅니다. 저는 이런 특성이 제가 추구하는 작업의 방향과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완전히 동일한 것을 대량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차이를 가진 물질이 존재하고, 그 물질이 시간과 환경을 받아들이면서 또 다른 상태로 변해갑니다. 벨기에의 바람과 비는 한국과 차이가 있습니다. 루벤이라는 새로운 장소에서 한지 작품들은 한국에서의 작품들과 다른 형태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새로운 장소와 시간 속에서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이번 개인전의 제목이 ‘일시적인 침입’입니다. 이 제목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제가 최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업 방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는 최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것에 의해 발생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작가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통제해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어떤 요소가 작품에 개입하고 그 결과로 예상하지 못했던 표현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뿔, 난초, 조가비>에서 비와 바람, 곤충이 작품에 개입한 것도 그렇습니다. 제가 의도해서 만든 얼룩이나 번짐이 아닙니다. 자연이 작품에 개입하면서 발생한 것입니다. 이번 루벤 전시에서는 여기에 장소라는 요소가 더해졌습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작품이 루벤이라는 낯선 공간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이곳의 돌을 작품에 매달았습니다. 작품이 이곳에 영원히 정착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들어왔다가 다시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시적 침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바닥에 설치한 <머무르는 파도> 역시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2층에 설치한 <몽고반점>과도 연결됩니다. 제 종아리 옆에는 몽고반점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흔히 ‘몽고반점’이라고 부르지만, 벨기에에서는 ‘어머니의 점(mother's spot)’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이 흔적을 세포가 흐르다가 어떤 장소에 잠시 머무른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 역시 고정된 것이 아니라 몸이라는 장소에 잠시 머무르는 흔적입니다. <머무르는 파도>에서 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파도는 계속 움직이지만 어느 순간 한 장소에 머무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이번 전시의 ‘일시적 침입’도 그렇습니다. 낯선 장소에 잠시 침입하고, 흔적을 남기고, 다시 사라집니다. 저는 이러한 일시성과 비자발성에 관심이 있습니다. 무엇인가가 잠시 머물면서 발생시키는 변화, 그리고 그 변화가 남긴 흔적을 작업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전시회 오프닝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지라는 특별한 소재가 지닌 매력과 벨기에인들이 선호하는 추상화가 어우러지면서 작가님의 작품이 현지에서 더욱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지인들의 실제 반응은 어땠나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 주셔서 저 역시 놀랐습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보다 벨기에에서 제 작품이 더 인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 작품에 관심을 가져 주셨고, 좋아해 주셨으며 실제로 구매로까지 이어지면서 개인적으로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벨기에 관객들이 작품의 물성과 흔적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한지를 단순히 종이로 보기보다,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고 상처받고 흔적을 축적한 물질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습니다. 앞으로 벨기에와의 문화 교류에 중요한 역할을 하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있으신가요? 벨기에와의 인연은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올해는 르네 갤러리에서 제 개인전을 선보이고, 내년에는 한국에서 미레유 작가의 전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서울 유엠(UM)갤러리와 청주의 소구무지에서 전시를 준비할 예정입니다.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이렇게 서로의 공간을 오가며 작업을 소개하는 과정 자체가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작가와 공간이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 연결되고, 다시 그 관계가 다음 전시로 이어진다는 점이 저에게도 흥미롭습니다. 벨기에 사람들이 한지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만큼 다음에는 한지 예술을 더 구체적이고 가까이 선보일 수 있는 워크숍을 할 예정입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이 청주에서 운영하고 계시는 갤러리 ‘소구무지(SOGUMUJI)’에 대해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소구무지 갤러리는 2024년 청주 운천동에 만든 비영리 성격의 전시 공간입니다. 소구무지는 제 고향인 단양의 마을 뒷산 이름에서 가져온 것으로 전설에 따르면 그 산에 소금 항아리 두 개와 물 항일 하나가 묻혀 있어서 소구무지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소금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처럼, 미술 현장에서도 소구무지 갤러리가 꼭 필요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제 바램이 담겼습니다. 소구무지는 젊은 작가들에게 지속적인 전시 기회와 성장의 발판을 제공하기 위해 만든 갤러리로 단순히 작품을 한 번 선오이는 데 그치지 않고, 한 작가에게 최소 세 번의 전시 기회를 무료로 제공하며 작업의 변화와 확장 과정을 꾸준히 지켜봅니다. 또한 전시 공간뿐 아니라 홍보와 리플렛 제작 등을 지원해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박계훈 작가 제공 - 벨기에 한인회 공식 페이스북 계정(@koreancommunitybelgium), https://www.facebook.com/groups/koreancommunitybelgium/posts/17572642821464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