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로 다시 만난 폴란드 동화… 한국과 폴란드가 만든 ‘뉴 판소리(New Pansori) 2026’
- 코쉥친·크라쿠프·바르샤바 잇는 한·폴 협업 무대 -
폴란드 아이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 봤을 동화가 올가을 판소리 가락에 실렸다. 폴란드 작가 마리아 코노프니츠카(Maria Konopnicka)의 『난쟁이들과 고아 소녀 마리샤(O krasnoludkach i sierotce Marysi)』다. 가난한 고아 소녀 마리샤가 숲속 난쟁이들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이겨 내는 이야기로, 폴란드에서는 세대를 넘어 읽혀 온 아동문학 고전이다. 이 이야기를 판소리로 옮긴 ‘뉴 판소리 2026(New Pansori 2026)’이 9월 코쉥친(Koszęcin)과 크라쿠프(Kraków), 바르샤바(Warszawa)를 차례로 돌았다. 코노프니츠카는 폴란드에서 시인이자 아동문학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고, 『난쟁이들과 고아 소녀 마리샤』는 1896년에 나온 뒤 지금까지 그림책과 애니메이션, 인형극으로 꾸준히 다시 만들어져 왔다. 폴란드 관객에게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맞닿은 이야기인 셈이다. 판소리는 소리꾼 한 사람이 고수의 북장단에 맞춰 긴 이야기를 노래와 말, 몸짓으로 풀어내는 한국의 전통 공연 예술로, 200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됐다. 폴란드 현지 공연 소개에서는 판소리를 ‘오페라를 닮은 한국 민속 음악’으로 설명한다. 익숙한 이야기와 낯선 형식이 만나는 지점이 이 공연의 출발점이다.
작품을 만든 사람은 소리꾼 장서윤이다. 동화를 판소리 대본으로 옮겼고, 이야기를 여러 대목으로 나눠 대목마다 다른 음악 동기를 붙였다. 마리샤가 길을 나서고 난쟁이들을 만나고 끝내 시련을 넘어서는 흐름이 소리의 결을 따라 바뀐다. 고수 이우주가 북과 전통 타악을 맡고, 폴란드 즉흥음악가 라파우 마주르(Rafał Mazur)와 아르투르 마예프스키(Artur Majewski)가 각각 어쿠스틱 베이스기타와 코넷, 전자음으로 소리를 보탠다. 소리꾼의 아니리 사이로 폴란드어 대사가 오가고, 무대 위에는 폴란드어와 영어 자막이 함께 뜬다. 공연 시간은 60분에서 75분 사이다. 이 무대가 폴란드 관객을 처음 만난 건 아니다. 지난해 5월 18일 포즈난(Poznań) 성 문화센터(Centrum Kultury Zamek)에서 같은 작품이 공연됐고,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과 문화체육관광부, 주폴란드한국문화원이 후원했다. 당시에는 소리와 연주가 중심이 된 음악회에 가까웠다. 올해는 몸의 언어가 더해졌다. 한국무용가 이강산과 폴란드 현대무용가 아가타 옝제이차크(Agata Jędrzejczak)가 합류하면서 춤과 움직임, 연극적 요소를 아우르는 무대로 넓어졌다. 올해 여정은 크라쿠프 라쥐니아 노바 극장(Teatr Łaźnia Nowa)의 예술 레지던시에서 출발했다. 두 나라 예술가들이 한 공간에 머물며 작품을 다듬은 뒤, 9월 8일 코쉥친에서 폴란드 국립 민속가무단 실롱스크(Śląsk)와 함께 첫 무대를 꾸렸다. 실롱스크는 폴란드 민속 음악과 춤을 대표하는 단체로, 한국 전통 공연과 폴란드 민속 공연이 한자리에 선 셈이다. 11일부터 13일까지는 라쥐니아 노바 극장에서 관객을 만났다.
15일에는 바르샤바 국립경기장(PGE Narodowy)에서 열린 ‘2026 폴란드 코리아 브랜드 위크’ 무대에 올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한 이 행사에는 이틀 동안 3만 3천여 명이 다녀갔고, 비즈니스 상담 181건이 이뤄졌다. 케이팝 댄스 수업과 드라마 상영회, 한복 전시가 이어진 행사장에서 판소리 공연은 결이 다른 순서였다. ≪파이낸셜뉴스≫는 이 공연이 한국과 폴란드 간 문화 교류의 의미를 더했다고 전했다. 마지막 무대는 9월 22일 오후 5시 바르샤바 현대음악 공간 해시태그 랩(Hashtag Lab)이었다. 제69회 바르샤바 가을 현대음악제(Warszawska Jesień)의 연계 프로그램 ‘랩의 가을(Autumn at the Lab)’의 하나로, 제목은 ‘뉴 판소리: 자유로운 서사를 위한 의식(Rituals for Free Narratives)’이다. 같은 동화에서 출발했지만 90분 동안 자유즉흥과 실험적 발성을 앞세워, 연주자들이 그 자리에서 소리를 빚어 가는 ‘소리의 의식’에 가까운 무대였다. 입장료는 40즐로티(약 1만 5,000원)였다. 폴란드를 대표하는 현대음악제의 프로그램 안에 판소리가 들어갔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케이팝과 케이드라마를 보통 흔히 접할 수 있는 요즘, 이 공연이 눈에 띄는 이유는 방향에 있다. 한국 것을 들고 가 보여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폴란드 사람들이 이미 품고 있는 이야기를 한국의 소리로 다시 들려준다. 줄거리를 아는 관객은 이야기를 쫓기보다 소리 자체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레지던시에서 함께 작품을 다듬고, 폴란드 민속가무단과 현대음악제로 무대를 넓혀 간 과정도 일회성 초청 공연과는 거리가 있다. 판소리가 폴란드에서 ‘외국 전통 음악’을 넘어 두 나라 예술가가 함께 쓰는 무대 언어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이 프로젝트의 다음 행보를 지켜볼 만하다.
사진 출처 및 참고자료 - 라쥐니아 노바 극장(Teatr Łaźnia Nowa) 웹사이트, https://www.laznianowa.pl/wydarzenie/new-pansori-o-krasnoludkach-i-sierotce-marysi - 성 문화센터(Centrum Kultury Zamek) 웹사이트, https://ckzamek.pl/wydarzenia/12750-new-pansori-about-dwarves-and-little-orphan-mary-o/ - 바르샤바 가을 현대음악제(Warszawska Jesień) 웹사이트, https://warszawska-jesien.art.pl/en/2026/about/69-warsaw-autumn - 2026 폴란드 코리아 브랜드 위크(Poland Korea Brand Week) 웹사이트, https://kbrandweek.kr/ - 해시태그 랩(Hashtag Lab) 웹사이트, https://hashtaglab.pl/event/labowa-jesien-new-pansori-rituals-for-free-narrativ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