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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아이맥스 스크린에서 발굴 현장으로 아홉 개 고대 도시 위에 흐르는 트로이의 오늘

등록일
2026-10-13
수집기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 해당 국가

    튀르키예

  • 해당 장르

    영화

주요내용

<오디세이> 아이맥스 스크린에서 발굴 현장으로 아홉 개 고대 도시 위에 흐르는 트로이의 오늘
- <오디세이> 흥행 뒤 트로이 유산 활용, 한국 문화계에 던지는 과제 -

영화 <오디세이>가 한국에서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10월 5일 배급사 발표에 따르면 누적 관객은 1,202만 7천여 명을 넘어섰다. 흥행의 규모가 모든 관객의 감동을 설명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는 극장에서 이야기를 경험하는 방식에 다시 시선을 돌리게 했다. 장편 영화 최초로 전편을 아이맥스(IMAX)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다는 점에 관객들로 하여금 신화 속 세계를 큰 화면으로 경험하려는 기대를 높였다. 큰 화면과 음향으로 작품을 경험하려는 관심이 두드러졌다. <오디세이> 영화에 대한 관심은 영상미에서 원작을 찾아 독서로 이어지는 현상도 나타났다. 영화 관람 이후 고전을 찾아 읽는 현상은 이번 흥행을 문화 소비의 확장으로 볼 수 있는 지점이다. 

국내에서 <오디세이> 영화에 대한 관심이 이렇게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는 현상이 튀르키예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났다. 튀르키예 관객들이 가장 많이 주목한 것도 단연 아이맥스 대형 화면으로 느끼는 영상미와 감각적 몰입에 대한 부분이다. 바다 여정, 전쟁 장면, 신화적 요소가 큰 화면에서 인상적이라고 호평을 옮기며 ‘장대한 영화적 체험’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 영화 관람 후 원작을 찾아 읽으며 화면에 담기지 않은 이야기를 만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며 서사 속 그 이야기가 깃든 장소를 직접 찾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트로이 유적에서 만난 한 관광객은 후자의 경험을 들려줬다. 평소 오디세우스의 이야기를 좋아했던 그는 <오디세이> 영화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이곳을 다시 찾고 싶었다며 신화가 깃든 실제 장소를 밟는 일이 특별한 영감을 준다고 말했다. 
영화 ‘오디세이’를 상영한 이즈미르 파리부 아이맥스 영화관
< 영화 ‘오디세이’를 상영한 이즈미르 파리부 아이맥스 영화관 – 출처: 통신원 촬영 >
통신원도 신화 속 웅장한 장면들을 거대한 화면으로 체험해 보기 위해 현지 아이맥스 영화관을 찾아 관람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 대중 사이에서 이어지던 질문이 필자에게도 선명해졌다. ‘신화 속 도시는 실제로 어떤 모습일까’, ‘그곳에 남아 있는 흔적은 무엇을 말해 주고 있을까’, ‘트로이는 실재했지만 서사시 속의 전쟁 역시 정말 그대로 있었는가’와 같이 <오디세이> 영화 너머에 역사성과 신화의 경계에 대한 물음이 계속 이어져 이를 달래기 위해 트로이를 찾아갔다. 트로이 도심 속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트로이 목마가 필자를 반겨 주었다. 차낙칼레(Çanakkale) 해안에 서 있는 트로이 목마는 2004년 영화 <트로이>에 쓰인 소폼으로 촬영 후 워너브라더스가 기증해 오늘날 도시의 랜드마크가 된 조형물이다. 
도시의 랜드마크가 된 트로이 목마
< 도시의 랜드마크가 된 트로이 목마 – 출처: 통신원 촬영 >
천만 관객 모은 <오디세이> 신화 속 목마의 도시 트로이로 발걸음을 이끌다

현장에서는 트로이 고대 유적 발굴단 부단장인 레이한 쾨르페 교수가 주요 지점들을 직접 안내하며 도시의 구조와 발굴 성과를 설명해 주었다. 레이한 교수의 설명을 따라가면 트로이는 한 번의 전쟁으로 끝난 도시가 아니다. 초기 청동기시대부터 그리스·로마 시대에 이르기까지 같은 자리에 여러 도시가 세워지고 바뀌며 흔적을 남긴 곳이다. 그는 트로이 1(Ⅰ)에서 9(Ⅸ)이 긴 시간, 여러 시대를 지나면서 한 자리 위에 쌓여져 있는 문화층들을 설명하며 눈앞의 성벽과 건축물들도 동시대 세워진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트로이 고대 유적지 발굴을 최전선에서 이끌어 온 레이한 부단장의 설명을 듣고서 영화에서는 하나의 장면으로 보였던 도시가 현장에서는 서로 다른 시간으로 나뉘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오디세이>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주목하게 된 것은 트로이 6(Ⅵ)이었다. 레이한 부단장은 이 시기를 트로이가 가장 웅장했던 때로 설명한다. 교수의 해설에 따르면 지금 남아 있는 돌벽 위로는 흙벽돌 상부 구조가 이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방문객이 마주하는 유적은 당시 도시의 완성된 모습이 아니라 긴 세월을 지나 남은 일부인 셈이다. 
트로이 고대 유적지 발굴단 부단장 레이한 쾨르페 교수
< 트로이 고대 유적지 발굴단 부단장 레이한 쾨르페 교수 – 출처: 통신원 촬영 >
영화 ‘오디세이’의 출발점이자 난공불락의 요새로 꼽히는 트로이 6기를 대표하는 동쪽 석조 성벽
< 영화 ‘오디세이’의 출발점이자 난공불락의 요새로 꼽히는 트로이 6기를 대표하는 동쪽 석조 성벽 – 출처: 통신원 촬영 >
남문에서는 도시의 출입과 방어 구조에 관한 설명이 이어졌다. 부단장은 양쪽의 탑이 성문을 방어했으며 눈앞의 내성이 트로이 전체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성채 바깥에도 사람들이 살아가던 삶의 이야기들, 또 다른 문화가 하부 도시가 있었고 두 공간이 어떻게 연결됐는지를 밝히는 것이 발굴단의 주요 조사 목표였다고 한다. 성벽을 전쟁의 배경으로만 바라보던 시선은 그 안팎을 오가며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로 넓어졌다. <오디세이>가 전쟁을 마친 오디세우스의 긴 귀향을 따라간다면, 트로이 6(Ⅵ)의 유적은 그 여정의 출발점으로 전해지는 도시를 구체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현장에서 먼저 확인하게 되는 것은 목마의 계략이 아니라 성벽과 건축물, 도시의 공간이다. 

영화의 여운을 따라 찾아온 땅에서 질문은 조금 바뀌었다. 이곳에서 어떤 전쟁이 벌어졌는가에 더해 이만한 도시를 만든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가를 묻게 됐다. 영화는 트로이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줄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을 지나 만나는 도시는 영화보다 오래되고 복잡하다. 하나의 장면으로 기억했던 장소가 여러 세대의 삶으로 넓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영화와 발굴은 그 질문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한다. 영화는 사라진 세계를 장면으로 구성하고 발굴은 남은 자료를 조사하며 과거를 추론한다. 화면에서 느낀 감동과 현장에서 배우는 역사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대신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트로이를 이해하게 한다. 

튀르키예 비평에서도 영웅의 승리보다 전쟁 이후에 남는 것에 시선을 돌린다. 외뮈르 게디크는 <오디세이> 영화의 중심에는 ‘전쟁 자체가 아니라 전쟁이 인간에게 남긴 흔적’이라고 본다. 육체가 집에 돌아와도 정신은 여전히 전장에 남아 있다고 한다. 오디세우스의 여정은 양심과 상실, 트라우마와 대면하는 과정이라고 해석한다. 카안 덴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영화를 탐욕과 오만으로 스스로 무너지는 문명의 이야기로 읽으면서, 오디세우스의 참회를 보여주는 영화가 정작 그의 가해 책임을 충분히 드러내는지 물었다. 두 해석을 함께 놓으면 관심은 영웅이 무사히 돌아왔는가에서, 돌아온 사람이 무엇을 기억하고 책임져야 하는가로 옮겨간다. 그 질문을 안고 트로이를 다시 바라보면, 영웅의 이름 뒤에 가려진 도시의 주민들에게도 눈길이 간다. 성벽을 세우고 집을 짓고 물건을 쓰던 사람들의 삶은 전쟁의 장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박물관에서 만난 트로이 유물들

유적 옆 트로이 박물관에서는 전쟁의 서사 뒤편에서 쌓여온 성벽 밖 주민들의 삶을 생각하게 하는 물건들을 만난다. 도기와 장신구, 무기, 비문, 석관, 유리 유물은 트로이와 트로아스 지역의 여러 시대 사람들이 만들고 사용하고 남긴 것들이다. 트로이 박물관은 트로이 문화층 뿐 아니라 주변 도시 역사까지 다룬다. 하나의 전쟁으로 기억되는 이름 아래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를 같은 공간 안에서 사용해 온 주민들의 생활이 펼쳐지는 공간이다. 청동기 시대 전시는 도시의 층위와 발전 과정을 따라가며 건축과 직조, 도기 제작과 조리 등 일상의 활동을 설명한다. 성벽이 도시의 규모와 방어를 보여준다면, 생활 유물은 그 도시를 유지해 온 이들의 노동과 문화, 예술에 관심을 돌리게 한다. 트로이 박물관 안의 유물들은 전쟁으로 기억되던 도시를 헬레니즘, 로마 시대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 기억이 겹겹이 쌓인 장소로 다시 읽게 한다. 
트로이 박물관
< 트로이 박물관 – 출처: 통신원 촬영 >
트로이 유적의 공간 위에 다시 쌓이는 열 번째 층 테브피키예 마을

취재의 마지막 장소는 유적과 박물관 옆 테브피키예(Tevfikiye) 마을이었다. 거리와 광장에는 트로이 문양과 신화 속 인물의 조형물들이 거리와 광장에 놓여 있다. 이곳은 트로이 고대 도시를 재현해 놓은 문화 마을촌이 아니다. 테브피키예는 트로이 유적과 박물관 곁에서 주민들이 살아가는 마을이자, 오래된 유산을 오늘의 공간에 다시 해석해 놓은 곳이다. 마을의 경관은 자연스럽게 형성된 신화 위에 쌓여온 문화적 잔재가 아니라 현대 문화 기획을 통해 조성됐다. 예술·디자인 기획에 참여한 차낙칼레 비엔날레는 트로이 주변 지역의 고고학적 특징과 신화의 이야기, 발굴의 역사를 연결하는 서사로 구성했다고 전한다. 
트로이 고대 유적 같은 공간 안에 위치한 테브피키예 마을
< 트로이 고대 유적 같은 공간 안에 위치한 테브피키예 마을 – 출처: 통신원 촬영 >
한국 역사문화 콘텐츠에 남는 과제

트로이가 한국 문화계에 건네는 시사점은 트로이 목마처럼 눈에 띄는 상징물을 하나 더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신화와 발굴 성과를 유적과 박물관, 마을 경관, 지역의 생활문화와 연결해 방문객이 여러 시대의 시간을 이해하도록 설계한 방식에 있다. 방문객들은 유적에서 도시의 구조와 문화층을 만나고 박물관에서 유물과 생활사를 살핀 뒤 테브피키예 마을에서 오늘의 주민들이 오래된 유산을 어떻게 삶의 공간에 되새기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이 연결은 목마와 같은 조형물이나 관광 연출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트로이는 유적 보존과 관광 이용을 함께 다뤄 온 계획의 대상이었다. 보존과 개발계획은 관람 동선과 관광 시설의 위치, 공개 구역과 발굴 가능 구역을 구분해 보존과 이용의 경계를 조정했다. 

그래서 고대 도시 트로이를 관광객을 많이 모은 성공 사례로만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관광이 유산을 훼손하지 않고 그 효과가 주변 지역에도 돌아가려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관리기관, 주민, 지역 사업자가 협력하는 체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역사문화 콘텐츠에도 같은 질문이 남는다. 영화·드라마·웹툰·게임이 특정 시대와 장소를 다시 주목하게 할 때, 그 관심이 촬영지 인증이나 일회성 기념품 소비에 그치지 않으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지역은 작품의 상상력과 역사적 사실을 함께 설명하는 해설을 마련하고 박물관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 디지털 안내 콘텐츠를 통해 관심을 문화적 이해로 이어갈 수 있다. 이는 창작의 자유를 좁히자는 뜻이 아니다. 관람객이 영화와 신화가 재구성한 장면과 발굴로 확인된 성벽, 도시 구조, 생활 유물을 구분해 보며 트로이의 역사적 장소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다만 트로이의 방식을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트로이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고전 서사와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위, 오랜 발굴과 보존의 역사를 지닌 장소다. 한국의 지역이 조형물이나 테마 거리를 만든다고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역의 역사적 근거와 유산의 보존 상태, 수용 가능한 방문객 규모를 먼저 살피고 관광객이 늘어도 주민의 일상이 밀려나지 않도록 수익과 운영 권한이 지역에 남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트로이 사례가 한국 문화계에 던지는 과제는 ‘유산을 관광 상품으로 만드는 방식’보다 콘텐츠가 불러낸 관심을 지역의 문화적 이해로 바꾸는 데 있다. 박물관·현장 해설·교육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고, 주민·예술가·소상공인이 기획과 수익에 참여하도록 하며, 유산 보존의 기준 안에서 관광 동선과 체험을 설계해야 한다. 스크린이 만든 관심을 일회성 방문으로 끝내지 않고 지역의 시간과 삶을 이해하는 경험으로 연결하는 일, 그것이 트로이 사례가 한국 문화계에 남기는 시사점이다.

영화가 끝난 뒤…

<오디세이>의 상영이 끝나고 스크린이 어두워져도 이야기를 만나는 일은 계속된다. 누군가는 호메로스의 원작을 펼쳐 화면에 담기지 않은 이야기를 읽고, 누군가는 튀르키예의 트로이 유적을 걸으며 신화 속 장면을 떠올린다. 같은 영화의 여운에서 출발하지만 책은 서사와 인물의 내면으로, 발굴지는 남아 있는 흔적과 그곳을 살았던 사람들의 시간으로 관객을 이끈다. 이번 취재도 신화 속 도시의 모습을 확인하고 싶다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트로이는 영화의 장면과 대조하는 것만으로 이해할 수 없는 곳이었다. 서로 다른 시대의 구조물은 한자리에 겹쳐 있었고, 박물관의 유물은 전쟁의 서사 밖에서 도시를 유지한 사람들의 삶을 보여줬다. 테브피키예에서는 오래된 이야기가 오늘의 마을을 표현하는 언어로 다시 쓰이고 있었다. 영웅의 귀향을 따라 시작된 시선은 결국 도시를 만들고 살아간 사람들, 그리고 지금 그 유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닿았다. 트로이는 신화와 역사가 끝난 장소가 아니라, 영화와 책, 발굴과 마을의 삶 속에서 계속 새로운 질문을 낳는 현재의 공간이었다. 스크린에서 시작된 관심은 유적과 박물관, 지역의 삶으로 이어질 때 오래된 도시는 오늘의 문화가 된다. 
사진 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스타뉴스(STARNEWS)≫ (2026. 10. 05). 오디세이 누적 1200만 돌파..’파묘’’부산행마저 넘었다, 
https://www.starnewskorea.com/movie/2026/10/05/2026100517091721737
- ≪휘리예트(Hürriyet)≫ (2026. 07. 23.) Odyssey muhteşemdi, 
https://www.hurriyet.com.tr/yazarlar/omur-gedik/odyssey-muhtesemdi-43248623?utm_source=gazeteoku&utm_medium=referral
-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UNESCO World Heritage Centre) 공식 웹사이트, 
https://whc.unesco.org/en/list/8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