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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캄보디아 미술계가 주목하는 한국인 예술가 롤리 박(Lolli Park), 그가 추구하는 예술세계

2020-11-11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주요내용

예술의 세계는 어렵다. 메타포(은유)로 쓰인 예술가의 정신세계를 감상자 스스로가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예술작품에 다가가기 위해 넘어야 했던 장벽과 문턱들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대중들에게 보다 친숙하고 이해하기도 쉬운 작품을 통해 예술은 무조건 어렵다는 고정관념의 틀부터 깨뜨리려는 젊고 참신한 신진예술가들이 나타나면서부터다.

<캄보디아 예술계가 주목하는 한국인 미술가 롤리 박(Loli Park)의 작품. ‘그 곳(The Place) Blue(2017년작)’ - 출처 : 롤리 박/통신원 촬영>

4년 전인 지난 2015년 9월,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 아트 스튜디오를 처음 연 젊은 예술가 롤리 박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본명은 박은주(37). 한국에서 온 30대 젊은 여성이 프놈펜에서 직접 아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자신만의 독특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예술작품들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기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롤리 박은 주로 펜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림은 섬세하면서도 생동감이 넘친다. 사람과 세상을 향한 따스한 시선이 하얀 도화지에서도 느껴진다. 그가 만든 작품 가운데 지금은 사라진 화이트빌딩 풍경 그림이 유독 기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놀랍게도 그는 미술전공자가 아니다. 정식으로 화단에 등단하지도 않았다. 전공을 묻자 영문학을 전공했다며 웃는다. 어릴 적 꿈은 만화 삽화가가 되는 것이었다. 자신의 숨은 미술적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얻은 건 대학 졸업 직후였다. 실력을 인정받아 미국에서 열린 걸스카우트 대회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초중고생들을 대상으로 미술교육을 했다.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아무도 그녀가 어느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무슨 학위를 땄는지, 얼마나 많은 미술 관련 상을 받았는지 묻지 않았다.

	졸업장과 명함 한 장으로만 사람을 단 2~3초 만에 평가해버리는 한국 사회와는 여러모로 달랐어요.

그들은 오로지 그녀의 놀라운 재능에 감탄하고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봤다. 자신의 감춰진 미술적 재능을 스스로 깨닫게 된 것도,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오로지 실력뿐이란 단순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 것도 바로 그때였다. 졸업 후 첫 직장은 베트남에 있는 한국계 패션회사에서 시작했다. 외국에서 첫 직장을 갖게 된 것도 어쩌면 바깥세상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예술인들에게 특히 두드러진 방랑자 기질이 발동했는지 모른다. 패션회사를 4년간 다녔지만, 창작 활동과는 동떨어진 일들의 연속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가슴속에 잠재된 예술을 향한 꿈의 열정을 꽃피우기 위해 다시 미술세계에 몸을 던지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선택한 나라가 캄보디아다. 잠시 여행 차 들렸다가 이 나라의 매력에 푹 빠져들고 말았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꽤나 유명하다는 예술가 아진은 그녀의 오랜 친구이자, 든든한 예술 파트너다. 그의 제안으로 함께 프놈펜에서 첫 스튜디오 문을 열었다.

<롤리 박이 운영하는 ‘NOWHERE ART STUDIO’는 정문 벽조차 예술가다운 감성이 묻어난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늘 함께 작업하는 동료지만, 각자 관심 영역은 조금은 다르다. 그녀는 고전적인 스타일 방식 즉 직접 손으로 그리는 방식의 미술을 지향하지만, 아진은 컴퓨터 그래픽 디자인을 더 선호한다. 아진은 현재 PPIIA 예술대학과 일부 대학에서 미술 강의를 맡고 있다. 그는 “아진을 따라 컴퓨터 그래픽을 시도했지만, 아직은 몸이 서툴게 반응한다”며 웃었다. 캄보디아에 온 지 햇수로는 불과 5년 차지만, 롤리 박의 재능은 이미 이 바닥에 소문이 났다. 그녀의 재능과 실력을 알아본 현지 미술애호가들이 그의 작품 활동을 적극 지원해주고 있다. 그와 궁합이 가장 잘 맞는다는 더 플랜테이션 호텔 측은 벌써 4년째 그의 워크숍과 미술작품 전시판매 이벤트를 적극 지원해주고 있다. 코로나 위기가 터지기 전까지만해도 이 호텔로부터 일년에 한번 열던 워크숍을 두 번씩 열 수 없냐는 제안까지 받아 행복한 고민에 빠진 적도 있다.

<한국인 예술가 롤리 박이 운영 중인 NOWHERE STUDIO 위크숍 공방 모습. - 출처 : 통신원 촬영>

그가 캄보디아 젊은 신진예술가들과 각자 창작한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판매도 하는 아트 마켓(일명 Phsar Art)를 매년 정기적으로 여는 이유가 있다. 이 나라 화가 또는 프놈펜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다양한 국가에서 온 외국 예술가들과 작품 활동을 매개로 한 교류와 공감대 형성을 통해 같은 예술가로서 함께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공유하기 위함이다. 물론 기대했던 것만큼 처음부터 일이 잘 풀린 것은 아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특유의 낯가림 때문에 처음에는 함께 협업을 하자는 제안조차 꺼내기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들은 ‘아트 워크숍’이란 단어조차 생소해했다. 지금은 입소문을 타고 캄보디아 예술가뿐만 아니라 외국 예술가들도 동참하는 캄보디아에서 가장 큰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그가 만든 캄보디아 최초의 아트 전문 마켓인 셈이다.

롤리 박은 종종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미술 관련 워크숍도 연다. 마침 필자가 스튜디오를 방문한 날은 패브릭을 이용한 프린팅 작품 워크숍이 열린 날이었다. 유럽과 일본에서 온 여성들이 열심히 판화를 만들고 천에 이미지를 찍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4시간 넘게 진행된 워크숍이 끝나자, 좁은 스튜디오 안은 각자 만든 작품을 들고 만족스러워하는 참석자들의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물론 그 나름 고민도 있다.
	
	작품을 만들고 직접 소비자를 만나서 판매까지 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심지어 어떨 때는 행사장 주차관리까지 해야 할 만큼 여러 일들을 동시에 해야 하기도 한다.

판매가 아닌 작품 활동에만 전념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그림 한 폭에 수천만원, 수억원 대를 호가하는 작품을 그리는 유명화가가 아니라면 전 세계 대부분의 많은 예술가들이 갖는 공통된 고민일 것이다. 2층은 전용 스튜디오지만, 아래 1층 방은 외국인 여행객들을 위한 숙소로도 활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은 겉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었다. 그의 눈빛은 자신감으로 넘치고, 목소리 역시 쾌활하고 에너지가 넘쳤다.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진 여성이었다. 캄보디아 미술시장의 미래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표정이 더 밝아졌다.

	처음에는 미술작품을 감상하러 오는 관람객들 80%가 외국인이었다. 그런데 행사를 거듭할수록 캄보디아 관람객들이 늘더니, 지난해는 절반이 캄보디아 관람객들이었다. 그림도 절반은 캄보디아 손님들이 사갔다. 그 만큼 미술작품에 대한 관심도, 수요도 높아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추구하는 미술작품이 어느 장르에 속하는지 물었다. 내 스스로 미술에 문외한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질문이었다. 그러자 옆에서 앉아 있던 아진이 대신 친절히 설명을 해준다.

	우리가 추구하는 예술은 순수 미술과 대중에게 쉽게 다가간 ‘스트리트 아트’(Street Arts)의 경계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그 중간지대를 파고든 예술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캄보디아 미술시장의 전망에 대해서도 그가 설명을 이어갔다.
	
	캄보디아는 예술에 있어서도 많은 것이 부족하다. 수도 프놈펜은 물론이고 심지어 캄보디아 전국을 통틀어도 갤러리는 몇 개 안 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나라는 아직 잠재력이 많은 나라다. 요즘 많은 젊은이들이 예술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래픽 등 직접 배우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수도 프놈펜을 중심으로 미술작품 구매에 관심을 가진 저변 인구도 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캄보디아는 미술 분야에서도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큰 나라다.

<롤리 박의 최근 작품. 작품명은 ‘프놈펜 화이트 하우스’. 그녀는 캄보디아 빈민가의 풍경 등 서민들의 일상생활의 모습도 종종 작품 소재로 삼곤 한다. - 출처 : 롤리 박>

롤리 박의 작품은 순수 미술보다는 대중이 선호하는 실용미술에 훨씬 더 가깝다. 하지만, 그는 경계의 벽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도 없어 보였다. 대중이 쉽게 미술작품에 접근할 수 있고 주머니 사정이 어렵다고 구입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이 주종을 이룬다. 스튜디오 전시공간에는 펜으로 그린 그림 작품뿐만 아니라 집에서 소품용으로 또는 장식용으로 쓸만한 실용미술작품들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독립기념탑 같은 이미지를 스티커로 제작해서 판다. 엽서로 만든 작품도 보인다. 아진이 손수 만든 유머러스한 도자기 작품은 눈길을 끈다. 당장 지갑에 손이 갈 만큼 맘에 드는 그림 작품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20평 남짓한 스튜디오 공간에 전시된 그녀의 작품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프놈펜 시내 곳곳에 보석처럼 감춰져 있다. 프놈펜 국제공항 1층 갤러리 식당에도 그녀가 그린 작품들이 있다. 유리벽에 스티커 형식으로 붙여진 이미지 작품은 바로 그의 작품이다. 이온몰 이메이징 캄보디아와 디스플레이 스토어, 프놈펜 러시안 마켓과 씨엠립 미술작품 가게에서도 그의 작품을 구입할 수 있다.

교민사회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캄보디아 예술계에서 그는 이미 유명인사다. 필자가 다녀가기 전부터 《크메르 타임즈(Khmer Times)》와 《프놈펜 포스트(Phnom Penh Post)》 등 현지 언론들도 그녀의 작품 활동과 미술 세계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의 작품 활동은 이미 여러 차례 다른 잡지와 언론매체에도 기사로 소개된 적도 있다. 처음 그에게 연락을 취했을 때 한국 언론과 인터뷰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며, 어떻게 알았냐며 오히려 신기해했다. 앞으로 올해 목표와 계획을 물으니, 답변과 함께 유쾌한 웃음을 짓는다.
	
	작품 활동에 보다 더 집중하고 싶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도 더 유명해지고 싶다. 금년 10월에 더 플랜테이션 호텔측 제안으로 4번째 아트 마켓을 열 계획이다. 금년엔 책을 출간할 계획도 갖고 있다. 지금 생각하는 책 제목은 ‘프놈펜 또는 캄보디아 다이어리’다.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소재로 한 책을 구상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미 전시 제안까지 들어와 전시회를 겸해 책도 소개할 생각이다. 물론 거창한 게 아닌, 그저 개인적인 소소한 이야기들을 내용으로 담고 있을 예정이니 너무 큰 기대는 말아달라.

<그의 오랜 친구이자 예술 동료인 말레이시아 예술가 아진(왼쪽)과 함께 탈을 쓴 채 포즈를 취한 롤리 박. - 출처 : 통신원 촬영>

이어 캄보디아 생활을 만족하는지에 대해서도 질문했다.

	너무 좋다. 정말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프놈펜은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고 다양한 문화가 공존한다. 식당들도 마치 이태원 거리처럼 중동의 이라크나 에티오피아 같은 아프리카 음식들도 경험할 수 있어 살기 좋은 것 같다. 처음 왔을 때는 미술 분야 종사들도 아는 이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도 좋았다. 무엇보다 여기선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아서 좋았다. 이 나라는 무엇이든 처음인 경우가 많다. 4년 전 워크숍을 열었을 때 다들 내가 처음이라고 말해주었다. 한국은 어딜 가나 경쟁이고 어느 대학을 나왔냐부터 묻는데, 여기선 아무도 그런 걸 묻지 않는다. 오로지 실력만으로 나를 평가할 뿐이다. 더욱이 이 도시에선 나와 같은 다양한 국적의 아티스트들을 만날 수 있어 좋다.

무릇 예술가들이 작품을 통해 희망하는 것은 그 작품에 관심을 보이거나, 구매하려는 소비자와의 무언의 소통이다. 미술작품을 생산하는 사람은 그것을 소비하는 사람을 향해 나아가기 마련이다. 순수 미술을 비하할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지만, 순수 미술가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를 강조하는 경향이 종종 드러난다. 반면 대중이 좋아하는 실용미술을 하는 예술가들은 자신이 디자인한 것이 소비자의 손에 잡히도록 심리를 알기 위해 늘 고민한다. 물론 이로 인해 너무 상업적이란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말이다. 이렇듯 대상에 대한 각자 다른 생각과 태도가 순수 미술과 실용미술의 경계를 만든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 만난 예술가 롤라 박은 그 사이 경계의 벽을 마음대로 오가며, 심지어 그 벽을 무너뜨리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게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간에 말이다. 자유로운 영혼과의 인터뷰는 늘 유쾌하고 삶에 신선한 자극마저 준다. 그래서 더더욱 기분이 좋은 인터뷰였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5년째 활동 중인 예술가 롤리 박은 코로나 위기에 불구, 금년에는 더 많은 창작 활동을 하고 싶고, 이를 통해 더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로 세상에 알려지고 싶다고 꿈을 밝혔다. - 출처 : 통신원 촬영>


통신원 정보

성명 : 박정연[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캄보디아/프놈펜 통신원]
약력 : 현) 라이프 플라자 캄보디아 뉴스 매거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