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문화가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면서 국내 스타들의 위상 또한 세계 무대에서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이제 유창한 외국어 실력과 문화적 개방성을 아우르는 역량은 세계 무대 활약을 위한 필수 덕목이 됐다. 그렇다면 단순한 팬과 스타 관계를 넘어 필리핀과 문화적 배경을 공유하며 현지 대중과 깊은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한 한국 스타들은 누가 있을까? 수년간 현지에 거주하며 필리핀 문화를 체득한 스타부터 문화적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이들까지, 필리핀이 한국 스타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와 현지 대중이 이들에게 열광하는 문화적 맥락을 짚어봤다.
필리핀과 인연을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독보적인 인물이 바로 산다라박이다. 필리핀 사람들에게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국민 스타로 자리매김한 산다라박은 케이팝 아이돌로 데뷔하기 전부터 필리핀에서 가수와 배우로 활동했다. 산다라박 가족은 1994년 필리핀으로 이주했고 이후 13년 동안 필리핀에서 거주했다. 산다라박은 2004년 필리핀 유명 오디션 프로그램인 <스타 서클 퀘스트(Star Circle Quest)>에 출연해 ‘국민 4차원(Pambansang Krung-Krung)’이라 수식어를 얻으며 큰 인기를 누렸다. 산다라박은 오디션에서 최종 2위를 차지하며 필리핀 ‘국민 여동생’으로 불렸고, 데뷔 앨범은 필리핀 음악 차트 1위를 기록했다. 2007년 아이돌이 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온 산다라박은 그룹 투애니원(2NE1)으로 데뷔하며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필리핀 데뷔 이후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산다라박이 등장하는 광고를 현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그의 인지도는 여전하다.
산다라박의 동생이자 엠블랙(MBLAQ) 천둥 역시 필리핀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필리핀에서의 경험은 천둥이 연예계에 입문하고 활동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본래 축구선수를 꿈꿨던 그는 필리핀에서 댄스 워크숍에 참여하며 자연스럽게 무대 문화를 접했고, 누나 산다라박이 오디션을 통해 스타로 성장하는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이 시기 다져진 체력과 언어 능력은 데뷔 이후 영어 교육 프로그램 출연과 그룹 및 솔로 활동에도 도움이 됐다. 천둥은 엠엘디(MLD) 엔터테인먼트와 필리핀 방송사 «에이비에스-씨비엔(ABS-CBN)»이 공동 제작한 오디션 프로그램 <드림 메이커(Dream Maker)>에서 보컬 및 퍼포먼스 멘토로 활약한 사실은 현지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필리핀 대중은 한국 스타들이 마닐라 같은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 도시에 머물렀거나 현지 교육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서 동질감과 친밀감을 느끼고 있다. 드라마 <여신강림>을 통해 인기 배우로 자리매김한 황인엽 역시 필리핀과 깊은 인연이 있다. 황인엽은 과거 필리핀 다바오에 거주하며 다바오 닛케이진카이 국제학교(PNJK-IS)를 졸업했고, 2012년 다바오 필리핀 여성대학교(PWCD)에서 의상디자인(Fashion Design)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185cm에 달하는 훤칠한 체격 덕분에 학창 시절 동기들의 의상디자인 모델로도 활동했던 그는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필리핀에서 생활하며 연예계 데뷔를 위한 기반을 다졌다. 이에 다바오 시민들은 “다바오가 키워낸 한류 스타”라 부르며 친밀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5월 2일, 2023년 투어 이후 약 3년 만에 월드 투어의 일환으로 필리핀을 다시 찾은 가수 우즈(WOODZ) 역시 학창 시절을 필리핀에서 보냈다. 우즈는 초등학교 졸업 후 2년 동안 브라질 명문 축구 클럽 에스씨 코린치앙스 파울리스타(Sport Club Corinthians Paulista)에서 축구 유학을 했지만 한계를 느끼고 귀국했다. 이후 부모님의 권유로 영어 공부를 위해 필리핀 리들리 국제학교(Reedley International School)에서 1년 동안 수학했다. 필리핀 현지 매체들은 그의 방문을 “학창 시절을 보낸 제2의 고향으로의 귀환”이라고 소개하며 비중 있게 다뤘다. 우즈는 공연 중 통역 없이 유창한 영어로 관객들과 소통하며 깊은 교감을 나눴고, 자신의 팬덤인 '무즈(MOODZ)'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아스트로 차은우는 필리핀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영어 실력을 키웠으며, 현지 인기 밴드 벤앤벤(Ben&Ben)의 곡을 타갈로그어로 선보여 큰 호평을 받았다. 한국 스타가 현지 노래를 진심을 다해 부르는 모습은 필리핀 대중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비투비 육성재와 아이콘 김진환 또한 세부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공식 석상에서 필리핀어뿐 아니라 중남부 지역 언어인 비사야어(Visayan)를 구사해 현지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또한 허현준이 필리핀의 대표 디저트인 '할로할로(Halo-halo)'를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꼽거나, 티엔엑스(TNX) 천준혁의 모범적인 필리핀 학교생활 사진이 현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재조명되는 현상 역시 스타와 필리핀 팬들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히는 요소로 작용했다.
12살 때 마닐라에서 보낸 두 달 동안 완벽하게 적응해 귀국을 거부했을 정도로 필리핀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마마무 솔라의 일화는 현지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 유학 경험이 있는 퍼플키스 나고은과 드림캐쳐 유현 역시 당시 체득한 문화적 유연성을 바탕으로 영어권 팝송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글로벌 활동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하이라이트 손동운은 단순히 국가 단위의 인사를 건네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머물렀던 '산타 로사(Santa Rosa)' 지역을 직접 언급해 지역민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처럼 스타들이 방송에서 던지는 필리핀어 한마디, 필리핀 음식에 대한 추억은 현지 대중과 교감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필리핀에서 체득한 언어 능력과 새로운 문화적 수용성은 한국 스타들이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필리핀 대중이 이들을 단순한 '외국인 스타'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필리핀 대중은 이들을 자국에서 성장한 '카파밀야(Kapamilya, 가족의 일원)'로 여기며 친근감을 표현한다. 원래 필리핀 «에이비에스-씨비엔(ABS-CBN)» 방송사가 자사 시청자와 소속 연예인을 가족처럼 여긴다는 의미로 사용한 이 표현이 한국 스타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필리핀과 특별한 인연을 지닌 한국 스타들은 양국 간 문화적·정서적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한국이 문화를 수출하고 필리핀이 소비하는 일방향적 구조를 넘어, 필리핀이 한국 스타의 성장 과정에 영향을 주고 그 경험이 다시 글로벌 무대에서 발현되는 문화 교류의 사례로 볼 수 있다. 한국과 필리핀을 오가며 쌓은 경험은 개인의 성공을 넘어 양국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연결고리로 기능하고 있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에이비에스-씨비엔(ABS-CBN)» (2018.06.09). Jinhwan of K-Pop group iKon reveals he once lived in the Philippines, https://buly.kr/6MtpF4K
- 《케이팝 헤럴드(K-POP Herald)》 (2018.07.31). [V Report Plus] 'Goblin' star Yook Sung-jae keeps special place in his heart for the Philippines, https://buly.kr/3CQBaO3
- 《프리뷰 피에이치(Preview PH)》 (2021.01.12). 10 Korean Celebrities Who Lived in the Philippines, https://buly.kr/4mf0PjS
- 《지엠에이 엔터테인먼트(GMA Entertainment)》 (2021.04.08). Korean stars who call the Philippines their second home, https://buly.kr/DlLeRLF
- 《필스타 라이프(PhilSTAR L!fe)》 (2022.06.21). From Davao City to kwek-kwek: Here’s why the PH has a ‘special place’ in Hwang In-youp’s heart, https://buly.kr/CrIuWg
- «에이비에스-씨비엔(ABS-CBN)» (2024.03.15). Cha Eun-woo ‘always happy’ to perform for Filipino fans, https://buly.kr/1wXviG
- «에이비에스-씨비엔(ABS-CBN)» (2025.01.27). Korean drama star Hwang In-Youp wants to go back to Davao, https://buly.kr/6XoaDtw
- 《마닐라 불레틴(Manila Bulletin)》 (2026.05.04). WOODZ charms fans with 'Raining in Manila' cover in PH Show, https://buly.kr/6XoaDu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