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쇼핑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귀를 사로잡는 것은 케이팝 음악이다. 매장 곳곳에서는 현지 청년들이 한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치킨과 떡볶이를 즐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한국 대중문화와 음식을 자연스럽게 소비하는 풍경은 이제 필리핀의 일상이 됐다.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 지리적으로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던 한국과 필리핀은 어떤 인연으로 연결돼 있었을까.
바기오에 있는 필리핀 통합사관학교(PMA) 교정에는 6·25전쟁 참전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 기념비는 2010년 5월, 6·25전쟁과 한·필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한국을 돕기 위해 파병을 결정한 필리핀 정부와 참전용사들의 희생에 감사를 전하기 위해 건립됐다. 필리핀은 1949년 3월 3일 아세안 국가 가운데 가장 먼저 대한민국과 정식으로 수교를 맺었다. 수교 1년 뒤인 1950년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자 필리핀은 필리핀한국원정군(PEFTOK)을 한국에 파병했다. 하지만 당시 필리핀의 국내 사정은 해외에 병력을 파견할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 필리핀 통합사관학교 교정에 설치된 6·25전쟁 참전기념비 - 출처: 통신원 촬영 >
당시 필리핀은 1946년 시작된 후크발라합(Hukbalahap) 반란으로 정국이 혼란한 상태였다. ‘후크봉 바얀 라반 사 하폰(Hukbong Bayan Laban sa Hapon)’의 약자인 후크발라합은 우리말로 ‘항일인민군(抗日人民軍)’을 뜻한다. 이들은 본래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필리핀을 점령했던 일본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1942년에 조직된 무장 저항 단체였다. 전쟁 기간 루손섬 중부를 중심으로 강력한 게릴라전을 펼치며 활약한 이들은 당시 민중들에게 ‘영웅’이었다. 이들은 대외적으로는 독립운동 조직이었으나, 대내적으로는 가난한 농민을 중심으로 조직된 마르크스-레닌주의 게릴라 조직이었다.
일본이 물러간 후인 1946년 독립한 필리핀에서는 정부 요직을 스페인과 미국 식민지 시절부터 부를 축적해 온 대지주 출신 인사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의 눈에 농민 편에 서서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하라”고 요구하는 후크발라합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하는 세력에 불과했다. 결국 미국과 필리핀 정부는 후크발라합에 무장 해제를 요구하는 한편 정계 진출도 차단했다. 이에 반발한 후크발라합은 다시 무기를 들고 산으로 들어가 필리핀 정부를 상대로 무장 투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필리핀의 국내 상황은 정부 부패와 경제난으로 더욱 악화됐고, 후크발라합의 세력도 빠르게 커졌다. 이들은 1만 명이 넘는 병력을 확보하며 마닐라 외곽까지 세력을 확장했고, 이후 조직명을 '인민해방군(HMB)'으로 변경했다. 1949년 4월에는 필리핀 제2대 대통령이자 필리핀 자치령 초대 대통령인 마누엘 L. 케손의 부인 아우로라 케손이 이동 중 매복 공격을 받아 숨졌다. 이 사건은 필리핀 정치권과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정부군이 연이어 열세를 보이자 미국에서는 별도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필리핀 정부가 수개월 안에 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필리핀 정부가 국내 위기에 대응하던 무렵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국제연합(UN)이 회원국에 파병을 요청하자 엘피디오 키리노 필리핀 대통령은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다. 당시 필리핀 의회와 언론에서는 국내 정세가 불안한 상황에서 한국에 병력을 보내는 것은 무리라는 반대 여론이 강하게 제기됐다. 이러한 반대론을 설득하며 파병을 주도한 인물이 당시 국방부 장관이었던 라몬 막사이사이였다.
막사이사이 국방부 장관과 엘피디오 키리노 대통령은 6·25전쟁과 필리핀 내전을 아시아 공산화 확산이라는 하나의 흐름으로 인식했다. 이들은 한반도가 공산화될 경우 다음 목표는 대만, 이어 필리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봤다. 또한 아시아 전역에서 공산화가 확산되면 필리핀 내 후크발라합 세력도 더 이상 통제하기 어려울 것으로 우려하며, '한국을 돕는 것이 곧 필리핀을 지키는 길'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독립 이후 미국의 원조에 크게 의존했던 필리핀은 파병을 통해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외교적으로도 자국의 국익에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치열한 논쟁 끝에 필리핀은 1950년 9월 참전 법안을 통과시키고 필리핀한국원정군(PEFTOK)을 조직했다. 한국에 처음 파병된 부대는 후크발라합 소탕 작전을 통해 전투 경험을 쌓은 제10대대전투단(10th BCT)이었다. 이들은 혹독한 겨울 추위와 낯선 지형 속에서도 여러 전투에 참여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51년 4월 연천 인근에서 벌어진 ‘율동 전투’다. 당시 필리핀군은 중국인민지원군의 공격으로 포위된 상황에서도 진지를 방어하며 연합군 부대가 철수할 시간을 확보했다. 이 전투에서 필리핀군 12명이 전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필리핀은 6·25전쟁 기간 연인원 7,420명을 파병했으며, 116명이 전사하고 299명이 부상하는 희생을 치렀다.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 한국 파병을 주도했던 라몬 막사이사이 전 국방부 장관이 같은 해 11월 필리핀 제7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막사이사이 대통령은 군사적 진압과 함께 후크발라합이 세력을 넓힌 배경에 농민들의 빈곤과 토지 문제에 대한 불만이 자리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투항한 대원들에게 사면과 생계 지원, 정착 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농지 개혁과 이주 정책을 추진했다. 이러한 강온 양면 전략으로 후크발라합의 세력은 빠르게 약화됐고, 대원들의 이탈도 이어졌다. 결국 1954년 5월 최고 지도자 루이스 타루크(Luis Taruc)가 정부에 투항하면서 후크발라합 반란은 사실상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필리핀한국원정군이 참전했던 대한민국은 오늘날 세계적인 문화적 영향력을 갖춘 국가로 성장했다. 현재 필리핀의 젊은 세대는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을 자연스럽게 즐기며 한국 문화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전쟁 참전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위기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 역시 이러한 희생을 기억하며 참전용사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후손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한편 퇴역 함정을 무상 공여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보답을 이어가고 있다.
실제로 필리핀 소셜미디어에서는 한국이 참전용사와 후손들에게 이어 온 지원에 감사하는 반응을 찾아볼 수 있다. 일부 참전용사 후손들은 세대가 바뀐 뒤에도 한국 정부가 참전의 의미를 기억하고 장학금과 지원을 이어 가는 데 감사함을 나타냈다. 한국 문화를 즐기는 필리핀의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양국이 단순한 문화적 친밀감을 넘어 한국전쟁 참전이라는 역사적 인연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에 의미를 두는 반응이 나타난다.
이처럼 한국이 이어 온 보답은 필리핀인들에게 과거의 희생이 오늘날까지 기억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이 오늘의 평화와 번영을 이루기까지는 내전이라는 혼란 속에서도 한국행 수송선에 몸을 실었던 필리핀 청년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 역시 잊어서는 안 될 역사다. 6·25전쟁 발발 제76주년을 맞아 양국이 공유하는 이러한 역사적 인연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교류와 협력이 더욱 깊어지기를 기대한다.
참고자료 및 사진 출처
- 통신원 촬영
- 《인콰이어러(Inquirer)》 (2020.06.29). Remembering a forgotten war, https://buly.kr/2UlKBv4
- 《인콰이어러(Inquirer)》 (2023.08.22). 93-year-old Korean War veteran in Oriental Mindoro town recognized, https://buly.kr/E7BKvlf
- 《필스타(Philstar)》 (2023.09.26). Heroes for freedom, https://buly.kr/DlLoy8p
- 《필스타(Philstar)》 (2025.06.01). There will always be a Philippines, https://buly.kr/90dMU7K
- 《인콰이어러(Inquirer)》 (2025.07.02). The unyielding Filipino spirit that turned the tide at Yultong, https://buly.kr/A47uN1D
- 《필리핀 뉴스 에이전시(Philippine News Agency)》 (2026.04.29). Yultong and the 10th BCT, https://buly.kr/5q9ipRo
- 《마닐라 불레틴(Manila Bulletin)》 (2026.06.21). PH Marines lead US, South Korea, PCG, PNP in Cavite amphibious raid training, https://buly.kr/8IyKY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