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한강(韓江)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문학에 대한 중국 독자들의 관심을 다시 한번 끌어올렸다. 이를 계기로 상하이 곳곳에서는 '한국문학(韩国文学)', '한녀 문학(韩女文学)'을 주제로 한 공공 및 민간 차원의 다양한 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갑작스러워 보이는 이러한 관심은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20여 년에 걸친 번역과 출판의 축적이 있었으며, 그 중심에는 번역가 쉐저우(薛舟)가 있다.
< 중국 문화 콘텐츠 플랫폼 도우반(豆瓣)에 소개된 ’응답하라, 한국문학(请回答,韩国文学)’ - 출처: 도우반(豆瓣) >
최근 중국 인민문학출판사(人民文学出版社)에서 출간된 그의 한국문학 평론·산문집은 개별 작품의 번역서가 아니라, 한 명의 현지 번역가가 직접 기록한 '한국문학의 중국 수용사(受容史)'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또한 중국 젊은 세대에게 친숙한 한국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착안해 책 제목을 『응답하라, 한국문학(请回答,韩国文学)』으로 지은 점도 흥미롭다. 이 책은 케이팝, 영화, 드라마와 구별되는 이른바 '문학 한류' 또는 '출판 한류'의 전개 과정을 정책 보고서나 학술 논문이 아닌, 출판 현장에서 활동한 중국 번역가의 시선으로 담아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중국의 문예지 《서부(西部)》, 《세계문학(世界文学)》, 《작가보(作家报)》, 《북경문예평론(北京文艺评论)》 등에 발표한 평론과 연간 보고, 작가론, 단문을 4부로 엮은 책이다. 저자는 자서에서 이 책이 엄밀한 학술 이론서라기보다 번역과 독서 과정에서 얻은 직관적인 감상을 바탕으로 쓴 글이라고 밝힌다. 또한 텍스트를 세밀하게 분석하기보다 한국 사회와 역사, 문화적 맥락을 폭넓게 조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된다. 1부 '한국문학 개관(韩国文学概观)'에는 한국문학을 역사적·총체적으로 조망한 평론을 담았고, 2부 '신세기 회고(回首新世纪)'에는 중국 사회과학원 외국문학연구소의 《외국문학동태연구(外国文学动态研究)》에 기고한 연도별 한국문학 보고를 수록했다. 3부 '휘영청 밝은 달(皓月当空照)'에서는 황석영, 이문열, 신경숙, 한강, 김애란 등 한국 작가들의 서사적 특징과 문학세계를 평론했으며, 4부 '별빛, 다시 흩어지다 (星星又点点)'에는 번역가로 활동하며 기록한 글과 단상을 엮었다. 부록에는 한국의 3대 문학상과 주요 소설가·시인에 대한 소개를 실어, 중국에서 한국 현대문학 비평서가 드문 현실을 고려하면 참고자료로도 활용 가치가 높다.
이 책에서 문화산업적 관점에서 주목할 만한 대목은 저자가 제시한 한국 현대문학의 중국 전파 3단계론이다. 그는 지난 20여 년간의 흐름을 유행소설(流行小说), 영상문학(影视文学), 순문학(严肃文学)의 세 단계로 정리했다. 이는 한국 콘텐츠의 해외 확산 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대중문화 선행, 고급문화 후행'의 양상이 문학 분야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음을 보여준다.
초기에는 한국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은 청춘·연애소설이 시장을 넓혔고, 이후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한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축적되면서 사회성과 문학성을 갖춘 순문학이 자리 잡을 기반이 마련됐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러한 흐름에 비춰 보면 한국문학은 한류 콘텐츠 가운데 비교적 늦게 중국 시장에 진입했지만, 한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이끄는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의 작가는 어떤 사람일까. 쉐저우는 시인이자 번역가로, 본명은 쑹스전(宋时珍)이며 중국 산둥(山东) 출신이다. 중국 뤄양(洛阳)에 있는 해방군외국어대학(解放军外国语学院)을 졸업했으며, 대학 시절 책 표지에 적힌 외국 문학 번역가들의 이름을 동경한 것이 번역의 길로 들어선 계기였다고 회고한다. 대부분의 번역 작업은 아내이자 공역자인 쉬리훙(徐丽红)과 함께해 왔다.
쉬리훙은 헤이룽장(黑龙江) 출신으로 한국 목원대학교에서 유학했으며, 지금까지 800만 자가 넘는 한국문학을 번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2024년 3월 제9회 단샹제(单向街) 서점 문학상에서 '올해의 번역가'로 선정됐으며, 이는 첫 공동 번역 선집을 출간한 지 20년이 되는 해에 이룬 성과였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번역 이력이 앞서 소개한 한국문학 중국 전파의 3단계론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초기에는 <대장금>, <풀하우스>, <파리의 연인>, <불새> 등 드라마와 연계된 대중문학 번역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신경숙의 『외딴방』, 『엄마를 부탁해』, 『리진』을 비롯해 김영하의 『빛의 제국』, 천명관의 『고래』, 『나의 삼촌 브루스 리』, 김애란의 『비행운』,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와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 이정명의 『바람의 화원』, 김별아의 『미실』 등 순문학으로 번역의 폭을 넓혀 갔다. 또한 고전 『춘향전』도 함께 번역했다. 최근까지는 《세계문학(世界文学)》, 《외국문예(外国文艺)》, 《역림(译林)》, 《작가(作家)》등 주요 문예지를 통해 다수의 한국 작가를 중국에 처음 소개하는 역할도 맡았다.
특히 2004년 쉐저우가 편역한 4권짜리 『한국당대소설총서(韩国当代小说丛书)』는 신경숙, 김인숙, 은희경, 권지예의 작품을 묶어 중국에 소개한 선집으로, 한국 현대 여성문학을 체계적으로 소개한 대표적인 번역서로 평가받는다. 이어 2005년에는 인민문학출판사를 통해 신경숙의 『외딴방』을 쉬리훙과 함께 번역·출간했으며, 이 작품으로 2007년 제8회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하며 번역 역량을 인정받았다.
중국인 번역가인 두 사람의 20여 년에 걸친 한국문학 번역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한국문학이 중국에서 '드라마의 부록'에서 '독립적인 문학 장르'로, 나아가 '동시대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 자리매김해 온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자서를 수정하던 중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했다고 한다. 번역 현장 당사자가 "이 수상이 중국 독자의 관심에 불을 붙였다"고 밝힌 대목은, 노벨상이라는 외부 계기가 지난 20여 년간 축적된 한중 번역·출판 기반과 결합하면서 한국문학의 대중적 확산을 이끌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은 2024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중국의 대표적 시사·문화 주간지 《삼련생활주간(三联生活周刊)》이 '한녀문학(韩女文学)' 열풍과 한국문학의 부상을 심층적으로 다룬 것과도 맞닿아 있다. 한강의 수상 직후 중국 주요 매체가 한국문학을 집중 조명하고, 2년 뒤인 2026년에는 중국 번역가가 집필한 한국문학 평론서가 출간됐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이는 한국문학이 중국에서 단순한 소비 대상을 넘어, 비평과 토론의 대상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출판된 한국 현대문학 평론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국문학 번역서와 관련 연구는 꾸준히 늘었지만, 한국문학을 하나의 독립된 문학 범주로 맥락화하고 평가한 평론서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지 번역가가 직접 집필한 평론집의 출간은 한국문학이 단순한 오락의 대상을 넘어 비평과 사유의 대상으로도 자리 잡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삼련생활주간(三联生活周刊)》이 한국문학을 '후(後)정치 시대에서 보편의 시대로'라는 문학사적 틀에서 조명한 점과도 맞닿아 있다. 이는 한국문학이 중국 지식계에서 하나의 학술적 논의 대상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작품 속 비빔밥이나 자장면 같은 문화적 요소마다 주석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한류를 통해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축적되면서 문학을 받아들이는 장벽도 한층 낮아졌다. 이는 영상 한류가 문학 한류의 토대가 되었다는 쉐저우의 분석과도 맞닿는다.
한편 쉐저우가 신경숙의 『외딴방』 번역으로 받은 제8회 한국문학번역상은 한국문학번역원이 우수 번역가를 발굴·지원하며 현지 번역 역량을 꾸준히 육성해 온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삼련생활주간(三联生活周刊)》 역시 번역원의 장기적인 지원이 국제 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하며, 2024년 상반기에만 한국문학 작품 3편이 국제 문학상을 수상하고 5편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고 소개했다. 이는 콘텐츠의 해외 확산 과정에서 작품성뿐 아니라 번역 지원과 제도적 기반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저자가 제시한 "민족의 비사(秘史), 여러 작가의 작품이 모이면 한 민족의 숨은 역사가 된다”라는 문장은 한국문학을 한국 사회와 역사를 이해하는 통로로 바라보는 그의 관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책 전체의 문제의식을 가장 잘 드러내는 문장이기도 하다.
현재 중국에서 큰 관심을 받는 것은 한국 여성 작가들이 그려내는 섬세한 여성 서사이지만, 한국 현대사의 상처를 다룬 작품들 역시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두 축을 균형 있게 조명하며 중국 독자들이 한국 사회와 현대사에 대한 이해를 넓히도록 돕는다.
무엇보다 이 책은 《삼련생활주간(三联生活周刊)》과 같은 시사·문화 잡지의 특집 기사가 아니라 한 권의 평론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아시아 문학이나 기타 외국문학의 일부로 다뤄졌던 한국문학의 중국 수용 과정을 성과 통계가 아닌, 한 번역가가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20여 년의 기록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