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의 번화가 횡단보도 앞에 등장한 ‘한국식 그늘’
- 오차노미즈역 그늘막 설치와 도쿄 생활 속 한류 -
선선한 가을날, 서울에서는 10년 전부터 설치되여 어디서나 자주 이용하고 있는 그늘막이 도쿄(東京)에 등장한 현장을 취재하기 위해 설치 장소인 오차노미즈역(御茶ノ水駅)으로 향했다. 그늘막은 오차노미즈역 오차노미즈바시 출구 앞 보도에 있어, 개찰구를 나서면 흰색 대형 파라솔이 곧바로 눈에 들어온다. 그늘막은 오전 8시경부터 오후 6시경까지 펼쳐지고, 야간과 비나 악천후가 예상될 때는 접는다. 운영은 6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다.
횡단보도 그늘막은 한국에서 먼저 자리 잡은 시설이다. 서울 서초구가 2015년 ‘서리풀원두막’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선보였고, 2016년 유동 인구가 많은 2곳에서 시범 운영을 거친 뒤 2017년 교통섬과 횡단보도 등 120곳으로 확대했다. 2017년에는 국토교통부가 그늘막을 도로법상 도로 부속시설로 인정했고, 행정안전부는 2023년 서초구의 그늘막을 정부혁신 최초·최고 사례로 선정했다. 일본 총무성 소방청 집계에서 열사병 발생 장소로 ‘도로’는 ‘주거’ 다음으로 많으며, 2026년 6월에는 전체 4,064명 중 833명으로 약 20%를 차지했다. 도쿄 지요다구(千代田区)는 역 앞이나 교차로처럼 많은 사람이 잠시 머무는 곳에서 보행자가 직사광선에 노출되기 쉽다는 점에 주목해 오차노미즈역 앞에서 그늘막 운용을 시작했다. 아울러 그늘막 안팎의 기온·습도·노면 온도와 더위 지수(WBGT), 유동 인구를 측정해 효과를 검증하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는 횡단보도와 버스정류장 같은 거리의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횡단보도 그늘막이 드라마나 뮤직비디오에 직접 등장해 화제가 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늘막은 오히려 한류를 계기로 한국을 찾은 관광객들이 ‘화면 밖’의 진짜 서울 거리에서 스스로 발견한 시설이었다. 바로 이 점이 한류의 관심이 콘텐츠를 넘어 한국인의 일상으로까지 넓어졌음을 보여준다. 이날은 햇볕이 강하지 않아 그늘막 아래에 머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지붕이 드리운 공간에서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 잠시 숨을 고르며 여유롭게 쉬어 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신호를 기다리는 몇 분이 ‘버티는 시간’이 아니라 ‘쉬는 시간’으로 바뀌는 장면이었다. 일본에 살면서 길 위에서 이런 휴식 설비를 마주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래서 이 작은 지붕 하나가 오히려 더 크게 다가왔다. 오차노미즈역 일대는 제이알(JR)과 도쿄메트로가 교차하는 도쿄의 대표적인 환승 거점이다. 역 주변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보험사 등의 대기업의 본사가 자리하고, 메이지대학과 니혼대학, 준텐도대학, 도쿄과학대학 등 여러 대학이 모여 있다. 그래서 이곳은 회사원뿐 아니라 학생들의 유동 인구도 매우 많다. 신호를 기다리는 사람이 늘 많은 교차로이기에, 그늘막 설치에 대한 이용과 반응을 확인하는 의미에서도 이 장소가 선정되었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늘막은 폭 5m 정도의 지붕을 가진 파라솔 두 개를 나란히 세운 형태로, 이용자가 더위를 피하고 그늘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한국의 그늘막과 다른 점이 분명했다. 한국의 그늘막은 녹색 원단으로 만든 경우가 많은데, 오차노미즈역의 그늘막은 흰색으로 만들어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형태도 달랐다. 한국 그늘막이 기둥 하나에 우산을 펼친 모양이라면, 이곳은 네 개의 기둥 위에 지붕을 얹은 구조였다. 다만 네 개의 기둥을 세워야 하는 시설인 만큼, 보도가 좁은 곳에서는 설치나 허가가 쉽지 않겠다는 현실적인 의문이 든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서울의 그늘막을 경험한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이렇게 큰 파라솔을 세울 수 있는 횡단보도가 일본에는 많지 않을 것 같다는 반응이 나왔다. 서초구 역시 보도 폭이 좁은 교통섬과 이면도로를 위해 지름을 절반으로 줄인 2.5m 크기의 ‘미니 서리풀원두막’을 따로 만들어 설치했다. 가장 일본다운 인상을 준 것은 운영 방식 그 자체였다. 한국의 서리풀원두막 역시 시범 운영을 거쳐 확대되었지만, 지요다구는 운용과 동시에 온도와 습도, 더위 지수와 사람의 흐름까지 수치로 측정해 효과를 검증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다음 단계를 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하나 눈길을 끈 것은 그늘막에 붙은 큐알코드였다. 지나가는 시민이 "이게 왜 여기 있지?" 하고 궁금해하면 바로 설치 목적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서초구도 그늘막 기둥에 설치 목적을 적은 배너를 붙여 왔지만, 이곳은 시민의 관심과 질문에 온라인으로 응답하는 창구까지 열어 두었다는 점에서 특색이 있었다. 새로운 시설을 들이면서 근거를 함께 쌓는 절차와 과정을 이번 설치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었다. 오차노미즈역 앞에 흰 그늘막이 등장하자 일본 소셜미디어에서는 곧바로 반응이 이어졌다. 시민들의 게시물을 모은 정리 페이지에는 “한국에서 본 것”, “전국에 보급되었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고, 한 시민은 서울 교차로에서 본 초록색 대형 파라솔을 떠올리며 그늘에서 신호를 기다릴 수 있어 정말 좋았다고 적었다. 서울 서초구가 2015년 처음 선보인 횡단보도 그늘막이 10여 년 만에 도쿄 거리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위 시설은 3월부터 오차노미즈역 앞에서 시설 공사를 시작해 6월부터 10월 말까지 그늘막을 운용하고 있다. 이어 10월에는 시나가와구가 오이마치역 앞 횡단보도에서 나흘간 그늘막 사회실험을 실시했다. 이 실험은 서울 거리에서 그늘막을 보고 일본에도 도입하고 싶다고 생각한 일본 측 제안자와 연세대학교 기후적응 리빙랩 연구사업단이 함께 설계했다. 같은 시기, 한국을 직접 경험한 일본인 관광객의 목소리도 주목을 받았다. 2025년 한국을 찾은 일본인은 약 365만 명으로 2012년 이후 13년 만에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올해 5월에는 한국을 방문한 한 일본인 관광객이 소셜미디어인 스레드에 서울의 그늘막 사진과 함께 “한국에 갔을 때 이 그늘막 덕분에 살았다. 일본도 이런 곳에 세금을 써라”라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되었고, 한국을 다녀온 일본인들의 공감을 얻었다. 같은 달 일본 도시계획학회 연구진 7명은 서초구를 찾아 서리풀원두막의 일본 내 도입 가능성을 검토하는 벤치마킹을 진행했다. 한국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거리의 공공시설을 일본의 거리에도 적용해 보자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류는 드라마와 음악 같은 대중문화에서 시작되었고, 그 첫 단계에서 팬들은 화면 속 장소를 찾아 나섰다. 이제 한국을 찾은 일본인들은 화면에 나오지 않는 한국의 평범한 거리에서 그늘막을 발견하고, 그 경험을 소셜미디어로 나누며 자국의 거리에도 같은 시설을 요구하고 있다. 오늘날의 한류가 문화산업을 넘어 수용자의 적극적 참여까지 아우르는 다층적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분석하는 이유중 하나일 것이다. 오차노미즈역 앞의 흰 그늘막은 지요다구에서 설치한 시설이다. 그러나 그 앞을 지나는 일본 시민들은 이 그늘막을 ‘한국에서 본 것’으로 알아보았고, 시나가와구는 한국 연구진과 함께 실험에 나섰다. ‘문화의 한류’가 ‘생활과 제도의 한류’로 넓어지는 현장이다. 한국과 일본이 서로의 좋은 생활 정책을 주고받는 교류가 앞으로 더 많은 도시의 거리에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사진 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지요다구 웹사이트, https://www.city.chiyoda.lg.jp/koho/kuse/koho/pressrelease/r8/r805/20260529.html -≪토게터(Togetter)≫ (2026. 06. 19). 御茶ノ水駅前に信号待ちの人たちのための日除けができていた「韓国で見たやつ」「全国に普及してほしい」, https://togetter.com/li/2711235 - ≪서울신문≫ (2017. 06. 20). 서초구 대형 그늘막 54곳 설치, 120곳 운영 계획, https://m.go.seoul.co.kr/news/2017/06/20/20170620014019 - ≪로지 투데이(LOGI-TODAY)≫ (2026. 07. 22). 6月の熱中症搬送、工場・作業所など363人, https://www.logi-today.com/979956 - ≪公共R不動産≫ (2026. 09. 30). 猛暑のまちなかの過ごし方を変えてみる。品川区・大井町駅前の交差点で日よけ設置の実証実験を行います, https://www.realpublicestate.jp/post/publicspacedesignforextremeheat-shinagawa-cityla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