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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의 세 페어, 일러스트레이터 JAE의 국경 없는 그림

등록일
2026-07-13
수집기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 해당 국가

    중국

  • 해당 장르

    대중문화

주요내용

2026년 5월과 6월, 상하이에서는 성격이 다른 세 개의 일러스트·아트북 행사가 잇달아 열렸다. 미술관을 닮은 곳, 마켓을 닮은곳, 그리고 옛 초등학교 교실로 관객을 불러들인 곳. 서로 다른 세 개의 무대 위에서 한국 일러스트레이터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중국관객과 마주했다. 지난해 아트북페어 <언폴드 상하이(UNFOLD Shanghai)>에서 시작된 흐름은 올해 더 넓고 뚜렷해졌다. 지난해 <언폴드(UNFOLD)>에 이어 올해 <상하이 국제 일러스트 아트페어(GAF)>와 <언폴드>를 두 차례 참가한 한국 일러스트레이터 'JAE'의 목소리를 통해 지금 중국에서 한국 일러스트가 마주한 기회를 들여다봤다. 

올해 상하이에서는 봄과 여름 동안 일러스트 행사가 촘촘하게 줄을 이어 열렸다. 5월 초 <상하이 국제 일러스트 아트페어(GAF)>, 5월 말 <2026 상하이 국제 일러스트 팝 박람회(SIPS)>, 그리고 6월 중순 <언폴드>까지 성격이 다른 세 행사가 한 도시에서 연이어 진행됐다. <2026 상하이 국제 일러스트 팝 박람회(上海国际插画潮流博览会, Shanghai Illustration&Pop Show; 이하 SIPS)>는 5월 29일부터 31일까지 상하이 전람중심(上海展览中心)에서 첫선을 보였다. 이는 ‘삽화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이탈리아 볼로냐 일러스트 전람회를 기반으로 하여 중국 시장에 맞춰 새롭게 설계된 신생 플랫폼으로, 볼로냐 일러스트 전람회와 밀라노 일러스트 아카데미(Mimaster Illustrazione)가 학술 파트너로 참여했다. ‘삽화예술’, ‘트렌드와 브랜드’, ‘일러스트레이터 애비뉴’의 세 섹션으로 나누었고, 우리가 익숙하게 볼 법한 이미지나 캐릭터를 재해석한 작품이나 한정판 판화, 디자이너 토이, 지적 재산권(IP, intellectual property) 굿즈의 현장 거래에 중점을 둔 ‘상업박람회’에 가깝다. 특히 ‘일러스트레이터 애비뉴’는 개인 창작자가 ‘직업 창작자’로 성장하도록 돕겠다는 취지를 내걸어, 오늘날 중국 일러스트 시장이 창작자의 상업적 자립을 하나의 산업 과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2026 UNFOLD Shanghai>는 6월 11일부터 14일까지 앞선 두 행사와는 전혀 다른 공간에서 열렸다. 상하이 신톈디(新天地) 동타이리(东台里)에 있는 100년 역사의 라거나소학교(喇格纳小学) 옛터가 무대였다. 1935년 프랑스 건축가가 설계한 프랑스 조계 최초의 화인 초등학교 건물로, 2020년 신톈디에서 통째로 이축, 보존한 근대 건축물이다. 올해 <언폴드>는 ‘학교로, 유년으로 돌아가다(回到小学, 回到童年)’를 주제로 삼아 전시를 하나의 ‘개학 날 등교’로 연출했다. 국내외 180개 업체가 참가하였으며, 6개 주제로 전시가 이루어졌다. 22회의 강연과 7회의 워크숍이 4일간 옛 교실 곳곳에서 펼쳐졌고, 5층 옛 도서관 자리에는 ‘가장 아름다운 스위스 책’ 특별전을 비롯한 아홉 개의 주제 전시가 들어섰다. 1층 운동장에서는 ‘쉬는 시간 10분’을 콘셉트로 한 사방치기, 탁구 같은 놀이 프로그램이 관객을 맞았다.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는 2026 언폴드 상하이 아트북 페어의 전경
<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는 2026 언폴드 상하이 아트북 페어의 전경 – 출처: 통신원 촬영 >
<언폴드>는 2017년 상하이의 ‘바나나 피쉬 서점(香蕉鱼书店, BANANAFISH)’이 시작한 아트북 페어로, ‘전개와 열람(展开与翻阅)’을 내걸고 창작자, 출판인, 애호가를 잇는 평등한 교류 플랫폼을 지향한다. 상업 거래보다 책과 종이라는 매체의 예술성, 그리고 작가 간 교류에 무게를 두는 것이 특징이다. 상하이에서 출발해 선전, 도쿄, 마카오로 무대를 넓히며 아시아권 아트북 생태계를 잇는 축으로 성장했다.

세 행사를 나란히 놓으면 지금 중국 일러스트 시장의 세 얼굴이 보인다. 원화를 감상하는 예술 축제(GAF), 굿즈를 거래하는 상업 박람회(SIPS), 그리고 종이와 책을 매개로 교류하는 아트북페어(언폴드). 성격이 이토록 다른 행사들이 한 도시에서 한두 달 사이에 모두 진행된다는 것 자체가, 중국 일러스트 소비 시장이 그만큼 두터워졌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2024년 중국 굿즈경제(谷子经济) 시장 규모는 1,689억 위안(약 33조 원)으로 전년 대비 40% 이상 성장했고, 서브컬처 관련 시장은 2029년 8,344억 위안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러스트레이터 JAE가 상하이 언폴드 행사장에서 사인을 하고 있는 모습
< 일러스트레이터 JAE가 상하이 언폴드 행사장에서 사인을 하고 있는 모습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 흐름 한가운데에서, 지난해 2025 <언폴드 상하이>에 이어 올해 2026 <상하이 국제 일러스트 아트페어(GAF)>와 <언폴드 상하이(UNFOLD Shanghai)>에 모두 참가한 한국 일러스트레이터 ‘JAE’를 만났다. 서울을 주된 활동지로 삼되 중국과 미국에서 오랜 시간 거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국제적인 테마와 다채로운 색채를 다루는 작가로, 현재는 판화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고 밝혔다. 참고로 JAE는 <상하이 국제 일러스트 아트페어(GAF)>와 <언폴드>에는 참가했지만 <2026 상하이 국제 일러스트 팝 박람회(SIPS)>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JAE가 중국 무대에 오른 경로는 요즘 한국 일러스트레이터들이 해외 페어에 참가하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 준다. 그는 인스타그램(Instargram)을 통해 페어를 알게 됐고, 포트폴리오를 제출한 뒤 주최 측 심사를 거쳐 직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참가했다. "평소 해외 북페어나 아트페어에 관심이 많았는데, 인스타그램으로 알게 된 행사들을 하나씩 찾아보고 지원하면서 참여하게 됐어요: 몇몇 유명한 작가나 독립서점은 초청을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작가는 이렇게 스스로 행사를 찾아 지원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여러 행사에 참가하다 보니 참가 경로도 다양해졌다. 다른 작가에게 새로운 페어를 추천받기도 하고, 한 행사에 나갔을 때 다른 페어 주최 측이 부스를 둘러보다가 직접 참가를 제안하는 경우도 생겼다. "요즘 중국은 다양한 페어가 계속 생겨나고 있고, 해외작가들과의 교류를 더 활발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분위기를 많이 느꼈어요. 샤오홍슈(小红书) 같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행사 홍보도 적극적으로 하고, 해외작가들에게 직접 참가를 제안하거나 연락을 주는 경우도 꽤 많은 것 같아요"

그가 페어를 고르는 기준은 분명하다. "저는 가능한 국제적인 교류가 활발한 페어 위주로 참여하려고 해요" 다양한 나라의 작가들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서로의 작업을 직접 보고, 주최 측과도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그에게는 가장 큰 매력이다. "저에게 페어는 단순히 작품을 보여 주는 자리가 아니라, 다른 작가들과 교류하고 주최 측과도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수 있는 소중한 기회예요" 여기에 과거 중국 거주 경험이 더해져, 중국에서 열리는 페어는 그에게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을 다시 방문할 좋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중국 관객이 건넨 온도

JAE가 현장에서 체감한 중국 관객의 반응은 한국과 사뭇 달랐다. 그는 최근 중국에서 한국 문화뿐 아니라 미술과 디자인 전반을 향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고 느꼈다. 특히 젊은 관객 중에는 한국 작가를 이미 잘 아는 이들이 많았다. “실제로 한국에 여행을 와서 소품샵 투어를 해 본 경험이 있는 분들도 많아서, 오히려 저보다 한국 작가들을 더 잘 알고 계신 경우도 있었어요!”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작가와 직접 소통하려는 적극성이었다. 해외 작가를 직접 만날 기회가 드물다 보니 관객들은 질문을 아끼지 않았고,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려 먼저 다가왔다. “가끔은 ‘내가 이렇게까지 많은 관심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따뜻하게 반응해 주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그럴 때마다 직접 관객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얼마나 즐겁고 설레는 일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됐어요.”

관객의 발길을 유독 오래 붙든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귀여운 동물과 재치 있는 이야기가 담긴 그림이다. “강아지나 고양이가 그려져 있으면 본인의 반려동물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작품에 공감해 주시면서 한참 동안 반려동물 이야기를 나누다 가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재치 있는 문구가 들어간 작업에도 반응이 좋았는데, 그중에서도 JAE가 중국 거주 경험을 살려 중국어 문장을 함께 넣은 작품에 관객들이 특히 즐거워했다. 예전에 집 모양 팝업 카드에 “단돈 5위안으로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只需5RMB,你就可以买一个房子)”라는 문구를 적어놓은 적이 있는데, 많은 이들이 재치 있다며 웃고 공감했다고 한다. 유머가 담긴 작품, 귀여운 동물이 등장하는 작업, 그리고 한국 작가의 작품과 문화를 함께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 관객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간 것 같다는 게 그의 관찰이다.

전시 문화의 차이도 뚜렷하게 느껴졌다. “중국 관객분들은 작품과 함께 사진을 찍는 걸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특별하게 옷을 입고 오시거나 카메라를 가져와 전문적으로 촬영하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덕분에 이후 샤오홍슈에 예쁘게 찍혀 올라온 부스 사진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함께 사진을 찍거나 사인을 요청하는 관객이 많았던 점은 한국 페어에서는 거의 경험하지 못한 일이라 더 특별하게 남았다”며 그는 “중국은 작가와 관람객이 직접 교류하는 분위기가 활발하고, 한국은 작품을 중심으로 관람하는 분위기가 조금 더 강한 것 같다”고 두 나라의 결을 정리했다.

젊은 중국인들이 이 작가에게 끌린 이유

관객이 한국 작가에게 끌리는 이유가 한국이라는 해외 국적이 가진 특별함 때문인지, 그림 자체 때문인지에 대한 JAE의 결론은 명확했다. “처음에는 ‘한국 작가’라는 점이 관객분들의 시선을 끄는 요소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현장에서 느낀 건 국적보다 작품 자체에 이끌려 부스를 찾아와 주시는 분들이 훨씬 많다는 거였어요.” 실제로 올해 <언폴드 상하이>처럼 참가 작가의 국적을 따로 표기하지 않는 페어도 있었는데, 대부분의 관객은 작품을 먼저 보고 관심이 생겨 부스를 찾았다고 한다. 다만 한국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관객이 많았고, 한국인이면서 중국어로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을 반갑게 여기는 이들도 많아 고마웠다고 그는 덧붙였다.

관객이 그의 작업에서 ‘한국적’이라고 느낀 지점은 주로 색감과 표현 방식이었고, 이는 작가가 의도한 부분과도 대체로 일치했다. “색을 사용하는 방식이나 특징을 표현하는 방식이 한국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는데, 제가 의도했던 부분과도 어느 정도 일치했던 것 같아요.” JAE는 색감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기 위해 디지털 대신 손그림을 택했고, 리소그래프(Risograph) 인쇄나 팝업 형태처럼 다양한 방식을 시도해 왔다. 관객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특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대목은 한국 일러스트가 중국에서 반복적으로 호출되는 이유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특정 지식재산권(IP, Intellectual Property)나 유행을 몰라도 자연스럽게 손이 가는 낮은 진입 장벽, 반려동물과 일상처럼 국경을 넘어 공감되는 소재, 손그림과 리소그래프가 만들어 내는 고유한 물성과 색감. 여기에 소셜미디어로 이미 형성된 국경 없는 팬층까지. 한국 일러스트는 이 요소들을 두루 갖췄고, 그 덕분에 원화 전시 중심의 <상하이 국제 일러스트 아트페어(GAF)>, 상업 거래 중심의 <2026 상하이 국제 일러스트 팝 박람회(SIPS)>, 교류 중심의 <언폴드> 어느 무대에서나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는다.

한국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중국 전시에 부쩍 많이 나오는 이유를 JAE는 직접 겪은 경험을 통해 설명했다. 그에게 가장 큰 매력은 역시 ‘교류’였다.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관객이자 작가의 입장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정말 즐거워요.” 한국에서는 괜히 긴장해 다른 작가나 관객과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중국에서는 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함께 참가한 중국 로컬 작가님들이 먼저 다가와 인사해 주시고,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해 주셨던 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런 따뜻한 분위기가 정말 고맙게 느껴졌어요.”

한국의 일러스트와 그림책에 대한 중국 내 관심이 예전과 달라졌는지 묻자, 그는 확연히 커지고 있다고 답했다. “중국의 소품샵에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경우도 많아졌고, 아트페어에서도 한국 작가들의 작업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예전보다 훨씬 많아진 것 같아요.” 많은 중국 관객이 이런 변화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며, 한국 작가들의 작업을 더 보고 싶어 하는 분위기도 뚜렷하다고 그는 체감하고 있었다.

주목할 점은 이 흐름이 대형 에이전시나 기획된 진출이 아니라 작가 개인의 소셜미디어(SNS)와 자발적인 지원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리고, 팔로워가 생기고, 페어에 직접 지원해 관객을 만나면서 형성되는 관계, 중개자 없이 창작자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되는 이 구조는 기존 문화 교류의 방식과 결이 다르다. 창작자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하나의 문화 채널이 되는 시대의 단면이다.

그림이 먼저 국경을 넘는다

JAE는 앞으로도 다양한 나라와 도시에서 더 많은 관객을 만나고 싶다고 했다. “저는 새로운 도시를 경험할 때마다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도 함께 넓어진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을 직접 만나면서 제 작업도 조금씩 변화하고 성장하는 것 같고요." 지금은 한국의 반찬과 밥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풀어낸 일러스트북을 기획 중인데, 유머러스하면서도 따뜻한 작품으로 완성하고 싶다고 했다. 중국어 공부를 꾸준히 이어가 중국 관객과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의 작품을 통해 한국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소개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지난해 <언폴드 상하이>에서 올해는 그 무대가 <상하이 국제 일러스트 아트페어(GAF)>, <2026 상하이 국제 일러스트 팝 박람회(SIPS)>, <언폴드>라는 세 갈래로, 그리고 개별 작가와 관객이 직접 연결되는 촘촘한 관계망으로 확장됐다. 한국 일러스트가 중국에서 끊임없이 소환되는 것은 특정 국가의 ‘콘텐츠’가 수출되는 현상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사는 이웃 나라 창작자의 ‘감각’이 공명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공명의 가장 앞자리에는, JAE처럼 직접 국경을 넘어 관객과 마주하는 작가 개개인이 있다. 작가의 그림 한 장이 국경을 더 흐리게 만들고 있다. 
참고자료 및 사진 출처     
- 통신원 촬영
- 언폴드(UNFOLD) 메인 홈페이지, https://shanghaiartbookfair.com
- 《펑파이(澎湃)》 (2025. 05. 26). 城事︱千亿市场:情绪价值满满,“谷子经济”不再小众,
https://m.thepaper.cn/newsDetail_forward_30878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