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는 없는 ‘한국 빙나이(韩国冰奶)’
- 한류의 말과 색으로 빚은 중국산 ‘한국 음료’ -
올여름 중국 대도시 번화가에서는 한글이 적힌 파스텔빛 음료 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름은 ‘한국 빙나이(韩国冰奶)’. 과일과 생우유, 얼음을 섞어 분홍, 하늘색, 연두색을 낸 차가운 우유 음료다. 매장에는 한글 간판이 걸리고 ‘한국 드라마 속 그 음료(韩剧同款)’라는 문구가 붙는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는 ‘빙나이’로 불리는 음료가 없다. 열풍을 이끈 브랜드들도 랴오닝성 선양과 랴오양에서 출발한 중국 브랜드다. “서울에선 들어본 적 없다”는 중국 언론 보도 중국 언론은 일찍부터 이 모순을 짚었다. 음료 전문 매체 ≪카먼(咖门)≫은 6월 27일 기사에서 이 유행이 베이징이나 상하이가 아닌 동북 3성에서 먼저 달아올랐다고 보도하며, 한국에 사는 중국 누리꾼들이 서울에서 그런 음료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반응한다고 전했다. 8월에는 외식 업계 매체 ≪찬인라오반네이찬(餐饮老板内参)≫이, 10월 15일에는 위챗 공식 계정 ‘후이신웨두(慧心悦读)’가 같은 이야기를 다시 다뤘다. ‘후이신웨두’는 한국에서 생활하거나 여행한 중국 누리꾼들이 서울에서 과일우유와 셰이크, 빙수는 찾았어도 ‘빙나이’를 내건 가게는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 기사들의 제목마다 ‘한국 빙나이’라는 이름이 그대로 실렸다는 점이다. 진위를 따지는 보도가 오히려 그 이름을 더 멀리 실어 나른 셈이다. 소셜미디어의 파급력도 컸다. ≪훙찬왕(红餐网)≫에 따르면 중국 소셜미디어 샤오홍슈(小红书)의 ‘빙나이’ 주제는 조회 수 1,600만 회를 넘었고, 더우인(抖音)의 관련 영상 재생 수는 1억 회를 넘어섰다. 맛보다 ‘화면’으로 읽히는 한국 음료 자체는 단순하다. 치즈폼과 타피오카 펄을 차 우린 물에 겹겹이 올리던 기존 밀크티와 달리 과일과 우유, 얼음만 담았다. ‘후이신웨두’는 이런 ‘덜어 냄’이 가볍고 부담 없는 음료를 찾는 젊은 층의 취향과 맞아떨어졌다고 분석했다. 이 음료를 ‘한국’으로 만드는 것은 맛이 아니라 연한 색감과 사진 찍기 좋은 매장 인테리어, 한글 로고 같은 시각 요소다. ≪카먼≫의 연구개발 책임자 청야오(程瑶)는 “‘한국 빙나이’에는 사실 뚜렷한 품목 경계가 없다”며, 색 배합과 한국풍 포장이 함께 만든 새로운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중국 젊은 층이 즐겨 쓰는 ‘한시(韩系)’라는 말과 맞닿아 있다. 본래 ‘한국 계열’이라는 뜻이지만, 지금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옷차림과 화장, 사진 분위기를 가리키는 스타일 이름으로 쓰인다. 여기서 ‘한국’은 원산지라기보다 하나의 장르다. ‘한극동관(韩剧同款)’이라는 문구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본래 드라마 주인공이 입거나 쓴 물건과 같은 상품을 뜻하는 말인데, 한국에 없는 음료에 붙으면서 특정 장면이 아닌 ‘한국 드라마 같은 분위기’ 전체를 가리키게 됐다.
컵 위의 한글 역시 뜻을 전하는 글자라기보다 분위기를 만드는 디자인이다. 한국의 빵집이 프랑스어 간판을, 선술집이 일본어 문구를 내거는 것과 같은 이치다. 간판 속 외국어는 원산지 증명서가 아니라 분위기를 고르는 장치다. ‘후이신웨두’는 이 음료가 ‘동북 빙나이’라는 이름을 달았다면 다른 지역 소비자들에게 지역색이 걸림돌이 됐을 것이라고 짚었다. 지역의 이름은 그 지역의 맛으로 좁혀 읽히지만, 이웃 나라의 이름은 어디서나 통하는 새로움, 이국스러움을 선사한다. ‘어머’와 ‘언니’가 간판이 되기까지 브랜드 이름은 이 현상의 문화적 뿌리를 더 분명히 보여준다. 대표 브랜드 ‘öhmo! 어머(哦莫)’를 비롯해 ‘onni(언니)’, ‘Wuyoo(우유)·아이스’ 같은 이름에는 한국어 단어가 한글이나 로마자, 중국어 음차로 들어 있다. 그중 ‘어머’와 ‘언니’는 한국 드라마와 아이돌 팬덤을 거쳐 이미 중국 인터넷 유행어가 된 말이다. ‘哦莫’는 놀랄 때 쓰는 ‘어머’를, ‘欧尼’는 ‘언니’를 중국어 소리로 옮긴 표기로, 중국 누리꾼들에게는 익숙한 일상어다. ‘Wuyoo·아이스’의 ‘Wuyoo’는 우유라는 한국어를 중국어 소리로 옮긴 것이다. 영어가 한국어를 거쳐 중국 브랜드의 이름이 되는, 겹겹의 번역이 컵 하나에 담겨 있다. 이 음료가 빌려 온 것은 한국이라는 나라보다 20여 년간 한류가 중국 대중의 말과 감각에 남긴 흔적인 셈이다. 그렇다고 이 빙나이를 완전한 허구로 볼 일도 아니다. ≪카먼≫은 이 음료가 한국 커피 브랜드들의 저렴한 대용량 과일 셰이크, 빙수를 컵에 담은 컵빙수, 음료를 디저트처럼 꾸미는 한국 카페 메뉴를 재조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동북과 산둥에서 먼저 자리 잡은 배경으로는 이 지역들의 한국 음료 문화에 대한 친숙함을 꼽았다. 실재하는 한국 카페 문화를 현지 감각에 맞게 고쳐 쓴, 일종의 번안이다. 우리에게 남는 질문 ‘한국 빙나이’는 한류의 영향력이 드라마와 노래를 넘어 일상의 말과 색, 글자로까지 스며들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그 ‘한국’을 만들고 퍼뜨리는 주체가 반드시 한국은 아니라는 사실도 드러낸다. 중국 소비자가 만나는 한국은 드라마의 화면과 팬덤의 언어를 거쳐 다시 편집된 한국이다. 문화 교류는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건너가는 일방통행이 아니다. 받아들이는 쪽은 자기 감각에 따라 상대 문화를 고르고, 바꾸고, 새 이름을 붙인다. 한국에 없는 ‘한국 빙나이’는 그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다. 해외에서 한류를 가늠할 때 한국 콘텐츠가 얼마나 소비됐는지와 함께, 현지에서 ‘한국’이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살펴야 하는 이유다.
사진 출처 및 참고자료 - ≪위챗(WeChat)≫ (2026. 06. 27). 单店月收40万,当地“查无此物”的韩国冰奶,正在国内疯狂开店, https://mp.weixin.qq.com/s/-QtQh-pCarjppHtcLik81A - ≪위챗(WeChat)≫ (2026. 06. 27). 东北特产 “韩国冰奶”疯狂开店,有人开始避雷, https://mp.weixin.qq.com/s/vR3Xf-jTBvq4OuLNaVbgQg - ≪위챗(WeChat)≫(2026. 08. 27). 单杯低至7.9元!今夏爆火的冰奶,凭什么席卷茶饮市场?, https://mp.weixin.qq.com/s/bMRQw7YUVCkZpLZWO_X7aA - ≪위챗(WeChat)≫ (2026. 10. 15). 爆火的“韩国冰奶”韩国人都没听过, https://mp.weixin.qq.com/s/LJ7pf5r3KSeMF-Ywlvslsg?scen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