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로컬 애니메이션 <점보(Jumbo)>의 대흥행과 한국 애니메이션의 현지 수용성

 
인도네시아 중견 영화 제작사 피시네마 픽쳐스(Visinema Pictures)가 제작한 전체관람가(SU) 등급 3D 애니메이션 <점보(Jumbo)>가 엄청난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통통한 체형 때문에 친구들에게 '점보'라 불리며 놀림당하는 10살의 고아 주인공 '돈(Don)'이 부모님께 물려받은 동화책을 토대로 동화극을 만들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이야기다. 도중에 헤어진 부모를 찾아 달라는 메리의 유령과 조우하지만 스토리는 유쾌한 텐션을 잃지 않는다. 애니메이션과 함께 OST ’도 큰 인기를 끌었다. 

< 인도네시아 로컬 애니메이션 '점보(Jumbo)' 포스터 - 출처: IMDb >

그 사이 놀랍게 발달한 인도네시아 3D 애니메이션의 수준, 성우와 OST에 참여한 유명 배우와 가수들, 특히 지난 5년간 420명의 로컬 크리에이터들이 참여한 것이 이 애니메이션의 성공 비결이라고 매체들이 입을 모으지만 이런 점들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이 영화가 개봉 7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기 때문이다. 로컬 애니메이션 영화 중 최고 성적을 냈던 2017년 <주키 녀석(Si Juki)>의 64만 2,312영 관객 기록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대도시 외에는 영화관 접근성이 대체로 떨어지는 인도네시아에서 극장 유료 관객 100만 명은 한때 한국의 천만 관객 정도의 의미였다. 물론 실제로 2016년 이후 인도네시아에서도 400만~500만 관객을 넘기는 영화가 심심찮게 나오기 시작했다. 2022년에는 천만 관객 영화도 한 편 나오면서 그 의미가 반감됐지만 지금도 매년 150편 전후 만들어지는 인도네시아 영화들 중 100만 관객을 넘는 영화는 최대 20편 정도다. 애니메이션 100만 관객이란 전인미답의 지경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도 관객 증가세가 꺾이지 않은 <점보>는 관객수 5백만 명을 넘으며 올해 로컬 영화 흥행 1위에 등극하기에 이른다. 지난 2021년에도 우주 소재의 애니메이션 <누사(Nussa)>가 흥행 2위를 차지한 적이 있지만 이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극장들이 장기간 문을 닫고 관객들이 극장 가기를 두려워하던 시절 불과 40여만 명의 관객으로 얻은 순위였다.

< 애니메이션 영화 '주키 녀석(Si Juki)', '누사(Nussa)' - 출처: IMDb >

그런데 <점보>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난 3월 31일 라마단 금식월을 마치며 시작되는 이둘피트리 이슬람 연휴를 기해 개봉한 여러 편의 영화들이 대체로 좋은 흥행 실적을 보였는데 그중 유독 <점보>는 쏟아지는 매체의 관련 보도와 소셜미디어에서의 관람 인증, 후기 등에 힘입어 개봉 한 달이 지난 4월 30일 이미 700만을 넘었다. 800만 관객 고지를 바라보면서도 그 증가세가 여전히 심상치 않은 저력을 보이고 있다.

▣ 인도네시아 로컬 영화 흥행 순위

※출처: 필름 인도네시아(Film Indonesia). 우측 관객수 증가는 나흘 전(4월 27일)과 비교한 수치

위 표에서 1, 2, 4, 5위 영화가 3월 31일 <점보>와 함께 개봉한 영화들이다. 가장 각광받는 호러 장르의 영화 두 편과 로맨스 드라마 한 편의 흥행을 크게 뛰어넘은 <점보>는 전체관람가 등급, 가족이란 키워드, 메리의 유령, 마법 같은 요소가 소셜미디어 반응과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호러 영화 장인 아위 수리야디 감독의 <설탕공장(Pabrik Gula)>은 올해 가장 조명 받는 기대작이었고 그 응분의 위력을 충분히 발휘했지만 <점보>는 이를 아득히 넘어섰다. 

한편 <점보>보다 3주 늦은 4월 18일 수난절 성금요일과 부활절 시즌을 맞아 현지 개봉한 한국 애니메이션 <예수의 생애(King of Kings)>도 나름 선전하고 있다. 물론 <점보>만큼은 아니다. 

3월 26일 영문 제목으로 개봉한 또 다른 한국 애니메이션 <퇴마록(Exorcism Chronicles: The Beginning)>의 경우 인도네시아에 충분히 먹힐 만한 내용이었음에도 현지 최대 상영관 네트워크를 가진 시네마 21(Cinema XXI)이 받아주지 않은 지점에서 이미 큰 흥행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설령 시네마 21이 받아 상영한 한국 영화 중에서도 지난 4월 23일 개봉한 <야당>처럼 일주일도 못돼 스크린에서 내려가는 경우도 있어 반드시 흥행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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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퇴마록(Exorcism Chronicles: The Beginning)', '예수의 생애(The King of Kings)' - 출처: IMDb >

교황 선종과 애도기간에 맞물린 시기적 영향으로 <콩클라베(Conclave)> 같은 영화가 현지에서 재개봉했지만 해당 기간 중 <예수의 생애(The King of Kings)>의 경우 <점보>와 경쟁하면서도 2주 이상 시네마 21을 비롯한 대부분의 상영관 네트워크 스크린에 걸려 있는 것은 이슬람 문화권에서 상영되는 기독교 계통의 영화라는 점에서 이례적인 경우다. 

물론 한국인이 만든 애니메이션에 할리우드 배우들을 성우로 대거 기용해 미국 옷을 입고서 북미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는 것처럼 인도네시아에서도 이러한 점 때문에 시네마 21이 받아 2주 이상 상영하고 있는 동력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에서 수입 영화에 대한 관객수 집계가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이 아쉽지만 한국 영화의 일반적인 현지 상영일수를 이미 넘어선 <예수의 생애>는 나름 적잖은 관객을 들였을 것 같다. 

2023년부터 한국 영화를 받아 상영하기 시작한 시네마 21의 한국 영화 선정 기준은 역시 영화의 국제적 화제성과 등장인물 중 케이팝, K-드라마의 한류 배우들이 등장하느냐는 점인데 그런 측면에서 <퇴마록>처럼 전문 성우들을 기용한 완전한 한국 애니메이션에게는 높은 퀄리티와 흥미로운 스토리라인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상영관, 특히 시네마 21의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음을 새삼 실감한다. 

하지만 일본 만화 극장판이 속속 개봉돼 마니아층을 충실히 끌어들이고 있고,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 있는 한국 웹툰 원작의 <나 혼자 레벨업(Solo Leveling)>도 일본 옷을 입고 인도네시아 팬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인도네시아에서 K-애니메이션의 수용성이 낮은 것은 현지 친밀도가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를 제고하기 위해서는 현지 진출해 한국문화를 홍보하고 있는 관련 기관의 선전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IMDb, https://www.imdb.com/title/tt27433995/, https://www.imdb.com/title/tt10640084/?ref_=fn_all_ttl_1, https://www.imdb.com/title/tt11710090/?ref_=fn_all_ttl_1, https://www.imdb.com/title/tt32341853/, https://www.tix.id/movie/the-king-of-kings/
- 《Orami》 (2025. 4. 10). 7 Alasan Film Animasi Jumbo Sangat Laris, Hingga Meraih 1 Juta Penonton!, https://www.orami.co.id/magazine/alasan-film-animasi-jumbo-sangat-laris
- 《kumparan》 (2025. 4. 10). Film JUMBO Raih 1 Juta Penonton, Ryan Adriandhy Terharu dan Bangga, https://kumparan.com/kumparanhits/film-jumbo-raih-1-juta-penonton-ryan-adriandhy-terharu-dan-bangga-24qHXTG0DNa
- 필름 인도네시아(Film Indonesia), https://filmindonesia.or.id/film/penonton?tahun=2025

통신원 정보

성명 : 배동선[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인도네시아/자카르타 통신원]
약력 : PT. WALALINDO 이사, 작가,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