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 북미 최고 레스토랑 50에 4곳… 뉴욕 최고 셰프도 한국인
한식이 세계 미식계의 중심으로 들어섰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최근 발표된 《북미 베스트 레스토랑 50(North America's 50 Best Restaurants)》에는 한국계 셰프가 이끌거나 한식을 기반으로 한 레스토랑 네 곳이 이름을 올렸다. 뉴욕의 〈아토믹스(Atomix)〉와 〈정식(Jungsik)〉, 샌프란시스코의 〈베누(Benu)〉, 그리고 토론토의 〈멜(Mhel)〉이다. 이는 단순히 한식당 몇 곳이 유명 순위에 오른 것을 넘어, 한식이 북미 미식 문화의 중심부로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임정식 셰프가 이끄는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 <정식>은 흔히 '뉴 코리안(New Korean)' 요리의 선구자로 불린다. 비빔밥, 갈비, 장류 등 한국적인 요소를 프랑스식 파인다이닝 기법과 결합해 한식을 고급 미식의 언어로 번역하며 뉴욕에서 한식이 일본 가이세키(かいせき)나 프랑스 오트 퀴진(haute cuisine)과 경쟁할 수 있다는 인식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박정현 셰프와 엘리아 박 부부가 운영하는 〈아토믹스〉는 2025년 《북미 베스트 레스토랑 50》 전체 1위에 오르며 큰 화제를 모았다. 한국 레스토랑이 이 순위 정상에 오른 것은 〈아토믹스〉가 처음이다. 올해는 7위에 이름을 올렸다. 2018년 문을 연 〈아토믹스〉는 계절 식재료와 발효 문화, 한국 전통 식재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코스 요리로 유명하다. 각 요리에 한국 문화와 식재료의 배경을 설명하는 카드를 제공해 '음식과 스토리텔링의 결합'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으며 미슐랭 2스타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계 셰프 코리 리(Corey Lee)가 운영하는 샌프란시스코의 베누는 현재 미슐랭 3스타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 서부의 대표적인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이다. 한식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지만 한국적 식재료와 기억, 아시아적 정체성을 세계 최고 수준의 요리로 구현하며 《북미 베스트 레스토랑 50》 31위에 이름을 올렸다.
토론토의 〈멜〉은 지영훈, 이승민 셰프가 운영하는 현대 한식 레스토랑으로 최근 캐나다 한식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토론토 미식계에서는 〈김치〉와 장류 등 한국적 식재료와 현대적 플레이팅, 계절 중심 메뉴 구성이 강점으로 꼽힌다.
많은 사람들이 《미슐랭 가이드》와 《50 베스트》를 같은 평가 체계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철학이 다르다. 《미슐랭 가이드》는 익명의 심사원이 음식의 완성도와 일관성을 중심으로 평가한다. 반면 《50 베스트》는 전 세계 미식 전문가들의 투표를 통해 선정되며 음식뿐 아니라 창의성, 영향력, 문화적 의미, 레스토랑 경험 전체를 평가한다. 쉽게 말해 《미슐랭 가이드》가 '얼마나 잘 요리하는가'를 본다면, 《50 베스트》는 '세계 미식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함께 본다. 특히 네 곳 가운데 절반인 두 곳이 뉴욕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은 의미가 크다. 뉴욕은 세계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외식 시장 가운데 하나다.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 등 전통 강국의 요리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도시에서 한식 레스토랑 두 곳이 북미 최고 레스토랑 명단에 포함됐다는 것은 한식이 더 이상 틈새 음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뉴욕에서 한식은 맨해튼 코리아타운을 중심으로 값싸고 푸짐한 이민자 음식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삼겹살'과 '순두부', '냉면'은 사랑받았지만 미식 담론의 중심에 있지는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뉴욕의 한식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아토믹스〉와 〈정식〉은 장과 발효, 계절성, 지역 식재료 등 한국 식문화의 깊이를 현대적인 언어로 재해석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파인다이닝으로 인정받고 있다. 뉴욕의 미식가들은 더 이상 한식을 '한국인이 먹는 음식'으로 보지 않는다. 프랑스 오트 퀴진이나 일본 가이세키처럼 독립된 미식 장르이자 하나의 문화적 경험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미국 외식업계 최고 권위의 상인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 2026(James Beard Awards 2026)》에서도 확인됐다. 지난 6월 시카고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뉴욕 퀸스의 한식 레스토랑 〈메주(Meju)〉를 운영하는 후니 킴(Hooni Kim) 셰프는 〈뉴욕주 최고 셰프상(Best Chef: New York State)〉을 수상했다. 또한 워싱턴 D.C.의 베트남계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문 래빗(Moon Rabbit)〉의 공동 오너이자 페이스트리 셰프인 한국계 셰프 수잔 배(Susan Bae)는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 2026》에서 〈최고 페이스트리 셰프상(Outstanding Pastry Chef or Baker)〉 부문을 수상했다.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는 흔히 '미국 외식업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린다. 특히 후니 킴 셰프의 수상은 한식이 뉴욕 미식계의 변방이 아닌 중심 무대에서 경쟁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북미 베스트 레스토랑 50》에 이름을 올린 〈아토믹스〉, 〈정식〉, 〈베누〉, 〈멜〉과 《제임스 비어드 어워드》 수상자들의 활약은 단순한 개인의 성공을 넘어선다. 이는 한식이 더 이상 아시아 음식의 한 갈래가 아니라 세계 미식계가 주목하는 독립적인 장르로 성장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뉴욕에서 한식이 최고 수준의 미식 경험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음식의 세계화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상징한다. 이제 한식은 '싸고 푸짐한 음식'을 넘어 한국의 역사와 발효 문화, 계절성, 창의성을 담아내는 문화 예술의 한 형태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자료 및 사진 출처 - 《더 월드 50 베스트(The World's 50 Best)》 '아토믹스(Atomix)' 상세 페이지, https://www.theworlds50best.com/restaurants/best-in-the-world/the-list/atomix.html - 《더 월드 50 베스트(The World's 50 Best)》 '베누(Benu)' 상세 페이지,https://www.theworlds50best.com/discovery/Establishments/US/San-Francisco/Benu.html - 《더 월드 50 베스트(The World's 50 Best)》 '멜(Mhel)' 상세 페이지,https://www.theworlds50best.com/discovery/Establishments/Canada/Toronto/Mhel.html - 《미슐랭 가이드(Michelin Guide)》 '정식(Jungsik)' 상세 페이지,https://guide.michelin.com/en/new-york-state/new-york/restaurant/jungsik-new-york - 《더 월드 50 베스트(The World's 50 Best)》 (2025. 11. 04). Storytelling, strength and seaweed: how Susan Bae became North America’s most exciting pastry chef, https://www.theworlds50best.com/stories/News/susan-bae-interview-north-americas-best-pastry-chef-2025.html - 《베스트 코리아(Best of Korea)》 (2026. 06. 16). First a Michelin Star, Now a James Beard Award: Hooni Kim is Still Just Cooking Dinner, https://bestofkorea.com/first-a-michelin-star-now-a-james-beard-award-hooni-kim-is-still-just-cooking-dinner/ - 《베이크 매거진(Bake Magazine)》 (2026. 06. 16). 'ames Beard Foundation Awards 2026 Outstanding Bakery and Pastry Chef/Baker, https://www.bakemag.com/articles/21688-james-beard-foundation-awards-2026-outstanding-bakery-and-pastry-chef-ba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