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내내 무더운 날씨가 이어지는 말레이시아에서는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과 달리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 그러나 길거리와 시장, 쇼핑몰 곳곳에서 두리안 향이 퍼지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아, 이제 6월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6월은 말레이시아에서 본격적인 두리안의 계절이 시작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과일의 왕(King of Fruits)'으로 알려진 두리안은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특산 과일이다. 흔히 두리안 하면 '무상킹(Musang King)'만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품종이 매우 다양하며 맛과 향, 수확 시기 또한 지역마다 다르다. 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가 위치한 말레이반도 중부와 조호바루(Johor Bahru)가 있는 남부 지역은 7~8월에 수확이 집중되는 반면, 페낭을 비롯한 북부 지역은 5월 말부터 6월까지가 성수기로 꼽힌다. 그래서 이 시기가 되면 페낭의 두리안 농장과 관광업체들은 두리안 시식 및 체험 투어를 운영하며 관광객 유치에 나선다. 페낭주 관광기관은 '페낭 두리안 여행 패키지(Penang Travel Deals – Durian Series)'으로 인도네시아와 중국 등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고, 쇼핑몰 등 관광지에는 두리안을 주제로 한 다양한 행사가 열리기 시작한다.
< 외국인 관광객 대상의 페낭 두리안 투어 포스터 – 출처: 말레이시아 틱톡 사용자 계정(@sigitpurwanto793) >
페낭의 대표 쇼핑몰인 거니 플라자(Gurney Plaza)는 6월 11일부터 21일까지 <두리안-라 축제(Durian-la Festival)>를 개최했다. 행사에서는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고급 두리안 품종인 무상킹과 블랙쏜(Black Thorn)을 비롯해 페낭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품종의 두리안을 맛볼 수 있는 시식 행사가 진행됐다. 또한 지역 소규모 업체들도 참여해 다양한 음식을 판매했다. 행사에 참가한 스티븐(Steven) 씨는 "문화행사가 열리면 많은 방문객이 모이기 때문에 음식 판매업체들이 행사 부스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행사는 두리안이라는 주제가 있는 만큼 각 업체가 자신들의 음식에 두리안을 접목해 새로운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는 것이 기존 행사와 다른 점”이라고 설명했다.
통신원이 현장을 둘러본 결과, 커피와 디저트, 도시락 등 각 분야의 전문 업체들이 두리안이라는 공통된 주제 아래 자신들의 대표 메뉴에 두리안을 접목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었다. 예를 들어 디저트 매장은 두리안이 들어간 찹쌀떡과 두리안 와플을 판매하거나 중국식 소시지 업체는 두리안 시즈닝을 뿌린 신메뉴를 선보였다. 서로 다른 음식들이 두리안을 매개로 새롭게 재해석되는 모습은 행사의 다양성을 더했으며, 이번 축제가 두리안을 중심으로 한 문화행사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했다. 현지 소셜미디어에서도 "두리안이 너무 좋다(@barryboi)", "두리안 밥이 내 최애다(@siawweiool)" 등 이번 축제에 대한 좋은 반응이 이어졌다.
두리안은 과거에는 그저 페낭에서 특정 계절에 맛볼 수 있는 과일이었을 뿐 지금처럼 하나의 브랜드나 축제의 중심 소재로 활용되지는 않았다. 지역 특산물 하나를 중심으로 대규모 축제가 열리는 사례를 보며 경제성장과 중산층 확대, 그리고 관광객 증가가 맞물리면서 소비자들이 단순히 두리안을 구매하는 것을 넘어 지역의 정체성과 관광을 연결하는 문화 콘텐츠이자 하나의 지역 브랜드(IP)로 기능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러한 지역 브랜드는 관련 주체들이 함께 모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플랫폼(platform) 역할도 하고 있었다. 마치 케이팝 팝업스토어(pop-up store)가 열리면 팬들과 관련 기업, 주변 상권까지 함께 활기를 띠는 것처럼, 두리안 축제 역시 방문객과 상인, 지역사회 모두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공간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그 혜택을 체감하는 것은 행사장을 찾은 방문객들이었다. 행사장을 함께 찾은 한국인 교민 역시 높은 만족감을 나타냈다. 그는 "페낭에 두리안이 유명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품종이 다양하고, 이를 활용한 음식과 문화행사가 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게 됐다"라며 "자녀에게 현지 문화를 소개하고 싶을 때 어디를 안내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이곳은 먹거리와 분위기를 함께 경험할 수 있어 추천하기 좋은 장소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행사장 곳곳에서는 가족 단위 방문객과 관광객들이 다양한 품종의 두리안을 비교하며 시식하거나, 두리안을 활용한 음식을 맛본 뒤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단순히 두리안을 판매하는 시장이 아니라, 지역의 대표 특산물을 중심으로 시민들과 외국인들이 모두 모여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는 축제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 두리안을 접목한 다양한 음식 - 출처: 통신원 촬영 >
< 두리안-라 축제에 참여한 지역 농가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처럼 축제의 중심이 된 두리안은 오늘날 말레이시아를 대표하는 과일이자 페낭을 상징하는 지역 특산물이다. 국제 무역 및 경제 데이터 플랫폼인 오이시(OEC, Observatory of Economic Complexity)에 따르면 2024년 기준 말레이시아는 태국과 베트남에 이어 세계 3위 두리안 수출국이다. 수출 규모는 두 국가에 비해 크지 않지만 무상킹과 블랙쏜 등 고급 품종을 중심으로 프리미엄 시장을 공략하며 차별화된 경쟁력을 구축하고 있다.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BBC)》에 따르면 동남아시아에서 일반 두리안은 개당 평균 2달러(한화 약 3천 원) 미만에 판매되지만, 무상킹과 같은 말레이시아산 프리미엄 두리안은 작황과 품질에 따라 개당 14달러(한화 약 2만 1천 원)에서 최대 100달러(한화 약 15만 원)까지 거래된다. 이 때문에 말레이시아산 프리미엄 두리안은 ‘두리안계의 에르메스(Hermès of durian)’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말레이시아는 이러한 고급 품종을 중심으로 수출을 확대하며 세계 두리안 시장에서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더 선(The Sun)》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두리안 수출액은 2018년 약 3억 2120만 링깃(한화 약 1,203억 원)에서 2023년 15억 링깃(한화 약 5,617억 원) 이상으로 증가했다.
페낭은 말레이시아 내에서도 특별한 두리안 생산지로 꼽힌다. 말레이시아에서 유일하게 섬 지역에서 대규모 두리안 재배가 이뤄지는 곳이며, 무상킹과 함께 최고급 품종으로 평가받는 블랙쏜의 원산지이기 때문이다. 또한 페낭주 관광부(Penang Global Tourism)에 따르면 페낭은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규모 두리안 재배 지역으로 1950년대 초부터 본격적인 농장 개발이 이뤄졌다. 오랜 재배 역사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다양한 품종이 생산되고 있으며, 페낭산 두리안 소개 사이트 두리안 페낭(Durian Penang)에 따르면 블랙쏜을 포함해 74종에 달하는 두리안이 재배되고 있다. 그래서 페낭은 세계 두리안 애호가들의 관심을 받는 지역으로도 알려져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출신 두리안 애호가이자 작가인 린지 가식(Landsay Gasik)이 있다. 그는 페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 주요 두리안 산지를 직접 방문해 정보를 정리한 두리안 지도를 제작했으며, 2018년에는 페낭의 두리안 농장과 품종 정보를 소개한 『두리안 여행자의 페낭 가이드북(The Durian Tourist’s Guide to Penang)』을 출간했다.
< 말레이시아 두리안 지도 – 출처: '두리안의 해' 홈페이지 >
이처럼 두리안이 지역사회에서 갖는 의미와 파급효과를 고려할 때, 두리안은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문화교류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소재가 될 수 있다. 말레이시아는 국가 규모가 크고 지역마다 대표 문화상품과 관광자원이 뚜렷하다는 점에서 지역성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 따라서 두리안 수확철인 6월의 페낭에서는 두리안을 활용한 한식 만들기 체험이나 지역 식문화를 접목한 워크숍, 지역 농가와 한국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 등을 기획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번 <두리안-라 축제>는 방문객을 위한 행사를 넘어 지역 농가와 소상공인이 함께 참여하는 지역 문화행사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행사장에는 두리안을 활용한 다양한 음식 부스가 마련됐으며, 그 외에도 마그네틱 만들기 워크숍과 음악 공연 등 문화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됐다. 이는 한국이 별도의 행사를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지역 문화행사에 지역민들이 함께 참여하는 방식의 문화교류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지역 행사에 한식 업체들이 참여해 두리안을 활용한 메뉴를 선보이는 것만이 아니라 현지 업체들이 두리안을 활용한 한식을 선보이거나 말레이시아 시민들을 대상으로 두리안 퓨전 한식 경연대회를 펼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이미 말레이시아 사회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예를 들어 팔고춧가루와 새우젓 등 한국식 김치 재료에 말레이시아 전통 발효 새우젓인 친찰록(Cincalok)을 더한 두리안 김치부터 두리안 초밥, 두리안 라멘, 두리안 빙수 등이 소셜미디어에 확산되며 화제를 모은 바 있다.
< 두리안 김치를 선보여 화제를 모은 영상 – 출처: '오빠 K' 틱톡 계정(@oppa_k18) >
< 말레이시아에서 판매하는 두리안 라멘 – 출처: 말레이시아 인스타그램 사용자 계정(@menyashishido.bland) >
< 말레이시아와 일본을 결합한 두리안 초밥 – 출처: 말레이시아 인스타그램 사용자 계정(@aurevoirdarling) >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두리안-라 축제>는 앞으로 한국이 말레이시아에서 문화교류를 추진할 때 참고할 수 있는 중요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문화교류는 지역 농가와 소상공인, 방문객이 함께 참여하는 지역 문화생태계 속에서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문화교류는 단순히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지 문화와의 만남 속에서 새로운 문화적 가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6월의 페낭 <두리안-라 축제>는 이러한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다양한 지역 행사와 문화적 특성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지 사회와 함께할 때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문화교류는 더욱 의미 있고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sigitpurwanto793 틱톡 계정(@sigitpurwanto793), https://www.tiktok.com/@sigitpurwanto793/photo/7646970965108198674
- 《더 스트레이츠 타임스(The Straits Times)》 (2026. 05. 01). Penang offers all-in-one durian holidays,
https://www.straitstimes.com/asia/se-asia/penang-offers-all-in-one-durian-holidays
- 《비비시(BBC)》 (2026. 01. 11). 'Hermès of durian': The luxury fruit cashing in on China's billion-dollar appetite,
https://www.bbc.com/news/articles/cz7ndzw28v4o
- 《톱 프루츠(TopFruits)》 (2025. 10. 31). Why Does Durian Season Affect Prices? Understanding Supply and Demand,
https://topfruits.com.my/why-does-durian-season-affect-prices/
- 《더 스타(The Star)》 (2025. 10. 30). Global appetite for Malaysian durian grows export, fruit planting projects,
https://www.thestar.com.my/news/nation/2025/10/30/global-appetite-for-malaysian-durian-grows-export-fruit-planting-projects
- 《더 선(The Sun)》 (2025. 07. 26). Malaysia durian exports to surpass RM1.5 billion in 2025,
https://thesun.my/news/malaysia-news/malaysia-durian-exports-to-surpass-rm15-billion-in-2025-df14551417/
- 《더 스마트 로컬(The Smart Local)》 (2024. 10. 11).
8 Bizarre Durian Food Combinations You Have To Try In M’sia Like Durian Pizza & Durian Ramen,
https://thesmartlocal.my/bizarre-durian-food/
- 《더 스타(The Star)》 (2018. 07. 16). American publishes book on Penang’s durians,
https://www.thestar.com.my/news/nation/2018/07/16/american-publishes-book-on-penangs-durians/
- 두리안의 해(Year of The Durian) (2018. 7. 6).
The Ultimate George Town Durian Hop Guide | Penang, Malaysia,
https://www.yearofthedurian.com/2018/07/ultimate-george-town-penang-durian-hop-guide.html#map,
https://www.yearofthedurian.com/durian-map-of-malaysia-links,
https://www.yearofthedurian.com/about
- 오이시(OEC), https://oec.world/en/profile/hs/fresh-durians?selector1013id=2023
- 두리안 페낭, https://durianpenang.com/varieties?page=1&view=table
- 페낭주 관광부 인스타그램 계정(@penang.experience), https://www.instagram.com/penang.experience/
- 오빠 K 틱톡 계정(@oppa_k18), https://www.tiktok.com/@oppa_k18, https://www.tiktok.com/@oppa_k18/video/7285700147726535937
- 말레이시아 인스타그램 사용자 계정(@menyashishido.bland), https://www.instagram.com/menyashishido.bland
- 말레이시아 인스타그램 사용자 계정(@aurevoirdarling),https://www.instagram.com/aurevoirdarl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