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내에서 한국 드라마(K-드라마)의 위상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과거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이제는 필리핀 안방극장에서 주류 콘텐츠로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를 보여주듯 2022년 징고이 에스트라다(Jinggoy Estrada) 상원의원이 K-드라마 금지 법안을 거론했다가 언론과 시청자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사고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당시 필리핀 내 한국 드라마에 대한 높은 인기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였다. 논란이 커지자 그는 다음 날 “진짜로 금지 법안을 만들 생각은 전혀 없다”며, 자국 엔터테인먼트 산업 침체에 대한 답답함에서 나온 발언이었다고 공식 해명했다. 필리핀대학교(UP) 부교수이자 한국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인 에릭 파울로 카피스트라노(Eric Paulo Capistrano) 교수는 세미나에서 K-드라마가 필리핀 콘텐츠 시장을 매료시킨 핵심 요인으로 ‘기존 필리핀 드라마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신선하고 파격적인 소재’를 꼽았다. 대표적인 사례로 정신건강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사이코지만 괜찮아>와 병원을 배경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따뜻하게 풀어낸 <슬기로운 의사생활>을 언급하며, 이러한 차별화된 소재가 현지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고 분석했다. 카피스트라노 교수는 한국 콘텐츠 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소재의 제약 없이 다양한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견고한 생태계(robust ecosystem)’를 꼽았다. 그는 대형 자본이 투입된 드라마가 지상파 방송에만 머물지 않고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플랫폼으로 유연하게 확장되는 유통 구조와, 웹툰 원작 드라마 <편의점 샛별이>가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며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콘텐츠 생태계에 주목했다. 이는 플랫폼 다변화를 통해 드라마 제작·유통 구조에 유연성을 확보한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카피스트라노 교수는 필리핀 내 소녀시대 팬클럽 '소시파이드 필리핀(Soshified Philippines)'의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는 만큼, 케이팝 팬덤의 영향력도 예리하게 분석했다. 그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오프라인 콘서트가 중단되자 케이팝 팬덤의 활발한 디지털 활동이 자연스럽게 K-드라마 시청층으로 이어졌으며, 대형 기획사들이 아이돌 출신 배우를 적극 기용하면서 강력한 팬덤을 기반으로 한 시청층 역시 드라마 생태계로 유입됐다고 설명했다. 제작 방식의 구조적 차이 역시 K-드라마의 주요 인기 요인으로 제시됐다. 카피스트라노 교수는 시청률에 따라 개연성 없이 방영 기간을 연장하는 현지 드라마의 제작 관행이 콘텐츠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 드라마는 사전에 기획된 회차 안에서 완성도 높은 서사를 유지하며 시청자들에게 높은 신뢰감과 몰입감을 제공한다고 분석했다. 이처럼 신선한 소재와 유연한 유통망, 완성도 높은 제작 시스템이 유기적으로 맞물린 한국의 콘텐츠 생태계는 필리핀 시장에서 K-드라마의 꾸준한 흥행을 이끄는 핵심 경쟁력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구조적 강점을 바탕으로 한 K-드라마의 위상은 최근 필리핀 시장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2026년 5월 필리핀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은 한국 드라마는 단연 <멋진 신세계>였다. 공개 직후 필리핀 넷플릭스 TV 쇼 부문에서 현지 인기 작품 <더 마스터 커터(The Master Cutter)>에 이어 2위에 오르며 큰 인기를 끌었다. 특히 <멋진 신세계>의 OST 제작에는 «제이티비씨(JTBC)» 서바이벌 프로그램 <싱어게인 4> 준우승자인 그윈 도라도(Gwyn Dorado)가 참여해 현지의 관심을 더욱 높였다. 필리핀 언론들은 팬데믹 기간 한국 드라마 OST를 들으며 가수의 꿈을 키운 필리핀 소녀가 한국 드라마의 삽입곡을 부르게 됐다는 사연을 집중 조명했으며, 현지 시청자들도 이에 큰 관심을 보이며 작품을 적극적으로 시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쟁쟁한 출품작들이 반짝인 한국인 기획 쇼츠 영화제
이어지는 6월과 7월에도 필리핀 OTT 시장에서는 한국 드라마들이 잇달아 상위권에 오르며 K-드라마의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네이버 웹툰을 원작으로 한 <김부장>은 필리핀 넷플릭스에서 1위를 유지하며 소지섭의 강렬한 액션과 묵직한 부성애를 중심으로 한 서사로 현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학교 폭력 등 무거운 사회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참교육> 역시 김무열의 강렬한 연기와 통쾌한 전개를 앞세워 장기간 순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최민식과 최현욱이 출연한 숨 막히는 심리 스릴러 <맨 끝줄 소년>도 높은 몰입감을 바탕으로 입소문을 타며 현재 필리핀 넷플릭스 2위에 올라 있다. 이처럼 최근 필리핀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 드라마들은 앞서 언급한 '웹툰 기반의 유연한 실사화'와 '장르적 한계를 뛰어넘는 신선한 서사'가 현지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다양한 원천 콘텐츠를 활용한 제작 방식과 완성도 높은 스토리텔링이 필리핀 시청자들의 관심을 꾸준히 이끌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 드라마는 이제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필리핀의 주류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또한 필리핀 내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단순한 콘텐츠 소비를 넘어 양국 간 문화 교류와 협력으로도 확장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필리핀 아티스트가 한국 드라마 OST에 참여한 사례는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앞으로도 양국 문화산업 간 다양한 협업이 이어진다면 한국 드라마를 매개로 한 문화 교류 역시 한층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원뉴스닷피에이치(OneNews.PH)》 (2020.09.28). 'Korea Landed On You’: Korean Dramas Become Part Of More Filipinos’ ‘Digital Diet’ Amid The Pandemic, https://www.onenews.ph/articles/korea-landed-on-you-korean-dramas-become-part-of-more-filipinos-digital-diet-amid-the-pandemic#google_vignette - 《지엠에이 네트워크(GMA Network)》 (2022.10.19). Jinggoy Estrada: Idea to ban Korean dramas, foreign-made shows stems from frustration, https://www.gmanetwork.com/news/topstories/nation/848544/jinggoy-estrada-idea-to-ban-korean-dramas-foreign-made-shows-stems-from-frustration/story/ - 《인콰이어러(Inquirer)》 (2022.10.20). Don’t blame K-drama, https://opinion.inquirer.net/158016/dont-blame-k-drama - 《더 포스트 피에이치(The Post PH)》 (2025.03.10). FIRST LOOK: Netflix K-drama ‘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 is a gorgeous, thoughtful series on the challenges of womanhood, https://thepost.ph/arts-culture/streaming/netflix-when-life-gives-you-tangerines/ - 《잘로라 필리핀(ZALORA Philippines)》 (2025.03.12). Meet the Moms of When Life Gives You Tangerines—Who’s the Best?, https://www.zalora.com.ph/blog/lifestyle/womens-month-lessons-from-when-life-gives-you-tangerines/ - 《에이비에스-씨비엔(ABS-CBN)》 (2025.10.01). Is Im Yoon-ah open to doing a season 2 of 'Bon Appétit, Your Majesty'?, https://www.abs-cbn.com/entertainment/showbiz/movies-series/2025/10/1/is-im-yoon-ah-open-to-doing-a-season-2-of-bon-app-tit-your-majesty-1350 - 《에이비에스-씨비엔(ABS-CBN)》 (2025.11.24). Lee Chae-min on first PH fan meeting: 'It's beyond my expectations', https://www.abs-cbn.com/entertainment/showbiz/celebrities/2025/11/24/lee-chae-min-on-first-ph-fan-meeting-it-s-beyond-my-expectations-1609 - 《에이비에스-씨비엔(ABS-CBN)》 (2026.05.24). Gwyn Dorado sings the OST for K-Drama ‘My Royal Nemesis’ earning praise from fans worldwide, https://www.abs-cbn.com/entertainment/showbiz/movies-series/2026/5/24/gwyn-dorado-sings-the-ost-for-k-drama-my-royal-nemesis-earning-praise-from-fans-worldwide-1443 - 《필스타(Philstar)》 (2026.05.24). Filipina singer Gwyn Dorado sings OST of K-drama ‘My Royal Nemesis’, Filipina singer Gwyn Dorado sings OST of K-drama ‘My Royal Nemesis’, https://www.philstar.com/entertainment/music/2026/05/24/2530198/filipina-singer-gwyn-dorado-sings-ost-k-drama-my-royal-nemesis - 《인콰이어러(Inquirer)》 (2026.05.24). ‘Sing Again 4’ alum Gwyn Dorado sings OST for Netflix’s ‘My Royal Nemesis’, https://entertainment.inquirer.net/671023/sing-again-4-alum-gwyn-dorado-sings-ost-for-netflixs-my-royal-nemesis - 《태틀러 아시아(Tatler Asia)》 (2026.07.03). The definitive guide to So Ji-sub K-dramas and films, from classics to ‘Agent Kim Reactivated’, https://www.tatlerasia.com/lifestyle/entertainment/so-ji-sub-k-dramas-and-films - 《스타뉴스 코리아(StarNews Korea)》 (2026.07.05). 'Ratings Break 20%': 'Manager Kim' Tops Charts in 20 Countries Overseas, Simultaneous Domestic and International Success [K-EYES], https://www.starnewskorea.com/en/broadcast-drama/2026/07/05/2026070510374311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