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의 유명 전통시장인 보족시장(Bogyoke Market)을 방문하면 금, 루비, 진주, 옥 등 보석으로 된 세공품과 나무 조각상, 전통 의복, 전통 공예품과 관련된 제품들을 많이 판매한다. 그중 입구에 눈에 띄는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바로 미얀마 작가들이 그린 그림들이 판매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림들은 대부분 풍경화가 많고 간혹 미얀마의 주요 유적지나 관광지를 배경으로 한 그림들도 많은데, 일반 관광객들은 그림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지만 미얀마에서의 경험을 간직하고 싶고 일반적이지 않은 기념품을 구매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선택지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림을 좋아하거나 관심 있어 하는 관광객들도 "가격이 저렴하네"라는 말을 하며 그냥 지나치지 않고 몇 작품을 사서 돌돌 말아 통에 담아 가져가는 사람들도 보일 때가 있다.
< 양곤에 위치한 '갤러리 옹마(Gallery Ohmar)'(좌), 전시회 배경(우) – 출처: 통신원 촬영 >
평소에는 미얀마를 바라볼 때 전통 공예, 전통 미술 등에만 관심을 가질 것 같지만, 미얀마의 아름다운 풍경과 불교의 유명 유적지를 배경으로 한 풍경화, 인물화 같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도 많고 서양 예술을 토대로 미얀마 고유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가들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예술계는 공연과 작품활동을 할 수 없어 수많은 예술가들이 예술계를 떠난다는 기사와, 미얀마에 해외 제품 수입이 통제되면서 예술 재료의 가격이 크게 올랐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이 되었다. 언론에서는 전시회가 열리는 곳에 대한 정보도 간혹 올라왔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부족했는지 관람객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 이번에 신선한 주제로 유명 화가 예이 민트(M.P.P. Yei Myint)가 개인전을 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6월 17일부터 7월 12일까지 미얀마 양곤에 위치한 갤러리 옹마(Gallery Ohmar)에서 <반 고흐와 고갱의 바간 방문(Van Gogh and Gauguin Visit to Bagan)>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진행했는데, 직역하면 "반 고흐와 고갱의 바간 방문"이라는 뜻이다. 주제 자체가 전혀 연관성이 없는 프랑스의 두 화가와 미얀마의 세계문화유산 유적지의 만남을 통해 동·서양의 예술 작품으로 승화한다는 의미로 보였다. 갤러리 옹마는 미얀마에서 보기 힘든 현대적인 갤러리 형태로, 멋진 외관 덕분에 전시관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았다. 내부는 해외 갤러리처럼 냉방이 잘 되어 있고 검은 배경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춰 작품이 잘 드러나도록 연출했다. 보통 갤러리에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유명 작가의 작품이어서인지 화가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고 영화배우나 일반인들도 꽤 많이 감상하는 모습이 보였다. 1층 전체에 약 30~40점 정도 되는 다양한 크기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 '반 고흐와 고갱의 바간 방문(Van Gogh and Gauguin Visit to Bagan)' 전시회를 구경하는 사람들(좌, 우) – 출처: 통신원 촬영 >
예이 민트 작가는 1953년생으로 미얀마의 중심지인 양곤과 멀리 떨어진 민잔(Myingyan)에서 태어났으나, 잡지에 실린 여러 작품을 접하면서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또한 만달레이(Mandalay) 미술·조각 학교에 입학해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양곤에서 작품 활동을 할 때 잦은 정전에 촛불을 켜고 그림을 그렸고, 1990년대의 여러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미술 재료를 구하기 어려워 작품 한 편을 완성하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작가는 미얀마 전통 벽화와 서양 현대 회화 양식을 융합하는 것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파고다가 많은 미얀마의 불교 유적지를 소재로 한 작품을 그렸고, 코로나19(COVID-19) 시기에는 코로나19가 미얀마의 주요 도시와 관광지를 덮치는 상황을 주제로 한 작품도 제작했다. 싱가포르, 독일, 핀란드, 일본 등에서 열린 전시회에도 참가했고, 세계 각지의 주요 미술관에도 그의 작품이 전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 전시회에 걸려 있는 작품(좌), 작품 소개 및 판매 팸플릿(우) – 출처: 통신원 촬영 >
이번 <반 고흐와 고갱의 바간 방문> 전시 설명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겼다. "동양의 전통적, 예술적, 문화적 가치를 지닌 고대 문화도시 바간(Bagan)은 문화유산으로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왔다. 마찬가지로 서양 근대 회화 발전의 핵심 인물인 폴 고갱(Paul Gauguin)과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수많은 작품 역시 세계 예술 유산의 일부로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이러한 동양과 서양의 예술적 유산을 현대적인 작품 속에서 하나로 융합한 예술가가 바로 예이 민트(Yei Myint)다."
작가는 대학교에서 힘들게 예술 활동을 하면서 발견한 바간에서 현재도 가족들과 지내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가 바간을 발견한 것은 마치 고갱이 타히티를 발견한 것과도 같았으며, 바간에서 작가는 새로운 예술 작품들을 폭발적으로 창작할 수 있었다. 바간에 정착하기 전부터 반 고흐와 고갱은 이미 그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는데, 만달레이의 미술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 그는 책과 영화를 통해 두 거장의 삶을 접했다. 그는 예술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두 화가를 깊이 존경했으며, 그들의 영향을 자신의 작품 속에 녹여내면서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과 아이디어를 결합해 그들에게 경의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가는 1998년 '반 고흐, 바간을 방문하다(Van Gogh Visits Bagan)' 시리즈의 첫 작품을 제작했다. 이 시리즈는 2009년 태국 치앙마이에서, 그리고 2016년 미얀마 양곤에서 전시되었다. 작가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 이 시리즈는 가장 독창적이고 대중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미얀마는 물론 해외에서도 널리 알려졌다. 이번 <반 고흐와 고갱의 바간 방문> 전시는 반 고흐와 고갱 두 거장의 예술적 영향을 자신의 독창적인 화풍과 본격적으로 결합한 첫 전시인 만큼, 준비와 제작에 5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으며 여러 점의 대형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 제목이 두 거장과 바간을 하나로 연결하듯 작품들 역시 서로 긴밀하게 이어지는 구성으로 전시되었다. 일부 작품은 길이가 30피트(약 9미터)를 넘을 정도의 대작이다. 이처럼 거대한 규모의 작품들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바간의 역사와 반 고흐·고갱의 예술적 유산 자체가 본래 웅장한 규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 전시회에 걸려 있는 작품들(좌, 우) – 출처: 통신원 촬영>
실제로 갤러리에는 수많은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고, 설명과 같이 고갱과 고흐가 바간에서 작업하는 듯한 모습을 그린 그림들과, 미얀마 바간의 파고다들이 그려진 그림들, 여러 불상과 그 옆에서 일상을 즐기는 여인들의 모습, 바간의 배경과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작품이 함께 녹아든 작품, 그리고 태국의 주요 유적지가 엿보이는 작품들 등 다양한 감동을 주는 작품들로 가득했다. 풍경화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피카소의 그림처럼 입체파적인 작품들도 있어 무슨 의도로 그렸는지 온전히 읽히지는 않았지만, 웅장한 모습으로 관람객들을 압도하는 거대한 작품 등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관람객들이 그림을 대충 훑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시원한 갤러리에서 한 작품 앞에 오래 머물며 관람하는 모습이 보였고, 갤러리 내 팸플릿을 비치해 작품 가격이나 작가의 의도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갤러리를 방문한 산 몬(San Mon) 씨는 인터뷰에서 "미얀마에 이런 갤러리가 있는 줄 처음 알았고, 작품 자체가 그동안 미얀마에서 보지 못한 것이었다. 이 화가의 이름은 들어봤고 지인의 추천으로 갤러리에 오게 되었는데 작품 자체가 멋있다. 미얀마 안에서 이런 작품을 그리고 서양의 유명 화가의 작품을 미얀마와 연계해서 그렸다는 것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동남아를 생각하면 고대의 유물, 현대적이기보다는 앤틱하고 과거에 머문 것 같은 느낌이 강하지만, 이런 예술작품을 통해 일반 사람들이 동남아를 바라보는 편견을 지울 수 있었으며 동·서양이 뭉쳐진 다양한 표현을 하는 화가가 미얀마에도 존재한다는 인식을 강하게 남겼다. 이런 전시회가 충분히 홍보되지 못한 점이 아쉽고, 이런 멋진 갤러리를 아직 미얀마 사람들이 잘 모른다는 점도 안타까웠다. 한국에서 오는 사람들이나 미얀마에 거주하는 교민들도 이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를 방문해보는 것이 미얀마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예전에는 한국 화가들이 미얀마를 방문해 미얀마 화가들과 협동 전시회를 열거나, 한국 화가들의 작품만 미얀마에서 걸리기도 했는데 요즘은 이런 부분이 줄어들어 아쉬움이 있다. 이번 전시처럼 동·서양의 작품이 녹아들듯, 한국과 미얀마도 하나의 작품에 녹아들 수 있다면 미얀마 사람들이 한국을 바라보는 예술적 관점도 흥미롭게 변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케이팝, 한국 드라마, 한식 등 한국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미얀마의 배경에 한국의 요소가 들어간 작품이 그려지고 이것이 한국과 미얀마 양국에 소개된다면 한국에서는 미얀마에 대한 관심이, 미얀마 사람들에게는 한국과의 예술적 교류에 대한 자신감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양국 간 문화교류가 필요할 때, 미얀마의 우수한 화가들이 한국의 화가들과 함께 양국의 문화를 알리는 전시회가 양국에서 열릴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갤러리 옹마(Gallery Ohmar) 웹사이트, https://galleryohmar.com/gallery-showca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