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무대에 오른 김애란의 『비행운』, 수록작 「서른」과 한국문학 수용의 새 국면
- 연극 〈서른(三十岁)〉의 상하이 공연과 작가의 8월 방문, 중국 독자들이 한국문학에 묻고 싶었던 것 -
커튼콜에 선 원작자 김애란 2026년 8월 22일, 상하이대극원(上海大剧院) 중극장. 80분짜리 모노드라마가 끝나고 배우 황야오(黄尧) 옆에 한 사람이 더 서 있었다. 이 이야기를 쓴 사람, 한국 작가 김애란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김애란은 황야오에게 자신의 소설책 속표지에 한국어로 감사의 말을 적어 주었다. 황야오는 그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어 중국 소셜미디어 샤오홍슈(小红书)에 올리며 번역을 부탁했고, 댓글창은 곧 독자들의 대화장이 되었다. 연극 〈서른(三十岁)〉은 김애란의 단편 「서른」을 각색한 1인극이다. 원작은 소설집 『비행운』(2012)의 마지막 수록작으로, 중국에서는 2017년 인민문학출판사(人民文学出版社)가 펴낸 『너의 여름은 어떠니(你的夏天还好吗?, 쉐저우(薛舟) 옮김)』에 실려 있다. 소설이 중국어로 옮겨진 지 9년, 한국에서 발표된 지 14년 만에 이 이야기는 중국의 무대 언어로 다시 쓰였다.
왜 「서른」이었을까 김애란의 중국어판 소설집은 여섯 권, 수록 단편은 서른 편이 넘는다. 그중에서 「서른」이 무대에 오른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첫째는 형식이다. 「서른」은 서른 살 주인공이 예전에 자신을 도와준 언니에게 부치는 편지다. 재수생에서 가난한 대학생으로, 심야 편의점 아르바이트에서 다단계 회사로 이어지는 십여 년이 편지 내용에 담긴다. 원작부터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건네는 말로 쓰인 소설이니, 무대에 올리면 그대로 독백이 된다. 인물을 늘리거나 대사를 지어낼 필요가 없이 배우 한 명이 80분 동안 이야기를 끌어간다. 둘째는 내용이다. ≪북경청년보(北京青年报)≫에 따르면, 연출 감독 바오위(鲍宇)는 이 소설을 통틀어 결말이 가장 참혹한 작품이라는 이유로 「서른」을 골랐다고 밝혔다. 프랑스어과에 어렵게 합격한 여학생이 집안이 기울면서 학자금을 갚느라 일자리를 전전하다 다단계에 발을 들이고, 결국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까지 끌어들이게 되는 이야기다. 대도시로 올라온 청년이 평균선에 닿지 못하고 미끄러지는 과정이, 특정 사건의 극적인 반전 없이 일상의 축적만으로 그려진다는 것이 소설을 무대로 이끌었다. 셋째는 제작 조건이다. 이 작품은 대형 제작사의 기획물이 아니다. 하오스광제작(好时光制作)이 만들고, 베이징전영학원 감독과 출신의 바오위가 연출과 각색을 겸했으며, 무대미술은 예일대 드라마스쿨(Yale School of Drama)에서 무대디자인을 전공한 저우이양(周亦扬)이 맡았다. 단편 한 편, 배우 한 명, 80분이라는 조건은 소극장 제작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였다고 전한다. 무대는 그 조건 안에서 소설의 여백을 사물로 채웠다. 저우이양은 흰 테이프로 바닥에 주인공이 지나온 길을 그리고, 대학 복도에서 고시원으로, 다시 회사 숙소로 이어지는 자리마다 종이상자를 쌓아 두었다. 이삿짐에 쓰이는 그 상자들은 살림살이인 동시에 기억을 담아 두는 그릇이다. 배우가 상자를 허물고 다시 쌓아 올리는 동작만으로 장면이 바뀐다. 몇 평 남짓한 방을 몇 번이나 옮겨 다녔으나 끝내 몇 평을 벗어나지 못한 십 년이, 무대 위에서는 상자를 옮기는 일로 압축된다. 배우의 해석도 원작을 넓혔다. 황야오는 언론 인터뷰에서 다단계 전화를 거는 장면의 대사 한 줄을 스스로 고쳤다고 밝혔다. 원작이 “말한다”고 쓴 자리를 “뱉어낸다”로 바꾼 것인데, 그 순간 인물이 하는 말은 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등 떠밀려 입 밖으로 밀려 나오는 말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공연 내내 맨발로 무대에 섰다. 신발이 곧 신분을 규정하는 만큼, 신발을 벗기면 남는 것은 사회적 껍질을 벗은 한 사람뿐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원작에서 언니를 두고 “괄호 안에 갇힌 물음표” 같다고 한 문장을 읽었을 때는, 문장부호 하나로 사람의 처지를 그릴 수 있다는 데 놀랐다고 했다. 왜 상하이였을까 <서른> 공연은 단계적으로 규모를 키웠다. 2026년 5월 16일 선전 안퉈산 공공문화센터(安托山公共文化中心) 음악홀에서 첫 공연을 올렸고, 6월 5일부터 7일까지 상하이화극예술중심(上海话剧艺术中心)에서 네 차례 공연했다. 그리고 8월 22일, 객석 규모가 훨씬 큰 상하이대극원 중극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상하이화극예술중심이 자리한 안푸로(安福路) 일대는 중국에서 소극장 관람 문화가 가장 두터운 구역이다. 소극장에서 반응을 확인한 뒤 대극장으로 옮겨 가는 경로는 중국 소규모 연극 제작이 흔히 택하는 방식이지만, 주목할 것은 한국 문학 원작이라는 사실을 포스터와 극장 공식 소개에 앞세웠다는 점이다. 원작자의 이름과 수상 이력, 작품집 목록이 공연 홍보물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시점도 우연이 아니다. 8월은 상하이도서전(上海书展)이 열리는 달이다. 24일 서점 교류회는 도서전 연계 행사로 공지됐고, 인민문학출판사와 중국 대형 서점 중 하나인 건투서국(建投书局)이 함께 자리를 마련했다. 같은 주에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上海当代艺术博物馆)에서는 김애란의 단편 소설 「칼자국(刀痕)」이 전시 텍스트로 걸려 있었다. 연극과 전시와 출판이 한 도시 안에서 같은 주에 맞물려 개최되었다. 반지하와 고시원, 그리고 “88만원 세대”의 번역 중국 매체가 이 작품을 소개하는 방식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의 사회 용어를 중국의 사회 용어로 바꿔 설명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상하이화극예술중심 공식 계정에 실린 첫 공연 소개 글은 한 절을 할애해 “88만원 세대”를 풀이한다.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난 한국 청년층의 평균 월수입이 88만 원 남짓이었다는 통계를 소개하고,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이들이 겪은 고용 악화를 정리한다. 그리고 한국의 독서실과 고시원이 중국의 재수 교실이나 대학원 입시 교실과 다르지 않다고 썼다. 좁은 공간에 지나치게 높은 농도의 희망을 밀어 넣는다는 점에서 같다는 것이다. 글은 소비력이 사람을 재는 자가 된 시대에는 가난이 돈의 결핍만이 아니라 지속되는 결핍감이 되며, 그것이 〈서른〉이 “한국 이야기”에 머무르지 않는 이유라고 정리했다. 배우 인터뷰에서는 이 치환이 더 직접적이다. 기사는 서울의 반지하에서 베이징의 셋방으로, “88만원 세대”에서 “샤오전주오티자(小镇做题家)”로 이어진다며 동아시아 청년의 성장 경로가 지나치게 닮았다고 썼다.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고, 이상을 품고 대도시로 향했으며, 이십 대의 끝자락에서 노력해도 안 되는 벽에 처음 부딪혔다는 것이다. ‘88만원 세대’와 ’샤오전주오티자’, ’네이쥐안(内卷)’은 생겨난 맥락도 가리키는 대상도 다른 말이다. 그런데 중국의 소개 글과 평문은 이 말들을 나란히 놓는 데 거의 주저하지 않는다. 관객이 이 연극을 이국의 풍경으로 보지 않고 자기 처지를 비추어 보는 거울로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물론, 평가가 호의 일색인 것은 아니다. 한 관객의 관람 후기는 이 작품을 “서른 살의 이야기”라기보다 “빈곤의 십 년”이라 불러야 한다고 쓰면서, 감정의 흐름이 아래로만 향해 평탄하고 갈등과 긴장이 부족하며 전개가 예측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관객을 흔들거나 관객과 부딪치는 순간을 기다렸으나 끝내 오지 않았다고도 적었다. 원작의 절제를 무대가 그대로 옮겼을 때 생기는 문제를 짚은 비평으로, 수용의 온도가 한결같지는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느린 매체인 문학이 무대를 만나니 주목할 점이 생긴다. 우선, 이 사례의 핵심은 ‘시차의 자산화’다. 2012년 한국 원작 소설 『비행운』 발표, 2017년 중국어판 『너의 여름은 어떠니(你的夏天还好吗?)』 출간, 2026년 『비행운』 수록 단편 「서른」 연극 각색까지. ≪계면신문(界面新闻)≫ 문화면 2026년 8월 25일자 기사는 중국 독자 다수가 김애란을 알게 된 계기로 이 2022년 작품집을 꼽았다. 십수 년이 걸린 이 경로는 드라마나 음악 콘텐츠의 확산 속도와 비교하면 대단히 느리다. 그러나 바로 그 느림이 이번 사례에서는 강점으로 작동했다. 한 세대의 독자가 십 년에 걸쳐 쌓인 뒤 무대화가 그 축적을 한 번에 드러내는 장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 자신도 작품의 유행에는 시차가 있고 그것이 문학이라는 매체의 특성이라고 말했다. 한국문학의 해외 진출을 평가할 때 출간 시점의 반응만으로 성패를 판단하는 관행이 재고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작품 내용 속 사회 용어가 적확하게 번역되었다. 중국 매체는 ‘88만원 세대’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네이쥐안’, ’샤오전주오티자’로 바꿔 설명했다. 이는 한국 콘텐츠가 이국의 이야기로 소비되는 단계를 지나 자국 사회를 설명하는 도구로 쓰이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한국 드라마(K-drama)가 장르적 매력으로 중국에 제일 처음 확산된 매개체였다면, 한국문학은 사회 경험의 등가물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 독자들은 원작자 김애란 작가를 앞에 두고 무엇을 물었을까. 연극 무대 커튼콜 다음 날부터 이틀에 걸쳐 열린 두 행사가 그 답을 보여준다. 8월 23일, 미술관에서 김애란 작가에게 ‘가장자리’를 묻다 ≪계면신문≫ 문화면 기사에 따르면 이번 방중은 2019년 이후 처음이며, 공개 일정 세 개가 모두 상하이의 서로 다른 문예 현장과 맞물려 있었다. 8월 22일 연극 〈서른〉 커튼콜, 8월 23일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Power Station of Art, PSA) 특별대담, 8월 24일 황푸강(黄浦江) 변에 자리한 건투서국 서점에서의 독자 교류회다. 작가는 연극 무대 성료에 대한 감사와, 오래 이어져 온 중국 독자들의 관심에 힘입어 미술관과 서점에서 열린 행사에서도 독자들과 함께했다. 통신원은 모든 행사에 참가해 현장 열기를 느낄 수 있었지만, 두 행사는 모두 언론 비공개로 진행됐고 현장 촬영과 녹음도 금지됐다. 따라서 아래에 정리한 내용은 통신원의 현장 기록이 아니라, 행사 이후 계면신문 문화면 기사와 참석자들이 공개한 범위 안에서 정리해 옮긴 것이다. 주최 측은 교류회의 전반적인 내용을 추후 공식 계정에 게재했고, 행사 전후로 소셜미디어에는 ‘#金爱烂’ ‘#金爱烂PSA’ 등의 해시태그와 함께 대담 내용이 독자들에 의해 폭넓게 공유되었다. 23일 상하이당대예술박물관 대담은 전시 ‘가장자리에서부터 수집하기(从边缘开始收集)’가 김애란의 단편 「칼자국」을 전시 텍스트로 사용한 것을 계기로 마련됐다. 소설집 『침이 고인다』(2007)에 실린 이 작품은 전시장 벽면에 전문이 조판되어 걸렸고, 작가는 중국 작가 장이웨이(张怡微)와 마주 앉았다.
대담의 화두는 전시 주제어인 ‘가장자리’였다. 김애란은 이 말을 무겁게 정의하는 대신, 자신이 저도 모르게 이끌려 관심을 두게 되는 사람과 일이라고 답했다. 소설을 쓰며 익힌 중국어 문장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여기서 먼가요”를 들며, 자기 위치를 계속 되묻는 사람이 곧 가장자리에 선 사람이라고도 했다. ≪계면신문≫ 문화면이 8월 25일 전한 이날의 비유 하나가 특히 널리 인용됐다. 뉴스와 다큐멘터리가 그물로 건져 올린 물고기라면, 연극과 미술과 문학이 다루는 것은 그물 사이로 빠져나간 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기 세대가 “88만원 세대”로 불린 일을 두고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충분하지도 않다고 했고, 대개 문학이 하는 일은 보통명사를 고유명사로 바꾸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편집자를 ’편집자’가 아니라 이름을 가진 한 사람으로 기억하려 한다는 이야기였다. 같은 발언은 행사에 참석한 독자가 위챗 계정 ’샤샤의 도서전·연극 공유(夏夏的书展剧分享)’에 올린 대담 정리 글에도 실려 있다. 무대 위에서 배우가 한국의 사회 용어를 중국 관객의 것으로 옮겼다면, 작가는 그 사회 용어 자체가 한 사람을 담아내기에 늘 모자란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한편, 같은 정리 글에는 전시 큐레이터 첸멍니(钱梦妮)가 「칼자국」을 전시 내용으로 고른 이유를 밝힌 대목도 있다. 이 소설이 전시에서 유일한 외국 작가의 작품인데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는 것이다. 소설 속 음식이 하나같이 서민적이고 구하기 쉬운 것인데도 중국 독자에게도 강한 공감을 일으켰기 때문이며, 그는 그것을 동아시아 경험의 공유라고 표현했다. 8월 24일, 서점에서 중국 독자들이 들고 온 이야기 마지막 날 서점에서 열린 독자 교류회는 성격이 달랐다. 한 독자는 국경을 넘는 여성 독자들의 공감이 동아시아가 어떤 여성 성장 각본을 공유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삼십 대라는 인생 단계가 비슷하기 때문인지를 물었다. 다른 독자는 상실을 성장으로 쓰는 일이 그 자체로 보이지 않는 압력이 아니냐고 물었다. 열네 살에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들어갔던 경험을 꺼낸 독자도 있었고, 건강의 제약을 안고 살아온 처지에서 견딤과 순응을 어떻게 구분해야 하느냐고 물은 독자도 있었다. 김애란의 답은 대체로 해결책이 아니라 허용에 가까웠다. 그는 상실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할 수도 있다고 인정하면서, 희망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독자를 대신해 희망을 규정하는 일이 독자가 스스로 상실을 감당할 힘을 약하게 만들까 걱정한다고 말했다. 극복에 관한 질문에는 극복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답한 뒤, 극복은 한 사람이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억지로 쥐여 주는 희망이 때로 잔인한 위로가 된다는 말도 이 자리에서 나왔다. 문학 자체에 관한 답도 있었다. 그는 슬픔에 보편적인 몫이 있는가 하면 특정한 역사와 처지 위에서만 성립하는 몫도 있다고 했고, 문화 사이에 놓인 이해의 경계선이야말로 문학의 겸손이라고 표현했다. 실시간 번역 서비스가 더 빠르고 매끄럽게 소통할 수 있다는 환상을 주지만, 문학은 타인을 이해하도록 도우면서 동시에 그 이해가 언제나 한계를 갖는다는 것을 일깨운다는 것이다. 이 문장은 행사 이후 공개된 정리 글의 제목으로도 쓰였다. 이 문장은 중국 독자가 행사 참관 후기를 공유한 글 <김애란: 문학은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도록 돕고, 동시에 우리의 이해가 언제나 한계를 갖는다는 것을 일깨운다(金爱烂:文学帮助我们理解他人,也提醒我们理解始终有限)>의 제목으로도 쓰였다. 독자층이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한 독자는 한강과 황정은, 김혜진, 최은영 작가를 나란히 거론하며 한국 여성문학의 세대 변화를 물었고, 서점에서 보니 한국 소설의 독자는 여성 독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 같다고도 덧붙였다. 현장에는 작품을 원문으로 읽으려고 오래 한국어를 공부했다는 독자가 여럿이었고, 아직 중국어판이 나오지 않은 단편의 한국어 제목을 그대로 부르며 질문한 독자도 있었다. 김애란은 이 흐름 속에서 자신을 ‘중간 세대의 작가’라고 규정했다. 한국의 여성문학이 한동안 비교적 집중된 주제로 다뤄지다가 시대와 개인에 따라 갈라져 나갔다며, 큰 강이 여러 지류로 나뉘어 저마다의 개성을 갖게 된 과정에 비유했다. 독자들이 듣고자 한 것, 작가가 들려준 것 이틀 동안 오간 질문을 늘어놓고 보면 한 가지가 분명해진다. 중국 독자들이 김애란에게 청한 것은 작품 속 한국 사회에 대한 설명이 아니었다. 한국문학을 소개하는 자리라면 으레 나올 법한 질문, 그러니까 한국의 출판 시장이나 문단 제도, 작품의 사회적 배경을 묻는 질문은 거의 없었다. 대신 독자들은 자기 이야기를 들고 왔다. 거절하지 못했던 순간, 아버지의 병실, 노력해도 보상이 없던 십 년, 매일 인공지능(AI)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친구 이야기 같은 것들이다. 작품은 그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통로로 쓰였다. 셋째, 독자가 원한 것은 해설이 아니라 자기 처지를 다룰 언어인 걸까. 문학 행사가 실질적으로 상담의 성격을 띠는 현상은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지만, 언어와 국적이 다른 작가를 앞에 두고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문화적 거리가 장벽이 아니라 오히려 완충 작용이 되었다. 중국인 독자는 통신원과의 인터뷰에서 서울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보다 직접적이지 않게 자기 처지를 비춰 볼 수 있게 해 주었다고 전했다. 넷째, 작가가 돌려준 것은 답이 아니라 허용이었다. 극복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말, 억지 희망이 잔인한 위로가 될 수 있다는 말, 작가가 독자를 대신해 희망을 규정하지 않겠다는 말이 이번 일정에서 가장 많이 인용됐다. 해외 독자를 대상으로 한 문학 행사가 작품 홍보와 국가 이미지 전달의 자리로 설계되기 쉬운 데 반해, 이번 사례는 작가가 답을 유보하는 태도 자체가 의미 있는 콘텐츠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준다. 다섯째, 수용을 만든 것은 여러 층의 매개자였다. 작품집을 기획한 출판사, 두 소설을 중국어판으로 번역한 번역자, 소설 단편을 무대에 올린 제작진과 배우, 전시장 벽면에 소설 내용을 건 큐레이터, 그리고 행사 내용을 정리해 소셜미디어에 올린 독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작품을 옮겼다. 원작자 김애란의 방문은 겹겹이 쌓인 김애란 작품을 한자리에 모이게 했다. 사흘의 일정은 한 편의 단편이 십수 년에 걸쳐 옮겨 다닌 자리를 한자리에 모아 보여주었다. 무대와 전시장과 서점에서 이 이야기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다시 쓰였고, 그때마다 옮긴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문학이 중국에서 읽히는 방식은 이제 번역서가 몇 부 팔렸는가로, 평점이 높은 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사진 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샤오홍슈 ‘ioea’ 계정(@ioea), https://xhslink.cn/o/Am0DAhILouS - ≪위챗(WeChat)≫ (2026. 05. 09). 演出推荐|《三十岁》,一场只演给自己的女性独角戏, https://mp.weixin.qq.com/s/f9mBY9MHTWlsKbGShQHLrw - ≪위챗(WeChat)≫ (2026. 05. 10). 演出推荐|《三十岁》,明日开票 | 女性独角戏《三十岁》6月亮相安福路, https://mp.weixin.qq.com/s/f9mBY9MHTWlsKbGShQHLrw - ≪위챗(WeChat)≫ (2026. 05. 31). 来了!金爱烂短篇小说改编话剧女性独角戏《三十岁》六月上演, https://mp.weixin.qq.com/s/22xvV-qtFA1VgD6-N6QdHQ - ≪위챗(WeChat)≫ (2026. 06. 06). 女性独角戏《三十岁》人生选择题, https://mp.weixin.qq.com/s/KJD03y3FN6xZMzdY2AZmXw - ≪위챗(WeChat)≫ (2026. 06. 24). 《三十岁》:看见一朵玫瑰的凋零, https://mp.weixin.qq.com/s/XONDs9PAIlEx48TYHd2OxA?click_id=1164941465 - ≪위챗(WeChat)≫ (2026. 08. 19). 上海书展活动:韩国作家金爱烂读者见面会, https://mp.weixin.qq.com/s/eieh50IGxoHAAa4pQ35ePA - ≪위챗(WeChat)≫ (2026. 08. 24). 台风之后的夏天,遇到金爱烂, https://mp.weixin.qq.com/s/0JWu0aNq4TzuIFjtCbzqqg?click_id=1348843435 - ≪위챗(WeChat)≫ (2026. 08. 25). 韩国人的心里有一条”革命之路”|随记, https://mp.weixin.qq.com/s/1dbn1IUoiZqPAmGsBTI7EQ - ≪위챗(WeChat)≫ (2026. 08. 25). 金爱烂:相比流利又快速的AI答案,人类粗糙的沉默更有安慰感, https://mp.weixin.qq.com/s/wkTh7S3_GsQjwto3k2u4nA?click_id=509989574 - ≪위챗(WeChat)≫ (2026. 08. 27). 金爱烂:文学让被概括的人重新拥有名字, https://mp.weixin.qq.com/s/O26gZ9yAOJ4u828rRznTyg - ≪위챗(WeChat)≫ (2026. 08. 27). 黄尧:“剧抛脸”小花旦,开始正视成为大青衣的野心, https://mp.weixin.qq.com/s/CExY4h5OI0X7Bt1BHm3rMQ?click_id=564629619 - ≪위챗(WeChat)≫ (2026.08.28.). 金爱烂:重要的不是灵感什么时候来,而是当它来到面前时,你有没有能够辨认它的眼睛和身体, https://mp.weixin.qq.com/s/sgS9shpSl4U8jTfdKTouF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