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7일, 스톡홀름 콘서트하우스(Konserthuset)에서는 주스웨덴한국문화원 개원 3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공연 <가야금의 무(巫)감각화(Shamanic Sensibility of Gayageum)>가 열렸다. 이번 공연은 2026년 한국문화원의 연간 테마인 '근원: 우리의 뿌리'의 일환으로 진행됐으며, 한국 전통 무속음악의 감각을 현대 음악 언어로 재해석한 실험적 무대였다.
<가야금의 무(巫)감각화>는 주스웨덴한국문화원이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하는 '2026 투어링 케이-아츠(2026 Touring K-arts)' 사업의 일환이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주관하는 '2026 투어링 케이-아츠' 사업은 재외 한국문화원(홍보관)과 협력해 한국의 우수 문화예술 프로그램(단체)이 해외에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를 통해 한국 문화예술의 국제 교류를 활성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본 공연은 스웨덴 스톡홀름(5월 7일)과 벨기에 브뤼셀(5월 12일)에서 순회공연 형식으로 유럽 현지 관객들에게 한국 전통 무속음악의 감각을 현대 음악 언어로 재해석한 실험적 무대를 선보였다.
<가야금의 무(巫)감각화>는 전통 가야금뿐만 아니라 철 가야금, 꽹과리, 아쟁 등 다양한 악기를 통해 한국적인 에너지와 현대적 선율의 경계를 허물며, 그 독창성을 인정받아 ‘제3회 서울예술상(2025)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명성대로 공연의 주역인 가야금 연주자 박세연(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단원)은 제주 칠머리당굿, 동해안 별신굿, 남해안 별신굿, 진도 씻김굿 등 한국의 전통적인 무속음악에서 영감받아, 전통을 단순 재현이 아닌 동시대적 감각으로 새롭게 재구성한 작품들이 무대에 올렸다.
< '가야금의 무(巫)감각화' 공연 - 출처: 주스웨덴한국문화원 >
공연 제목 속 ‘무(巫)’와 ‘무(無)’는 이번 무대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상징이다. 한국 전통 무속의 의미와 함께 ‘비움’ 혹은 ‘무아’의 상태를 의미하는 이중적 개념이 반복적인 장단과 긴 여운, 점층적으로 쌓여가는 리듬 속에서 구현됐다. 본 공연의 음악은 단순히 듣는 대상이라기보다 관객을 서서히 몰입 상태로 이끄는 하나의 감각적 체험처럼 느껴졌다. 특히 평일 저녁, 하루의 피로를 안고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이번 무대는 마치 잡념을 씻어내는 명상의 시간으로 다가왔다. 눈을 감고 공간에 울리는 가야금의 진동과 꽹과리의 신비로운 음색의 조화에 집중하니 복잡했던 생각들이 조금씩 멀어지는 듯한 감각이 들었다. 반복되는 장단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다른 감각의 상태로 이끄는 리듬처럼 느껴져 공연장이 음악 감상을 넘어 의식적 공간으로 확장됐다.
< '가야금의 무(巫)감각화' 공연 무대 - 출처: 주스웨덴한국문화원 >
공연의 두 번째 곡인 <올림>(황재인 작곡)은 전통 산조 가야금과 세 개의 징으로 연주됐는데, 남해안 별신굿의 올림춤 반주음악 올림채를 모티브로 허배채, 덩덕궁이채 내림채 등의 장단에서 영감받은 작품이다. 음높이가 다른 전통 타악기 징 3개를 모두 바닥에 눕히고, 각기 다른 채로 음색을 달리한 가야금과의 조화가 인상적이었다. 연주 장면을 보기 위해 적극적으로 시야를 확보하는 청중의 모습이 보였다.
< '가야금의 무(巫)감각화' 공연 - 출처: 주스웨덴한국문화원 >
공연은 소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25현 가야금, 산조 가야금, 스틸 가야금 등 다양한 종류의 가야금이 등장하며 악기의 확장된 가능성을 보여줬다. 같은 가야금 계열임에도 음색과 울림, 리듬의 질감이 모두 다르게 느껴졌고, 전통 악기가 현대 음악 안에서 얼마나 실험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특히 후반부에 세 명의 연주자가 함께 등장한 다섯 번째 곡 <우븐 사운드(Woven Sound)>는 공연장의 분위기가 한층 풍성하게 만들었다. 측면에 앉은 연주자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면서 단순히 ‘듣는 공연’에서 ‘보는 공연’으로 감각이 확장되었다. 사람들 틈으로 무대 오른편 연주자의 손동작이 살짝 보이기 시작하자, 빠르고 복잡한 가락의 움직임이 더욱 생생하게 전달됐고 흥겨움 역시 커졌다. 장단 위를 촘촘하게 엮어가는 선율은 마치 실제 굿판에서 음악과 몸짓이 함께 얽혀 들어가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 '가야금의 무(巫)감각화' 공연 - 출처: 주스웨덴한국문화원 >
마지막 곡 <새다림(Saedarim)>은 제주 칠머리당굿의 한 의식 절차에서 영감 받았다. 반복적인 선율과 점점 고조되는 리듬은 마치 실제 굿판에서 공간을 정화하고 신을 맞이하는 의식의 흐름을 떠올리게 했다. 특히 25현 가야금의 풍성한 울림은 단순한 전통 악기의 선율을 넘어 파도처럼 밀려오는 거대한 음향으로 느껴졌고, 공연장 전체를 새로운 공간처럼 변화시키는 듯했다. 작품 설명 속 "때로는 새가 되어 날아가고, 때로는 바다의 푸른 물이 되어 흐른다"라는 표현처럼, 음악은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며 자유롭게 흘러갔다. 공연장을 떠나는 관객들의 안녕을 빌어주는 듯해 공연의 마무리를 장식하기에 완벽한 곡이었다. 이번 공연은 단순한 국악 공연이라기보다, 한국 전통의 가장 오래된 감각을 동시대 음악 언어로 표현하는 시도에 가까웠다. 스웨덴이라는 먼 장소에서 한국의 무속과 장단, 반복과 몰입의 미학을 마주한다는 경험 자체가 인상 깊게 남았다. 스웨덴 관객들에게도 국악을 통해 새로운 감각을 느낄 기회가 됐을 것이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주스웨덴한국문화원, https://sweden.korean-culture.org/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