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의 부킷티마(Bukit Timah)에 위치한 페어프라이스(FairPrice)를 찾았다. 매장 안에는 싱가포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료품과 생활용품이 진열돼 있었지만, 한쪽에서는 한국어가 적힌 포장과 한국 상품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과자와 음료, 라면, 냉동식품을 비롯해 생활잡화와 건강식품까지 다양한 한국 상품이 한 공간에 모여 있었다.
진열대 가운데 특히 시선을 끈 상품은 한국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사진과 이름이 들어간 오레오였다. 일반 오레오와 같은 과자 진열대에 놓여 있었지만, 보라색을 활용한 포장과 방탄소년단을 강조한 디자인 때문에 주변 제품과 쉽게 구별됐다. 매장을 찾은 일부 고객은 진열대 앞에 멈춰 제품 포장을 살펴보거나 휴대전화로 사진을 촬영했다. 현장에서 별도의 고객 인터뷰를 진행하지 않아 이들이 실제로 방탄소년단 팬이었는지, 제품을 구매한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일상적인 공간에서 한국 대중음악과 연결된 상품이 자연스럽게 판매되고 있다는 점은 확인할 수 있었다.
< 매장 입구에 위치한 방탄소년단 협업 오레오 홍보 매대 - 출처: 통신원 촬영 >
싱가포르에서 판매된 방탄소년단 협업 오레오는 방탄소년단 데뷔 13주년을 기념해 선보인 한정 상품이다. 페어프라이스는 지난 6월 22일부터 7월 5일까지 비보시티(Vivocity)의 페어프라이스 엑스트라(FairPrice Xtra)에서 별도의 팝업 행사를 진행했다. 행사장에서는 한국의 길거리 간식인 호떡에서 영감을 얻은 오레오를 판매하고, 방탄소년단에게 메시지를 남기는 공간과 구매 금액에 따른 기념품 증정 행사도 운영했다. 팝업은 이미 종료됐지만, 협업 제품은 7월 말에도 페어프라이스의 일부 매장과 온라인 판매망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보라색 흑당 맛 오레오는 싱가포르 페어프라이스 온라인몰에서 236.25g 묶음 제품이 3.60싱가포르달러(한화 약 4천 원)에 판매됐으며, 방탄소년단 디자인의 미니 바닐라 오레오는 1.50싱가포르달러(한화 약 1,670원)로 표시됐다. 두 제품 모두 할랄 제품으로 안내됐다. 세계적인 한국 가수의 이미지를 활용하면서도 현지의 종교적 식품 기준을 고려한 상품이라는 점은 다인종·다종교 사회인 싱가포르에서 한류 상품이 유통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방탄소년단 협업 상품은 한류 팬의 수집 욕구를 겨냥한 제품이지만, 이날 현장에서 확인한 한국 상품은 팬 상품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같은 매장 안에는 한국 과자와 라면, 김, 음료, 냉동식품이 종류별로 진열돼 있었다. 일부 제품에는 한국어 상품명이 그대로 표시돼 있었고, 영어로 된 설명과 가격표가 함께 부착돼 있었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포장 형태를 크게 바꾸지 않고 판매하는 제품도 많았다.
특히 눈에 띈 곳은 페어프라이스 안에 별도 공간으로 마련된 롯데마트 익스프레스였다. 일반적인 수입식품 진열대처럼 몇 개의 한국 제품만 한 선반에 섞어 놓은 것이 아니라, 한국 상품을 하나의 독립된 매장처럼 구성한 ‘숍인숍’ 형태였다. 입구와 진열대에는 롯데마트를 알리는 표지가 설치돼 있었고, 과자와 조미료, 가공식품, 냉동식품, 간편식 등이 품목별로 정리돼 있었다.
< 페어프라이스에 위치한 롯데마트 익스프레스 - 출처: 통신원 촬영 >
페어프라이스 그룹은 2025년 5월 페어프라이스 엑스트라 비보시티에 싱가포르 첫 롯데마트 익스프레스를 공식 개장했다. 당시 매장은 한국 과자와 음료, 기본 식재료, 조미료, 냉동식품 등 700개 이상의 상품을 취급하는 형태로 출범했다. 매장 안에는 이용자가 직접 라면을 조리할 수 있는 공간과 한국식 간편식을 판매하는 ‘요리하다 키친’도 마련됐다. 페어프라이스는 롯데 및 롯데의 자체 브랜드인 ‘오늘좋은’과 ‘요리하다’ 제품 180여 종을 싱가포르 전역의 100개 이상 점포에서도 판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26년 3월에는 서부 주롱(Jurong) 지역의 대형 쇼핑몰 제이이엠(JEM)에 두 번째 롯데마트 익스프레스가 문을 열었다. 이에 따라 싱가포르 남부의 비보시티와 서부의 제이이엠 두 곳에서 보다 큰 규모의 한국 상품 전용 공간을 운영하게 됐다. 페어프라이스 공식 안내에는 두 매장이 한국의 식품과 인기 간식, 냉동 길거리 음식, 간편식을 함께 소개하는 공간으로 설명돼 있다.
롯데마트 상품은 두 전용 매장에만 머물지 않았다. 페어프라이스의 여러 지점과 온라인몰에서도 한국식 김 스낵, 단백질 바, 곤약젤리, 부침가루, 당면, 과자, 음료와 같은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는 한국 식품이 일부 대형 매장이나 한시적인 한국 상품전에서만 취급되는 것이 아니라, 싱가포르의 일반적인 유통망을 통해 반복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 페어프라이스 온라인몰에서 판매 중인 롯데 브랜드 제품들 - 출처: 페어프라이스 웹사이트 >
현장에서 확인한 진열대에는 한국의 식문화와 관련된 제품뿐 아니라 생활잡화도 함께 놓여 있었다. 한국 음식에 관심이 있는 고객이 라면이나 과자를 사는 것에서 더 나아가, 주방이나 가정에서 사용하는 한국 상품까지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돼 있었다. 한국 상품을 별도의 ‘문화 체험용’ 제품으로 분리하기보다는 현지 소비자의 평범한 생활에 필요한 상품 가운데 하나로 소개하는 방식이었다.
< 한국의 생활 잡화를 판매 중인 모습 - 출처: 통신원 촬영 >
또 다른 진열대에서는 한국의 홍삼 브랜드 정관장 제품도 볼 수 있었다. 방탄소년단 오레오가 비교적 젊은 소비자와 케이팝 팬에게 친숙한 상품이라면, 홍삼은 건강과 선물 문화를 대표하는 전통적인 한국 상품이다. 같은 대형마트 안에서 최신 케이팝 협업 과자와 오랜 역사를 지닌 홍삼 제품이 함께 판매되는 모습은 싱가포르에서 한류 소비의 범위가 넓어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 정관장 홍삼을 판매하고 있는 모습 - 출처: 통신원 촬영 >
과거 해외에서 판매되는 한국 상품은 김치와 라면, 고추장처럼 한국 음식을 대표하는 몇 가지 품목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불닭볶음면과 김 스낵, 냉동 떡볶이, 만두, 과일 맛 소주처럼 이미 해외에서 인지도를 얻은 상품뿐 아니라 한국 대형마트의 자체 브랜드와 간편식, 건강식품, 생활용품까지 판매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소비자는 한국을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현지 슈퍼마켓에서 한국인이 일상적으로 구매하는 형태와 유사한 제품을 접할 수 있다.
상품이 판매되는 장소도 중요하다. 페어프라이스는 관광객만 방문하는 특정 상업시설이 아니라 싱가포르 주민이 식재료와 생필품을 구매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찾는 생활 유통망이다. 페어프라이스 그룹은 슈퍼마켓과 편의점, 약국, 푸드코트와 호커센터(Hawker Centre) 등을 포함해 싱가포르 전역에서 570개가 넘는 지점을 운영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 상품이 이러한 대형 유통망에 진입했다는 것은 한인마트를 일부러 찾아야 했던 과거보다 현지 소비자와 만나는 기회가 훨씬 많아졌다는 의미다.
이날 매장 안에서도 한국 상품 코너는 일반 장보기 동선과 분리되지 않았다. 고객들은 우유와 채소, 생필품을 담은 장바구니를 끌고 이동하다가 한국 과자와 라면이 놓인 구역에 들어왔다. 일부는 진열된 제품을 집어 가격과 성분표를 확인했고, 다시 선반에 돌려놓거나 장바구니에 담았다. 한국 상품을 보기 위해 별도의 문화행사장을 방문한 것이 아니라 평소와 같은 장보기 과정에서 제품을 접하는 모습이었다.
방탄소년단 오레오는 한류가 상품의 관심을 끌어내는 가장 직접적인 방식을 보여준다. 잘 알려진 가수의 얼굴과 상징색을 활용하면 평소 해당 과자를 구매하지 않던 팬도 제품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한정판 포장과 기념품은 먹기 위한 상품을 수집하고 촬영하며 공유하는 문화 상품으로 바꾼다. 페어프라이스가 팝업 행사에서 방탄소년단에게 편지를 남기는 체험을 마련한 것도 식품 판매와 팬 활동을 결합한 사례다.
반면 롯데마트 익스프레스의 역할은 일회성 협업 상품과 다르다. 특정 스타나 작품의 인기가 사라진 뒤에도 한국 식품을 지속적으로 구매하도록 만드는 유통 기반에 가깝다. 인기 과자를 처음 접한 소비자가 이후 한국 라면과 냉동식품, 조미료와 간편식을 구매한다면 한류에 대한 관심은 실제 식생활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 상품의 해외 확산에서 팝업과 한정판이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입구라면, 상설 매장과 온라인 유통망은 관심을 반복적인 구매로 연결하는 통로라고 볼 수 있다.
페어프라이스와 롯데의 협력은 양국 상품이 이동하는 방향도 넓히고 있다. 두 기업은 한국 식품을 싱가포르에 공급하는 것뿐 아니라, 페어프라이스 자체 브랜드 상품을 한국의 롯데마트와 롯데슈퍼에 소개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한국 상품의 일방적인 수출에 그치지 않고 싱가포르와 한국의 유통기업이 서로의 상품과 시장 경험을 교환하는 협력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대형 마트에 한국 상품이 많이 진열됐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제품이 현지 시장에 정착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협업 상품은 한정 판매가 끝나면 사라질 수 있고, 수입식품은 환율과 운송비로 인해 한국보다 가격이 높아질 수 있다. 처음에는 포장과 유행에 관심을 보인 소비자가 실제 맛과 품질에 만족해 다시 구매하는지도 중요하다. 다양한 제품을 들여오는 것만큼 현지 소비자가 이해하기 쉬운 설명과 조리 방법, 적절한 가격을 제공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현장에서 확인한 모습은 싱가포르에서 한류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한류는 더 이상 공연장과 온라인 영상, 한국 음식점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방탄소년단의 이미지는 슈퍼마켓 과자 포장에 등장하고, 한국 대형 마트의 자체 브랜드 제품은 현지인의 냉장고와 식탁으로 들어간다. 홍삼과 생활용품도 한국에 다녀온 사람이 특별히 사 오는 선물에서 현지 매장에서 직접 비교해 구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이동하고 있다.
진열대 위의 방탄소년단 오레오와 정관장 홍삼, 롯데마트의 과자와 생활용품은 서로 다른 소비층을 대상으로 하는 상품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들이 한 공간에 놓인 장면은 케이팝과 케이푸드, 건강과 생활문화가 하나의 넓은 한국 소비문화로 연결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최신 대중문화에서 시작된 관심이 음식과 건강, 일상용품의 소비로 이어지는 것이다.
싱가포르 대형 마트 안에 마련된 한국 상품 코너는 화려한 공연장이나 축제 현장과는 다른 모습의 한류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응원봉 대신 장바구니를 들고 한국 상품을 살펴봤다. 방탄소년단 오레오를 촬영하던 고객 옆에는 식재료를 고르는 사람이 있었고, 그 뒤에는 홍삼과 한국 생활용품이 진열돼 있었다. 한류가 특별한 행사를 찾아가 경험하는 문화에서 평범한 장보기 과정에서 만나는 생활문화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페어프라이스(FairPrice) 웹사이트,
https://www.fairprice.com.sg/events/xtra/xtra-oreobts/?srsltid=AfmBOoqIiN0DEQHA2aZWg6J4HrTjp3aOl8SEcoMICl_bnhMvfjNU9EBY
https://www.fairprice.com.sg/category/fp-lotte?srsltid=AfmBOooRYovZR6RE67mkS-Of65sY4_EObL9PzliqqBqVP7woEPuoQoD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