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문화유산의 나라 이탈리아가 올해 봄, 전 세계 미술 시장과 문화유산 정책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새로운 결정을 내렸다. 이탈리아 정부가 전격 시행한 문화유산 개혁법인 ‘이탈리아 인 셰나(Italia in scena)’가 그 주인공이다.
법 시행 약 3개월이 지난 현재, 이탈리아 미술 시장과 예술계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와 함께 다양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역사적 유산 보존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엄격하고 보수적인 국가로 꼽혀온 이탈리아가 왜 규제를 완화하게 됐을까. 또 이러한 변화는 한국의 미술 애호가와 예술가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이탈리아 현지의 생생한 논의와 함께 살펴봤다.
이탈리아 현지 법률 매체들에 따르면, 이번 개혁법의 핵심 변화는 사망한 작가의 제작 후 70년 이상 된 미술품을 해외로 영구 반출할 때 적용되던 가격 기준이 대폭 상향된 것이다.
기존에는 작품 가치가 1만 3,500유로(약 2,000만 원)를 넘을 경우 국가의 엄격한 사전 승인을 받아야만 해외 반출이 가능했다. 이 때문에 해외 수집가가 이탈리아의 고미술품이나 오래된 가구를 구매하더라도 복잡한 행정 절차로 인해 거래를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법 개정으로 기준선이 5만 유로(약 7,500만 원)로 상향됐다. 이에 따라 기준 금액 이하의 고미술품이나 근대 미술품은 이전보다 간소화된 절차를 통해 해외로 반출할 수 있게 됐다.
현지 예술 전문 매체 «피네스트레 술라르테(Finestre sull'Arte)»에 따르면, 이탈리아 정부는 자국 예술의 해외 진출을 확대하기 위해 관련 사업에 지속적으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이는 침체된 이탈리아 미술 시장의 경쟁력을 높이고, 런던과 뉴욕 등 주요 글로벌 미술 시장과의 격차를 좁히려는 정책적 의지로 풀이된다.
< 피렌체의 대표 미술관 팔라초 스트로치(Palazzo Strozzi)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 이탈리아는 새 문화유산 개혁법을 통해 미술시장의 국제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 출처: 통신원 촬영 >
시행 후 수개월이 지난 현재, 이탈리아 현지의 반응은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미술상과 중소 갤러리들은 이번 개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동안 까다로운 수출 심사로 해외 아트페어에 작품을 출품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번 제도 개편으로 행정적 부담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은 작품의 수출 심사에 투입하던 행정력을 줄이고, 국보급 문화재와 핵심 문화유산 보호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입장이다.
반면 문화유산 보호론자들과 미술사학자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당장은 5만 유로(약 7,500만 원) 미만으로 평가되는 작품이라도, 향후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크게 높아질 수 있는 근현대 예술품이나 실험적 예술가들의 기록물들이 해외로 영구 반출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문화재 보호라는 국가의 책무를 지나치게 완화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법 개정은 한국의 미술 애호가와 예술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과 이탈리아 간 예술 교류의 문턱이 이전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 수집가의 이탈리아 미술품 구매 여건 개선
그동안 한국의 개인 수집가나 중소 갤러리가 이탈리아의 근대 회화나 고가구를 구매할 때 가장 큰 걸림돌 가운데 하나는 이탈리아 정부의 수출 제한 조치였다. 매매 계약을 마쳤더라도 정부가 반출을 허가하지 않으면 작품을 국내로 들여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규제 완화로 한국 수집가들이 이탈리아 현지의 미술품을 이전보다 간소화된 절차를 통해 수입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한국 작가의 이탈리아 전시 절차 완화
이번 개혁법은 한국을 포함한 외국 작가의 작품이 이탈리아에 일시적으로 반입됐다가 다시 반출되는 절차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이탈리아 현지 로펌 자료에 따르면, 외국 작품이 전시 등을 목적으로 임시 반입된 뒤 재반출되는 과정에서 국가가 이를 임의로 보류하거나 매입 대상으로 지정하는 일을 제한하도록 법적 안정성을 강화했다. 이에 따라 한국 예술가들이 이탈리아 현지 갤러리나 아트페어에서 전시를 마친 뒤 작품을 다시 한국으로 반출하는 과정도 이전보다 투명하고 예측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의 이번 제도 개편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국 역시 글로벌 미술 시장에서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문화재 보호와 미술 시장 활성화라는 두 가지 과제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유산을 엄격하게 보호하는 것과 국제적인 예술 교류를 활성화하는 것 사이에서 어느 지점을 선택할 것인지는 쉽지 않은 과제다. 오랫동안 문화재 보호 정책을 유지해 온 이탈리아가 이번 개혁을 통해 어떤 성과와 과제를 남길지는 한국에도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탈리아 예술에 관심 있는 국내 관람객은 물론, 양국 간 문화 교류를 추진하는 예술계에도 의미 있는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사진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피네스트레 술라르테(Finestre sull'Arte)» (2026.04.15). Beni culturali, quali modifiche ha apportato la legge da poco approvata, https://www.finestresullarte.info/politica/beni-culturali-quali-modifiche-apporta-legge-appena-approvata
- «디 에이아이제이에이 저널(The AIJA Journal)» (2026.07.06). ArtLaw: Italy Amends Its Cultural Heritage Code, https://theaijajournal.org/italys-new-cultural-heritage-rules/
- 이탈리아 로펌 키오멘티(Chiomenti). The Reform of the Italian Cultural Heritage Code: Law no. 40/2026 (2026.07.10), https://buly.kr/7bJNUAZ
- «야코바치 아보카티(Jacobacci Avvocati)» (2026.07.15). Art Law in a nutshell: Cross-border circulation of artworks after Law 40/2026, https://www.jacobacci-law.com/it/news-e-pubblicazioni/artlaw-in-a-nutshell-italy-amends-its-cultural-heritage-code-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