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이케아 가방에서 도깨비를 만들다…영국 ≪가디언≫이 주목한 한국 작가
- 한국 설화와 무속, 자투리 천과 폐품이 만나는 독특한 세계…주영국 한국문화원 ‘뉴 젠(NEW GEN)’ 선정 작가로도 소개 -
도자기로 만든 초록색 도깨비의 발, 벽에서 불쑥 튀어나온 털 달린 다리, 검은 코트를 입고 머리 없이 웅크린 기묘한 존재. 런던의 한 작업실에 들어서면 마치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흐려진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작가 주우진이 천과 실, 오래된 생활용품과 버려진 물건을 이용해 만들어낸 작품들이다. 한국의 설화와 무속, 동아시아의 신화에서 출발해 현대적인 조형 언어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가는 주우진 작가의 작업이 영국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영국의 유력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은 최근 주우진 작가를 직접 만나 그의 작업 세계를 상세하게 소개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주우진 작가는 주로 텍스타일과 자수를 활용해 작업한다. 그는 런던(London)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Central Saint Martins)에서 공부한 뒤 영국왕립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에서 텍스타일 석사 과정을 마쳤으며, 2021년 졸업 이후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사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작품의 소재다. 매체에 따르면, 작업실 창가에는 도자기로 만든 초록색 도깨비 발이 놓여 있고, 벽에서는 털이 달린 다리가 튀어나와 있으며, 작업실 한쪽에는 얼굴이 없는 존재가 검은 옷을 입은 채 웅크리고 있다. 색색의 실과 프리핸드 자수 기계가 놓인 작업 공간은 이러한 기묘한 생명체들이 탄생하는 장소로 묘사됐다. 주우진 작가는 자수 기계를 사용하는 경험을 회화에 비유한다. 실 한 가닥 한 가닥이 각각의 생명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는 설명이다. 그가 이러한 작업 방식을 본격적으로 찾게 된 계기 가운데 하나는 2021년 제작한 작품이었다. 작가는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도교의 십장생 문양을 오래된 이케아 가방에 수 놓았다. 수백 년, 길게는 1,000년 가까이 분해되지 않을 수 있는 플라스틱 소재의 이케아 가방과 오랜 종교적, 문화적 전통을 가진 상징을 한 화면에 결합한 작업이었다. 작가에게 이 작품은 종교적 믿음과 신화, 그리고 자신의 작업을 하나의 방식으로 연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그리고 이후 주우진 작가는 런던에서 버려지는 물건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매체에 따르면, 한국 설화와 무속에서 등장하는 도깨비처럼 인간이 아닌 존재가 사물과 결합해 새로운 생명성을 얻는 상상력이 그 바탕에 있다. 작가는 더 이상 버려진 물건을 단순한 폐기물로 보지 않는다. 오래된 셔츠 소매에서는 여러 개의 발을 가진 생명체가 튀어나오고, 버려진 나무 사이드 테이블은 거대한 도깨비의 다리로 변한다. 이러한 작업은 그가 동아시아의 문화적 배경을 바라보는 방식과도 연결된다. 작가의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는 동아시아 신화와 민속문화, 무속에서 발견되는 이야기의 흔적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신화를 만들고, 이를 통해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구성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작가가 만들어 내는 세계에는 인간만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아닌 존재와 반신, 신화 속 생명체들이 등장하며, 서로 다른 종이 얽히고 협력하는 세계를 상상한다. 이는 전통에서 가져온 이야기와 현대의 생활 환경, 버려진 물건과 개인적인 경험을 서로 엮어 새로운 신화적 세계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성장한 뒤 영국으로 이주했다.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이러한 경험은 그의 독특한 작품 세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작가는 어린 시절 주로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으며, 약 12년 전 영국으로 건너와 센트럴 세인트 마틴과 영국왕립예술대학에서 공부했다. 동아시아에서 서유럽으로 생활환경이 바뀌면서 자신이 어떤 문화적 배경에 의해 형성됐고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새롭게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한국에서 자연스럽게 접했던 신화와 무속, 민속적 이미지가 작업의 중요한 재료가 됐다. 작가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미술계 안에 여전히 공예와 순수미술 사이에 위계가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순수미술 작가가 도자기나 텍스타일 같은 공예적 기법을 활용하면 자신의 작업에 필요한 전문성으로 받아들이는 반면, 처음부터 공예를 기반으로 작업해 온 작가의 작품은 순수미술로 인정받는 데 상대적으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런던 공예 행사에서도 주목받는 작품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으로 만들어진 작품은 런던의 주요 공예 행사에서도 주목받았다. 올해 2월 런던에서 열린 콜렉트 아트 페어(Collect Craft Fair)에서는 벽에 기대어 있는 듯한 사색적인 형상의 작품 <나는 나와 함께 존재하는 것을 듣는다(I Hear Things Existing With Me)>가 눈에 띄는 작품 가운데 하나로 소개됐다. 이 작품은 이후 주우진 작가가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연작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콜렉트의 디렉터 티에프(TF) 찬은 처음 주우진 작가의 작품을 봤던 순간을 쉽게 잊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그가 처음 접한 작품은 발가락 끝에 윤기 나는 붉은색 매니큐어가 칠해진 한 쌍의 도자기 다리였다. 그는 주우진 작가의 작품은 전통적인 문화적 배경에 단단히 뿌리를 두면서도 지적인 탐구와 유쾌함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평가한다. 최근 영국에서는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대중문화에만 한정되지 않고 음식과 뷰티, 영화와 미술,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우진 작가의 사례 역시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전통적인 한국 문화의 요소가 현대적인 예술 언어와 결합해 영국 현지 미술계에서 소개되는 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일찍이 차세대 작가로 소개된 주우진 작가 주우진 작가는 이미 주영국 한국문화원이 차세대 한국 작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영국 현지 관객에게 소개된 바 있다. 주영국 한국문화원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개최한 연례 공모 전시 <뉴 젠: 더 이머징 보이시즈(NEW GEN: The Emerging Voices)>에 주우진 작가의 이름을 포함했다. 이 전시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를 지원하고 소개하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당시 회화와 조각, 영상, 설치 등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8명의 작가를 선정해 선보였다. 당시 전시는 신화와 기억, 생태, 디지털 문화 등 동시대적 주제를 통해 영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들의 다양한 시선을 조명했는데, 그 가운데 주우진 작가는 민속과 무속에서 가져온 모티프를 통해 신화적 상상력이 오늘날의 일상에 어떤 방식으로 남아 있는지를 탐구하는 작가로 소개됐다.
주우진 작가가 사용하는 재료는 거창하지 않다. 오래된 이케아 가방, 버려진 셔츠, 낡은 나무 가구와 같은 일상적인 물건이 그의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한다. 한때 누군가의 생활에 사용됐던 물건이 버려진 뒤 다시 생명을 얻는 과정은 작가가 말하는 ‘작고 평범한 것에도 정신이 깃들 수 있다’는 생각과 맞닿아 있다. 영국의 유력 매체인 ≪가디언≫이 주우진 작가의 작업실을 직접 찾아가 그의 작업 세계를 상세하게 소개한 것은 그만큼 그의 작업이 현지 미술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작가가 보여주는 것은 특별한 세계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을지 모르는 또 다른 세계다. 한국의 무속과 설화에서 출발한 상상력이 런던의 폐품과 현대 공예를 만나 만들어낸 독특한 세계. 주우진 작가의 작업이 영국 현지에서 주목받는 이유도 바로 그 낯설면서도 친근한 세계관에 있을 것이다.
사진 출처 및 참고자료 - ≪가디언(The Guardian)≫ (2026. 09. 01). Meet the magical creatures inspired by shamanism, folklore … and an old Ikea bag, https://www.theguardian.com/artanddesign/2026/sep/01/woo-jin-joo-shamanism-folklore-magical-creatures-bodily-inbetweenness-ruup-form-london - 주우진 스튜디오(Woo Jin Joo Studio) 웹사이트, https://www.woojinstudio.com/about-1 - 주영국 한국문화원(Korean Cultural Centre UK) 웹사이트, https://uk.korean-culture.org/en/1986/board/1593/read/143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