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뛰어넘은 희생, 두 나라의 굳건한 닻이 되다
- 케이 컬처 이전에 ‘롤롬보이 성지’가 있었다 -

필리핀 불라칸(Bulacan)주 보카우에(Bocaue), 뜨거운 열대 햇살이 내리쬐는 롤롬보이(Lolomboy)에 접어들자, 야자수 사이로 필리핀에서는 이질적인 한국식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케이팝의 함성이 울려 퍼지는 세계 최대 실내 공연장 ‘필리핀 아레나(Philippine Arena)’에서 불과 약 4킬로미터 떨어진 이곳에, 고요한 평화가 내려앉은 ‘성 김대건 신부 성당(Shrine of St. Andrew Kim Tae-gon)’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인 최초의 가톨릭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2026년 9월 16일로 순교 180주년을 맞는다. 1821년 8월 21일 충남 당진 솔뫼에서 태어난 그는 성 피에르 모방 신부의 추천을 받아 1837년 6월 마카오(Macau) 파리 외방전교회 극동 대표부에서 신학에 입문했다. 1845년 상하이(Shànghǎi) 김가항성당에서 서품을 받으며 첫 조선인 사제가 되었으나, 그가 걸었던 신학 공부의 길은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19세기 중국은 민중봉기와 아편전쟁 등으로 정세가 급변하고 있었고, 이로 인해 유학생들은 마카오를 떠나 다른 피난처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닿은 곳이 바로 필리핀이었다. 필리핀으로 건너온 청년 김대건과 유학생 동기들은 롤롬보이 도미니코회 농장에서 머물며 학업을 이어나갔다. 타향살이의 고단함과 질병의 위협 속에서도 청년 김대건은 묵묵히 훈련을 이겨냈다. 이후 김대건 신부는 1845년 중국 상하이 김가항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아 조선인 최초로 가톨릭 사제가 되었다. 하지만 조국으로 돌아온 이듬해인 1846년 9월 16일 병오박해 당시 새남터에서 25세의 나이로 피를 흘리며 순교했다. 그와 함께 희생된 78명의 순교자는 1925년 시복되었고, 1984년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김대건 신부를 성인으로 추대했다. ‘성 김대건 신부 성당’은 지난 2002년 8월 김대건 신부를 모시는 성안드레아수녀회가 해당 부지를 매입한 이후 성지 관리를 맡고 있다. 이렇듯 낯선 이국땅의 무더위와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도 신학적 열정을 태웠던 불라칸의 롤롬보이에는 오늘날 한국과 필리핀을 잇는 가장 깊은 역사적·문화적 유산이 자리하고 있다. 성당 안팎을 천천히 둘러보다 보면, 이곳이 단지 한국 가톨릭만의 성지가 아님을 짐작게 하는 장면들과 마주하게 된다. 필리핀 가톨릭 역사에서 롤롬보이 성지는 필리핀 청년들의 깊은 신앙적 유산과도 맞닿아 있는 상징적인 교차로다. 필리핀 최초의 가톨릭 순교자이자 첫 성인인 산 로렌조 루이스(San Lorenzo Ruiz, 1600~1637)를 기리는 성당은 롤롬보이 남쪽인 마닐라 차이나타운 비논도(Binondo)의 성당에 모셔져 있다. 하지만 롤롬보이를 찾는 현지 신자들은 낯선 한국의 성인 김대건의 발자취 위에서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첫 성인, 로렌조 루이스를 겹쳐 본다. 조용히 성당 한편에 서서 두 성인의 삶을 찬찬히 돌아보면, 닮아 있는 삶의 궤적에 절로 숙연해진다.

17세기 비논도(Binondo) 출신의 중국계 필리핀인 로렌조 루이스는 억울한 누명을 피해 선교사들과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1637년 나가사키에서 도쿠가와 막부의 잔혹한 고문 끝에 순교했다. 필리핀의 첫 성인 로렌조와 조선의 첫 사제 김대건. 비록 200년 가까운 시차가 존재하지만, 두 사람 모두 ‘낯선 타국에서 박해와 고단함을 견디며 끝내 목숨으로 신념을 지켜낸 청년’이라는 데칼코마니 같은 삶을 살았다. 이 두 성인의 궤적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발걸음을 통해 다시 한번 극적으로 이어진다. 교황은 1984년 서울을 찾아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103위 순교자를 시성한 데 이어, 3년 뒤인 1987년에는 로렌조 루이스를 필리핀 첫 성인으로 선포했다. 롤롬보이 성지 한가운데 서서 뺨을 스치는 바람을 맞고 있노라면, 17세기와 19세기 동아시아의 거친 역사의 풍랑 속에서 피어난 두 청년의 거룩한 희생이 시대를 뛰어넘어 이곳에서 묵직한 인류애로 공명(共鳴)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한국 전통 기와지붕과 필리핀 열대 정원이 미학적으로 어우러져 한·필 양국의 우호를 상징하는 롤롬보이 성 김대건 신부 성당 마당에는 김대건 신부 동상을 중심으로 현지 신자들과 한국인 순례객들의 기도가 이어지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보카우에 현지 주민 마리아 산토스(Maria Santos, 42세) 씨는 “일본에서 순교한 산 로렌조 루이스처럼 김대건 신부님도 타국에서 고난을 겪으셨다는 공통점이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이 성당에 오면 한국과 필리핀이 아주 오래전부터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며 성지가 지닌 의미를 전했다. 순교 180주년을 맞아 성지를 방문한 한국인 순례객 박민석(35세) 씨 또한 “180년 전 낯선 타국에서 청년 김대건이 느꼈을 고독함과 신앙적 열정이 피부로 와닿는다”며 “양국 신자들이 함께 기도하며 성지를 가꿔나가는 모습에서 이곳이 단순한 종교적 장소를 넘어 양국 사이에서 따뜻한 문화적 거점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적 유산은 오늘날 필리핀 내 한국 문화산업의 진출 양상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케이팝이나 한국 드라마 등 한국 대중문화가 현지에서 거둔 성공이 자칫 일시적인 소비재나 유행으로 소모될 수 있는 한계를 지닌다면, 롤롬보이 성지가 지닌 180년의 역사는 한류에 ‘역사적 깊이와 정신적 친밀감’이라는 강력한 서사를 더해준다. 특히 국민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에서, 청년 김대건과 산 로렌조 루이스가 공유하는 희생과 신념의 가치는 한국 문화를 단순한 이국적 흥미를 넘어 깊이 공감하고 존중하게 만드는 정서적 교두보가 된다. 이는 한류의 소비층을 젊은 세대에서 전 연령층으로 넓히고, 대중문화를 넘어 성지순례와 인문학 탐방이 결합된 고부가가치 복합 문화·관광 산업으로 외연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나아가 이는 일방적인 문화 상품 수출이나 상업적 접근만으로는 현지 사회의 장기적인 마음을 얻기 어렵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필리핀 진출을 노리는 문화 사업은 양국이 공유하는 역사적 서사와 가치관에 기반한 ‘쌍방향 스토리텔링 전략’을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현지 문화와 신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지역 사회와 상생하는 공공외교형 문화 사업을 펼칠 때, 거부감 없는 지속 가능한 시장 안착과 신뢰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귀중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성안드레아수녀회가 성지 관리를 맡은 지 24년째를 맞이한 오늘날, 롤롬보이 성지는 종교적 울타리를 넘어 필리핀 동포 사회와 현지 주민들이 상호 이해를 넓히는 공공외교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필리핀 내 케이팝과 한국 드라마 등 한국 대중문화(K-Culture)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이러한 시점에 180년 전 아시아의 역사적 풍랑 속에서 형성된 롤롬보이 성지의 이야기는, 양국 관계가 단순한 일시적 유행이나 경제적 이해관계를 넘어 깊은 인문학적·역사적 연대감을 바탕으로 성립되어 있음을 일깨워준다. 순교 180주년을 맞는 성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와 필리핀의 산 로렌조 루이스가 전하는 상호 존중과 희생의 메시지는 오늘날 한국과 필리핀이 함께 나아가야 할 지속 가능한 동행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롤롬보이의 맑은 하늘 아래 울려 퍼지는 종소리는 180년 전 청년 김대건의 기도가 오늘날 양국의 아름다운 우호로 결실을 맺었음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사진 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