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한국에서 출간되어 2019년 중국어판으로 소개된 조남주(赵南柱)의 소설 『82년생 김지영(82年生的金智英)』은 중국 도서 시장에서 이른바 한국 여성 작가들의 서사라고 불리는 ‘한녀문학(韩女文学)’이 하나의 독립된 갈래로 자리 잡는 출발점이 되었다. 그로부터 약 7년, 이 이야기는 이번에는 중국 창작진의 손을 거쳐 연극 무대 위에서 전국의 중국 관객과 다시 만나고 있다.
상하이화극예술센터(上海话剧艺术中心)가 제작한 연극 <우리가 된 그녀(我们成为的她)>는 2026년 7월 14일 상하이에서 초연되었다. 각색은 1990년생 극작가 원팡이(温方伊), 연출은 홍콩 출신 쓰투후이줘(司徒慧焯), 주연은 데뷔 30주년을 맞아 중국 본토 관객과 처음으로 연극 배우로서 마주 선 량융치(梁咏琪·Gigi Leung)가 맡았다. 러닝타임은 120분이다. 상하이 14회 공연은 모두 사전 매진되었고, 이후 항저우(8월 1일~2일), 선전(8월 7일~8일), 청두(8월 14일~15일), 난징(8월 21일~22일), 시안(8월 29일~30일)을 거쳐 베이징(9월 4일~6일)에 이르는 전국 순회로 이어지고 있다.
이 사례가 주목할 만한 것은 단지 또 하나의 한국 콘텐츠가 흥행에 성공했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하나의 한국 원작이 소설(2019 중국어판), 한국판 영화(중국 평점 사이트 도우반(豆瓣) 평점 8.6, 중국 관객 40만 명 평가) 그리고 올해 현지 제작 연극(2026)이라는 세 형식으로, 그것도 수년의 시차를 두고 거듭 새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마지막 형식이 ‘수입된 완성품의 관람’이 아니라 ‘현지 창작진이 직접 다시 쓴 작품’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통신원은 중국 현지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이 각색이 한국 문화 전파의 지속가능성에 던지는 문화적 시사점을 짚는다.
< ‘우리가 된 그녀(我们成为的她)’ 연극 메인 포스터 - 출처: ‘쥐자오(剧焦)’ 웹사이트 >
이번 각색의 첫 번째 특징은 원작을 그대로 옮기지 않았다는 데 있다. 주인공의 이름부터 김지영에서 ‘마팅팅(马婷婷)’으로 바뀌었다. 공연 전문매체 《쥐자오(剧焦)》 리뷰는 두 인물의 운명이 매우 비슷하되, 마팅팅의 이야기가 “중국 내 무수한 여성의 인생”으로 읽히도록 무대가 새로 짜였다고 평했다. 각색가 원팡이는 데뷔작 <장공의 체면(蒋公的面子)>으로 일찍 이름을 알렸고 이후 <번화(繁花)> 등 문학성 짙은 작품을 각색한 작가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원작 소설의 담담한 절제나 영화판의 잔잔한 온기와는 다른, 스탠드업 코미디에 가까운 경쾌하고 건조한 말투를 택했다. 중국 인터넷 유행어(网络梗)를 무대 언어로 끌어들여 가정 내 성 역할 분담, 출산 이후 부부 관계, 두 세대 여성의 가치관 충돌, 고부간 권력관계 같은 무거운 쟁점을 반어와 풍자로 다루었다.
주목할 지점은 각색가 자신이 작업 도중 출산과 육아를 겪으며 그 경험을 처음으로 대본에 녹여냈다는 사실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82년생 김지영』을 처음 접했을 때는 아이가 없었으나, <우리가 된 그녀> 대본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고 밝혔다. 우는 아기를 어르다 결국 택배 초인종에 잠이 깨는 장면처럼, 중국 가정의 육아 현실을 구체적인 장면으로 옮긴 대목들은 원작을 단순히 번안한 것이 아니라 현지 창작자의 경험을 거쳐 다시 쓰인 것이다.
현지 언론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이 ‘다시 쓰기’는 문화 전파의 관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한국 원작이 그대로 수입되어 소비되는 완성품에 머무는 대신, 중국 창작자의 손에서 새로운 작품을 낳는 창작의 바탕으로 그 자리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콘텐츠가 현지의 언어, 정서, 유머로 다시 짜일수록 국경을 넘을 때 생기는 이질감은 줄고, 그만큼 더 넓은 관객에게 자기 이야기로 가닿는다.
< ‘우리가 된 그녀(我们成为的她)’ 의 무대 미학을 볼 수 있는 무대 장면 - 출처: ‘쥐자오(剧焦)’ 웹사이트 >
무대 미학 역시 원작을 시각적 은유로 옮긴다. 《쥐자오》 리뷰와 관객 반응 자료에 따르면, 무대는 겹겹의 칸막이가 안쪽으로 좁혀 드는 소용돌이 모양으로 꾸며져 한 가정의 속을 들여다보는 시선을 만들고, 그 한가운데에는 멈췄다 돌기를 반복하는 드럼 세탁기가 끝없는 가사노동의 상징으로 놓인다. 액자 모양의 벽은 여성을 가두는 속박을, 세 세대 여성이 서로를 떠받치는 회전 무대는 여성들 사이의 연대를 눈에 보이게 한다. 사물에 의미를 응축해 보여주는 이 무대 언어가 소설의 서술이나 영화의 사실적 재현과 달리 원작이 남긴 여운을 살린다고 현지 언론은 분석했다.
극작의 핵심은 주인공이 돌연 어머니, 언니, 이미 세상을 떠난 친구로 ‘변신’해 말하는 다중인격 설정이다. 원작에서 김지영의 빙의가 여성 억압을 드러내는 신호로 그려진다면, 무대판은 이를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극적 장치로 끌어온다. 절친의 역할은 사실 여주인공의 현실에 없던 인물이었음이 뒤늦게 드러나, 관객은 무엇이 실제이고 무엇이 환상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주인공의 속마음을 함께 겪는다. 《쥐자오》는 이 설계가 관객을 더 극에 빠져들게 한다며 이를 연극만의 강점으로 꼽았다.
두 번째 특징은 이 작품이 받아들여지는 방식이 정치적 대립이 아니라 실제 경험에서 나온 공감에 있다는 점이다. 공식 홍보 문구 자체가 “행간마다 공명(共鸣)이 가득하다”였다. 여러 매체와 관객 자료는 이 작품이 “목청 높은 규탄”도 “흑백논리의 편 가르기”도 아니며, 지목할 악역도 기대할 클라이맥스도 없이 “머리카락처럼 가늘지만 어디에나 있는”, 하루하루 조금씩 닳아가는 일상을 그린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낯선 이가 유아차를 끄는 마팅팅에게 내뱉는 “기생충(寄生虫)”이라는 한마디, 가사와 육아를 “도와준다(帮你做)”고 표현하는 남편의 태도처럼, 특정 인물이 아니라 일상에 배어든 보이지 않는 규칙이 주인공을 몰아세우는 구조가 중국 관객에게 곧바로 자기 삶으로 읽힌 것이다.
이처럼 한국 여성의 이야기가 곧바로 ‘자기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 현상은 커뮤니케이션 연구의 ‘문화적 근접성(Cultural Proximity)’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문화와 가까운 콘텐츠에 더 강하게 끌리는데,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사회가 공유하는 가부장적 가족 구조와 돌봄노동이 주로 여성에게 지워지는 현실이 이 작품을 낯선 수입품이 아니라 ‘함께 비추는 거울’로 만든다. 실제로 현지 언론은 이 작품을, 육아와 가사를 ‘어머니의 천직’으로 전제하는 사회적 통념, 곧 오늘날 중국 사회에서 커지는 모성 부담 논의와 연결짓는다. 한국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중국 사회의 현안을 비추는 창구가 된 셈이다.
다만 반응이 한쪽으로만 우호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관객 자료는 호평과 비판이 함께 있었음을 전한다. 량융치의 안정된 감정 연기, 절제된 무대 미학, 세 세대 여성의 회전 무대 장면은 대체로 호평이었으나, 대본이 다소 약하고 인물이 평면적이라는 점, 다중인격 설정을 다루는 솜씨가 정교하지 못하다는 점, 일부 관객은 오히려 한국판 영화보다 “크게 공감하지 못했다”고 느꼈다는 점에서 비판이 있었다. 흥미롭게도 원작을 접하지 않은 일반 관객의 반응이 상대적으로 더 좋았는데, 이는 원작에 대한 기대가 큰 팬층과 진입 장벽이 낮은 일반 관객 사이의 자연스러운 반응 차이로 볼 수 있다.
세 번째 특징은 제작 주체다. 이 작품은 상업 제작사가 아니라 70여 년 역사의 국유 극단인 상하이화극예술센터 소속 제작자가 스스로 기획을 제안해 만든 작품이다. 극단 대표이자 이 작품의 제작 책임자인 장후이칭(张惠庆)은 《타임아웃 상하이(TimeOut上海)》 인터뷰에서 극단 관객층의 75%가 35세 이하 젊은 여성이며 그 배경에 갈수록 커지는 결혼, 출산 불안이 있다고 진단했다. 동시에 그는 이 소재를 다루는 태도가 “결혼은 지옥”이라는 식의 단순하고 부정적인 메시지 전달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의 요청에 따라 제목은 원작명을 그대로 쓰는 대신 “우리이자 곧 그녀들”을 뜻하는 <우리가 된 그녀>로 정해졌다. “그녀는 하나의 거울이며, 관객이 고통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보게 하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제작 주체가 국유 극단이라는 사실은 문화 전파의 관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어떤 소재를 무대에 올릴지 가리는 제도권 기관이 한국 여성 문학을 자기 관객을 위한 창작의 원천으로 택했다는 것은, ‘한녀문학’이 수입 베스트셀러라는 틈새를 넘어 주류 창작의 자원으로도 소비되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상의 내용을 한류 콘텐츠 전파라는 관점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첫째, 가장 튼튼한 전파는 ‘소비’가 아니라 ‘현지 창작’을 통해 이루어진다. 완성된 영상물을 수입해 관람하는 방식은 콘텐츠의 수명과 영향 범위가 원본에 묶이지만, 국유 극단과 이름난 극작가가 한국 원작을 자국의 언어로 다시 지어 올릴 때 한국이라는 출처는 소비되고 마는 상품이 아니라 꾸준히 활용되는 창작의 원천이 된다. 이는 원작의 수명을 실질적으로 늘린다.
둘째, 완전한 현지화가 오히려 한국이라는 출처를 더 드러나게 한다. 주인공 이름을 바꾸고 중국 인터넷 유행어를 입힌 이번 각색은 겉으로는 한국색을 지운 듯 보이지만, 검토한 모든 매체가 예외 없이 “한국 작가 조남주의 소설을 각색”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현지화는 출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출처를 현지 문화 생태계 안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하는 길이 된다.
셋째, 보편성이 지속의 동력이다. 모성, 돌봄 노동, 구조적 제약이라는 이 작품의 주제는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는 동아시아의 공통 경험이다. 문화적 근접성이 클수록 이야기는 번역물이 아니라 자기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며, 한국문학이 몇 해에 걸쳐 중국 시장에서 힘을 이어가는 근본 동력이 여기에 있다.
넷째, 출판과 공연예술은 완성형 영상물 수입과는 다른 전파 경로로서, 현지의 다시 쓰기와 맞물릴 때 특정 형식이나 시기의 유행에 매이는 정도를 낮춘다. 전파 경로를 여럿으로 넓히는 것은 한류의 안정성을 높이는 밑바탕이 된다.
이를 관통하는 것은, 한류의 다음 국면이 ‘한국 콘텐츠가 얼마나 많이 팔리는가’가 아니라 ‘한국의 이야기와 문제의식이 현지 창작자의 손에서 얼마나 자연스럽게 그들 자신의 이야기로 다시 태어나는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이 잣대로 보면 <우리가 된 그녀>는 한류 전파가 일시적인 소비를 넘어 현지 창작 생태계에 스며드는 성숙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한국이라는 출처는 지워지기는커녕 더 넓은 관객 앞에서 거듭 언급된다. 소비를 넘어 현지 창작으로, 수입을 넘어 다시 쓰기로 나아가는 이 길이야말로, 한국 문화 콘텐츠가 특정 형식이나 특정 시기의 유행에 매이지 않고 꾸준히 뿌리내릴 수 있는 방식임을, 이 순회공연이 조용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