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고전, 한국의 무대를 거쳐 베이징 관객과 만나다
- 한국 국립극단 <태풍>, 2026 당대국제희극제 해외 초청작으로 베이징 무대에 올라 -
지난 9월 5일 저녁, 베이징(北京) 중심가에 위치한 다화도시공연예술센터(大华城市表演艺术中心)에서 한국 국립극단의 연극 <태풍(The Tempest)>이 중국 관객들을 만났다. 이번 공연은 9월부터 11월까지 베이징에서 열리는 ‘2026 당대국제희극제(当代国际戏剧节)’의 해외 초청작 가운데 하나다. 올해 연극제에는 한국을 비롯해 중국, 싱가포르, 프랑스, 브라질 등 여러 국가의 작품이 참여한다. 연극뿐 아니라 전통극과 음악극, 인형극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베이징 곳곳에서 공연되며 포럼과 예술 강연, 공연 후 관객과의 대화 등도 함께 진행된다.
공연 당일 현장을 찾았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지자 객석은 하나둘 관객들로 채워졌고, 젊은 관객부터 중장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눈에 띄었다. 공연은 한국어로 진행됐지만 무대 위쪽에 중국어 자막이 함께 제공돼 중국 관객들도 작품의 흐름을 따라가는 데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공연이 시작되자 관객들은 자막과 배우들의 움직임을 번갈아 바라보며 무대에 집중했다. 배우들의 익살스러운 몸짓과 유쾌한 장면에서는 객석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국어로 진행되는 공연이라는 사실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관객들의 반응도 자연스러웠다. 한국 국립극단의 시선으로 다시 만난 셰익스피어 <태풍>은 셰익스피어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폭풍우(The Tempest)>를 한국 국립극단이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다. 원작에서 남성으로 등장하는 밀라노의 공작 프로스페로를 여성 인물인 ‘프로스페라’로 바꾼 것이 눈에 띈다. 프로스페라는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로 인해 권력을 잃고 딸과 함께 외딴섬에서 살아간다. 이후 마법으로 거대한 폭풍을 일으켜 과거 자신을 배신했던 사람들을 섬으로 불러들인다. 복수할 수 있는 기회를 손에 쥐지만 결국 원한을 내려놓고 용서와 화해를 선택한다.
현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화려한 무대장치보다 배우들의 움직임이었다. 무대 중앙에는 초록빛 풀과 식물을 활용해 외딴섬을 표현했고, 뒤쪽에는 커다란 흰 천이 드리워져 있었다. 얼핏 보면 단순한 구성이지만 공연이 시작되자 같은 공간은 조명과 음악, 배우들의 움직임에 따라 거센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가 되기도 하고 신비로운 섬으로 변하기도 했다. 특히 폭풍이 몰아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실제 배나 파도를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대신 배우들이 무대를 뛰어다니며 몸을 크게 움직여 폭풍 속 혼란을 표현했다. 여기에 음악이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무대의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배우들의 움직임이 멈추고 다시 시작되는 순간까지 음악과 연결돼 있어 보는 재미를 더했다.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을 통해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원작의 줄거리만 놓고 보면 배신과 복수라는 무거운 이야기를 떠올리기 쉽지만, 이번 공연은 예상보다 밝고 경쾌했다. 익살스러운 장면과 음악을 곳곳에 배치해 무거움을 덜어냈고, 이야기 역시 복수 그 자체보다 용서와 화해의 과정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중국 관객과 함께 웃고 즐긴 한국의 무대 중국 관객들의 온라인 후기에서도 비슷한 반응을 찾아볼 수 있었다. 간결하고 산뜻한 무대 연출과 음악, 배우들의 몸짓을 인상적으로 꼽는 의견이 있었으며, 특히 원작의 남성 주인공 프로스페로를 여성 프로스페라로 바꾼 설정에 관심을 보이는 반응도 눈에 띄었다. 공연장에서 관객들의 반응은 더욱 직접적으로 느껴졌다. 재미있는 장면에서는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고, 공연이 끝난 뒤 배우들이 다시 무대에 등장하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이어졌다. 배우들 역시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이번 공연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셰익스피어라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작품이 국립극단의 해석을 거쳐 다시 중국 관객들과 만났다는 점이다. <태풍>은 한복이나 전통음악처럼 한국 문화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은 아니다. 대신 익숙한 고전을 한국의 연출가와 배우들이 자신들의 시선과 무대 언어로 새롭게 풀어냈다. 중국 관객들에게도 잘 알려진 작품인 만큼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접점이 만들어졌다. 최근 베이징에서는 공연과 전시 등 여러 분야를 통해 한국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자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당대국제희극제에도 <태풍>과 함께 한국 연극 <사사로운 사서>가 해외 초청작으로 이름을 올렸다. 한국 공연예술이 베이징의 국제 공연예술 행사에 참여해 현지 관객들과 직접 만난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기억에 남은 것은 객석의 모습이었다. 무대에서는 한국어가 들리고 그 위로 중국어 자막이 흘러나왔지만, 재미있는 장면에서는 함께 웃었고 마지막에는 같은 순간 박수를 보냈다. 언어는 달라도 공연을 통해 느끼는 감정은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베이징에서 만난 한국 국립극단의 <태풍>은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한국의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동시에 익숙한 고전 한 편을 사이에 두고 한국의 창작자와 중국 관객이 한 공간에서 웃고 호흡한 자리이기도 했다. 이러한 만남이 앞으로도 이어지며 한국의 다양한 공연예술이 중국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이 더욱 넓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사진 출처 및 참고자료 - 통신원 촬영 - ≪신화망(新华网)≫ (2026. 09. 04). 14部作品汇聚2026当代国际戏剧节, https://weibo.com/2/detail/5339813410505477?utm_source=travel -샤오홍슈 ‘培源疯人院’ 계정(@培源疯人院), https://www.xiaohongshu.com/explore/6a9bf7a6000000002b0244cc?xsec_token=AB-GcFu15Cc0wdgc499G4p1RKOroYSL7KNKrNmHHMiqFs=&xsec_source=pc_user